이탈리안 셰프의 진가를 알려면?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를 먹어봐야 한다. 바리스타의 깊이를 가늠하려면? 군더더기 없는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셔봐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평양냉면 하나만 수십 년 파는 식당, 닭곰탕 한 가지만 여러 대에 걸쳐 들이파는 집을 찾는지도 모르겠다. 그 단출하나 단단한 정성에 고개를 끄덕이며 리스펙트를 보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김민희의 음악에서 그러한 ‘깊은 미니멀리즘’을 느낀다. 골든스윙밴드의 보컬리스트로서, 재즈 보컬리스트 김민희로서 그는 십수 년 동안 스윙과 재즈 스탠더드에 대한 순정한 천착을 보여줬다.
김민희가 올 9월 내놓은 2집 [Confessin’]은 스탠더드에 대한 자신의 오랜 사랑을 담은, 말 그대로 절절한 고백의 서(序)다.최근 서울 양천구의 재즈가 흐르는 카페에서 만난 김민희는 “정기구독하고 있는 〈재즈피플〉에서 몇 달 전 칼라 블레이의 스토리를 읽고 울었다”라면서 “묵묵하게 가고 싶은 길을 가는 모든 사람이 저의 롤모델”이라고 말했다.
글 임희윤
(스마트폰 녹음 앱을 켜며) 인터뷰를 녹음해도 될까요? 이렇게 해서 앱을 쓰면 음성이 텍스트로 자동 변환되거든요. 요즘엔 AI가 요약도 해줘요.
네? 너무 신기해요. AI 요약요? 진짜 깜짝 놀랐어요. 저는 ‘컴맹’이기도 하고 핸드폰은 전화랑 문자만 되면 되지, 하는 스타일이라서요….
그래서일까요. 민희 씨의 히스토리에 관해 인터넷에 찾아보려 했는데 어려웠어요.
꽤 오랫동안 활동했다고 생각했는데 정보가 찾기 힘들게 돼 있군요. 하긴 제 웹사이트 같은 것도 없고요.
이번 기회에 정리해 보죠. 음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음. 저는 부산 사람이에요. 일고여덟 살 때부터 클래식 피아노를 쳤어요. 예고 입시를 준비하던 피아노 꿈나무였죠. 그런데 비싼 수업료를 내고 배우는 피아노가 매번 그렇게 재밌진 않았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저는 늘 재밌는 걸 추구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중3 때 예고를 가지 않기로 했고 인문계 고교에 갔죠. 그래도 고2 때까지는 클래식 피아노를 줄곧 쳤어요. 그런데 제가 간 인문계 고교가 부산 삼성여고라고, 하필 말로 쌤이 선배로 다니셨던 곳이에요. 신기하죠.
어쨌든 어려서부터 재즈를 좋아하고, 이런 건 아니었네요.
어릴 때부터 춤추고 노래하는 걸 너무너무 좋아했어요. S.E.S. 춤을 따라 추고(웃음) 음악감상은 가요 발라드 앨범 위주로 했어요. 신승훈, 김현철, 아니면 머라이어 캐리…. 재즈에는 관심도 없고 실은 재즈가 뭔지도 잘 몰랐죠. 그러다 정말 우연히 어떤 광고를 봤어요. 광고 카피가 아직도 기억나는데 ‘끼 있는 사람들 모여라!’ 이런 거였어요. 대학 실용음악과 광고였죠. ‘끼 있는 사람? 나잖아!’, ‘노래로 내가 대학을 갈 수도 있다고?’
실용음악과 입시에 뛰어든 거군요.
고3 1월부터 학원에 다녔어요. 그런데 거기 다니는 모든 학생이 똑같은 노래를 부르고 비슷비슷한 유의 음악들을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어쨌든 원곡자가 있고 그가 최고의 기량으로 부른 곡을 그저 따라 하는 느낌이었어요. 피아노를 그만둘 때와 비슷한 마음이었던 듯해요. 재미가 없다는 느낌. 그래서 선생님께 가서 대뜸 ‘저는 재즈 음악을 해보고 싶습니다!’라고 했죠. 그게 아마 고3 8, 9월쯤일 거예요.
재즈의 ‘재’자도 모르던 사람이 갑자기 재즈를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요.
집에 어떤 CD가 있었는데 재즈 대표곡들을 모은 세 장짜리였어요. 빌리 홀리데이, 루이 암스트롱 같은 사람들의 음악이 있었죠. 들으면서 무작정 따라 불러보다 보니 너무 편안하고 너무 내가 잘 부를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어요. 20대 후반쯤 되던 저희 선생님도 열심히 선생님 나름대로 공부를 해오셔서 도와주셨던 걸로 기억해요. 그렇게 다이애나 크롤이 부른 곡 하나, 그리고 제 자작곡 하나를 입시 곡으로 가져갔죠.
자작곡요?
‘기존 곡들은 나랑 안 맞는다, 내 해석이 필요한 게 난 좋다!’ 이런 생각에…. (웃음) 그때는 제가 곡을 많이 썼었거든요. 고1 때부터 재미로요. 대학 진학 이후로는 뭔가 더 알게 되고 겁이 나서 잘 못 쓰게 됐지만요. 하하. 그렇게 해서 들어간 게 동아방송예술대였어요. 거기서 마침 고교 선배이기도 한 말로 쌤이 강의하고 계셨지요. 고등학교 선생님이 말로 쌤한테 ‘우리 학교에서 재즈 공부를 하고 싶다고 그 학교(동아방송예술대)에 들어간 친구가 있으니 예쁘게 봐줘라’라고 말씀하셨나 봐요. 그런데 말로 쌤은…. 스타일 아시잖아요. 학연, 지연, 혈연 이런 거 신경 안 쓰시는 스타일인 거.
학교에 들어가니 말로 쌤 수업도 무서웠고 선생님도 너무 무서웠고 재즈 음악이 너무너무 무서웠어요. 당시엔 저도 어렵고 멋있어 보이는 재즈를 하고 싶어 해서 더 그랬나 봐요. 예를 들면, 엄청나게 화려한 보컬 스킬을 구사한다거나 어마어마한 스캣을 한다거나 대단한 편곡으로 월드뮤직까지 아우르는 그런 재즈 음악요.
그럼, 재즈 스탠더드에 관심을 두게 된 건 언제부터인가요.
훗날 골밴(골든스윙밴드)을 함께 하게 되는 친구들을 만나면서요. 편안하게 들을 수 있고 트래디셔널한 느낌의 음악들이 저와 잘 맞더라고요. 그러면서 재즈가 재밌어졌어요. 제 정체성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죠. 특히 스물한 살 때 학교 친구로 만난 기타리스트 준 스미스(Joon Smith)가 제게 큰 영향을 줬어요. 골든스윙밴드의 출발점도 준 스미스의 제대였어요. ‘우리 예전에 했던 음악 되게 좋았는데, 약간 냇 킹 콜 트리오 같은 느낌 있잖아’ 하면서 의기투합하게 된 거죠. 그게 2012년 무렵일 거예요.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와 3년 정도 생활하던 때였죠.
상경할 때는 ‘사람은 나면 서울로!’ 이런 느낌이었나요.
아주 뚜렷한 비전이나 목표는 없었어요. 그전에는 부산에서 작은 학원에 출강하고 있었는데, 사실 대학 교원으로 갈 기회도 없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역시나 ‘뭔가 더 재밌는 걸 하자!’는 태도가 발동됐던 거죠. 재미가 제 원동력이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뭐 MBTI에서 말하는 극(極)E(외향형) 같은 스타일은 아닌데. 완전 I(내향형)인데. 뭔가 계속 머물러 있는 듯한 느낌을 싫어하나 봐요. 서울에 올라와서 학원에 출강도 하고, 호텔 연주를 많이 했었죠. 호텔에선 혼자 피아노 치며 노래하는 식으로 많이 했어요.
뭔가 ‘재즈를 하려면 서울로!’였군요.
사실 준 스미스가 많이 독려하고 실질적인 조언도 정말 많이 해줬어요. 제 인생에 참 많은 영향을 준 친구죠. 무슨 깡인지 모르지만, 베이시스트 전창민 오빠랑 베이스-보컬 듀오로 미국 버클리음대 입시도 봤어요. 둘 다 붙었는데 창민 오빠는 (버클리에) 갔고 저는 안 갔죠. 마지막 순간에 머나먼 곳에서 생활이 막연히 많이 두려웠나 봐요. 돌아보면 안 간 것 역시 제 인생에 탁월한 선택이었어요. 아마 갔으면 아예 음악을 그만뒀을지도 몰라요. 너무 잘하는 사람이 많은 곳이니 잔뜩 주눅이 들었을 수도 있죠. 미련은 없어요. 그 무렵 골든스윙밴드 활동을 시작해 정말 정말 재밌던 시절이었거든요.
아이로니컬하게도 미국을 안 가고 한국에서 매우 미국적인 음악을 이어가신 거네요.
맞아요. 근데 저희 골든스윙밴드 멤버들 중에 외국 유학 다녀온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전부 다 ‘토종’이에요. (웃음) 근데 누구보다 그런 음악들을 더 잘 이해하고 실행하니까 오히려 저한테는 이 활동이 (미국행보다) 더 좋은 기회였던 것 같아요.
나의 것을 찾아서
골든스윙밴드의 보컬리스트로 두 장의 정규 앨범을 내며 활발히 활동하다 마침내 2019년 말에 김민희 1집을 냈죠. 여기에도 어떤 굳은 결심이나 뚜렷한 목표가 있었을 것 같아요.
네. 제 나이로 봐도 과도기였고, 뭔가 ‘나 같은 것’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었어요. 밴드의 음악도 너무 좋았지만 혼자 집에 있을 때는 조용하고 귀에 거슬리지 않는 음악들을 선호하는 편이어서 만약 내 앨범을 만든다면 여기에 집중해 보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1집은 베이스, 기타, 보컬의 단출한 편성의 발라드 앨범이었죠. 그때는 녹음하고 모니터링을 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심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계속 느린 템포로 속삭이듯 부르는 음악들이고 감정을 엄청나게 몰입해 작업했으니까요.
그 뒤로 거의 5년이 흘렀네요. 2집이 나오기까지요.
코로나19 팬데믹도 있었고, 골든스윙밴드 3집(2021년)도 있었고, 카리나 네뷸라(4인조 재즈 보컬 그룹으로 말로, 박라온, 강윤미, 김민희를 멤버로 2023년 1집 발매) 언니들도 만났거든요. 카리나 네뷸라는 거의 1년을 합숙하다시피 자주 만나서 ‘음악 생활’을 하고 앨범을 냈어요. 5년이 정말 훅 지나갔네요. 2집은 ‘이지리스닝’이라 불릴 수도 있지만 더 트래디셔널한 재즈로 갔다고 저는 생각해요. (관악 연주자) 박기훈 씨야말로 대중성과 재즈의 깊이를 함께 보여줄 수 있다는 면에서 앨범 프로듀서로서 적임자라고 생각해서 작년에 제가 전화를 했어요. 음, 그 무렵에 제가 메모 앱에 적어둔 키워드 3개가 있어요. 잠시만요. (잠시 휴대전화를 뒤적인 뒤) 아, 여기요. 편할 것. 좋아할 것. 다시 듣고 싶을 것.
좋아할 것? 누가 좋아하나요.
제가요. 이 세 키워드의 주어가 전부 ‘내가’예요. 2023년 1월 10일에 적었네요. 그리고 대중에게 덜 알려진 재즈 스탠더드곡들 위주로 하자는 것도 중요한 콘셉트였어요. 클럽 공연을 하다 보면 재즈 하면 ‘Fly Me To The Moon’이나 ‘L-O-V-E’만 알고 오시는 분들이 정말 많거든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은 굉장히 제한적이고 그런 제한적인 곡들만 하다 보면 그게 우리들의 수준이 돼버릴 수도 있거든요. 너무 어렵지 않고 사람들이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이면서도 트래디셔널한 어떤 것, 그것이야말로 재즈의 가치를 상승시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민희 님의 음악을 듣다 보면, 이분은 외국 생활 좀 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막연히 드는데, 맞나요.
네. 전혀 아니고요. 녹음할 때 영어 발음 하나하나의 디테일에 대단히 신경을 쓰기는 합니다. 해외 공연도 전혀 해본 적이 없어요.
본인의 목소리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대단히 좋은 목소리와 뛰어난 가창력을 지닌 분들도 만나 보면 음성의 한계에 대해 불만을 가진 분들이 많더군요.
제 성격의 장점 중 하나가 저의 장점을 더 크게 생각한다는 거예요. 전 제 목소리가 좋아요. 나이가 들수록 훨씬 더 무게나 깊이가 생기는 것도 마치 나무에 나이테가 생기는 것 같아 좋고요. 불필요한 옷을 입지 않아도 저는 지금 제 옷을 잘 입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도 카리나 네뷸라 언니들과 함께 노래하다 보면 많은 걸 배워요. 각자 음악을 듣는 것이, 생각하는 것이, 또 소리를 내는 방법이 다 달라요. 어떤 특정한 음정을 낼 때 어떤 생각으로 내는지도 같은 사람 없이 다 다르더군요. 그걸 보면서 많이 배우고 발전하고 성장했어요. 그래서 저는 인생에서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어쩜 내 인생에 이렇게 필요한 정확한 타이밍에 이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지?’
방금 그 말, 정말 진심인가 봐요. 민희 님 눈에 약간 눈물이….
그렇죠. 그렇죠. 저의 단점은 또 제가 확실히 알아요. 그걸 잘 숨기기도 하죠.
단점은 뭔가요.
가온 다를 중심으로 네다섯 번째 음, 그러니까 ‘솔-라-시’ 구간이 저한테는 내기 힘든 곳이에요. 고음이어서가 아니라 그쪽의 소리를 예쁘게 내는 게 참 힘들어요. 보통 다른 보컬리스트들은 그런 구간이 좀 더 높은 ‘시-도’쯤에 위치하는데 저는 중간 음역에 있는 거죠. 그 음들을 예쁘게 내고 싶다는 고민이 항상 있어요.
하고 싶었던 이야기, 고백
2집 앨범 제목 ‘Confessin’’은 어떻게 정한 겁니까.
제가 하고 싶었던 음악, 하고 싶던 이야기들에 대한 ‘고백’이라고 생각했거든요. 1집에선 이별 뒤의 감정이 많았죠. 2집은 좀 더 로맨틱한 느낌이 강해요. 2집 첫 구상 때부터 ‘'Deed I Do’랑 ‘I’m Confessin’ (That I Love You)’은 꼭 넣자고 생각했거든요. 원래 1집에 넣으려다 결이 안 맞아 미뤄뒀던 ‘There’s A Lull In My Life’도요. 참, 마지막 9번 곡인 ‘There’s A Lull In My Life’는 제가 직접 피아노를 치며 불러서 녹음했어요. 재즈 노래 가운데 진짜 예쁜 곡들이 많고 정말 귀한 곡들이 많은데 그걸 조금이라도 더 알려드리고 싶은 마음이 강했어요.
7번 곡 ‘Smile’은 그래도 비교적 알려진 곡이네요.
준 스미스와 함께 워낙 많이 공연에 올렸던 곡이라서 큰 고민 하지 않고 넣어봤어요. 다른 사람의 버전을 의식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하던 그대로 부르면 남들과 다를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요. 2집은 곡마다 악기 편성도 서로 달라서, 단편집처럼 들춰보신다는 느낌으로 들으셔도 좋을 것 같아요. 각각의 스토리가 담긴 단편들이 모여 하나의 책을 이루는 것처럼 곡별로 따로 들어도 예쁘고 모여 있을 때 그 조화로움도 좋은 앨범이랄까요. 그런 면에서 편곡, 프로듀스를 맡은 박기훈 씨의 공이 매우 크죠. 예를 들어 5번 곡 ‘My Melancholy Baby’의 경우엔 앞으로 도드라지지는 않지만, 뒤에서 묵묵히 해주는 관악기들의 묵직한 역할, 그 선율들이 엄청 아름답거든요.
‘I’m Confessin’ (That I Love You)’는 아코디언이 들어간 게 특이했어요. 클라리넷과 플루트의 협주도 근사하고요.
실은 그 트랙, 그리고 아코디언과 그런 혼 사운드가 2집의 초기 뼈대였어요. 제리 서던의 [Jeri Southern](1957) 앨범을 보면, 아코디언과 멋진 혼 섹션이 돋보이는데 사운드적으로는 또 리버브가 하나도 안 들어가 있어요. 또, 셜리 혼의 [Loads Of Love](1963)를 보면, 사운드가 엄청 하이파이한데 ‘샤~’한 느낌은 또 아니에요. 레이첼 & 빌레이의 [I Love A Love Song!]은 2023년에 나온 앨범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클래식한 느낌이 물씬 나서 참고를 하기도 했죠. 클라리넷과 플루트는 박기훈 씨가 모두 연주했어요.
녹음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곡이 있다면요.
사실 늘 불러왔던 곡들이라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그나마 꼽자면 6번 트랙 ‘Fools Rush In’요. 준 스미스가 기타 녹음을 미리 다 해둔 상태에서 그 위에 얼굴을 보지 않고 클릭도 없이 타이밍을 정확히 맞추고 순간적인 몰입을 해내야 하는 상황이었거든요. 준 스미스와 저의 19년 ‘짬’의 호흡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김민희, 참 보편적인 이름이에요. 특이한 예명이나 활동명을 일부러 짓는 경우도 있는데 민희 님은 그런 생각은 안 해봤어요?
흔한 이름이어서 초기에는 그런 생각도 없지 않았어요. 하지만 주어진 얼굴대로 살아가듯, 주어진 내 이름대로 살아가고 열심히 하다 보면 흔한 내 이름에도 언젠가 무게가 생길 거라는 믿음으로 해왔던 것 같아요.
혹시 롤모델이 있다면요.
우리집 고양이 ‘달콩이’요. 만날 편안하게 자고 아무 생각 없이 누워 있는 달콩이가 참 부러워요. 아, 몇 달 전에 제가 정기 구독하고 있는 〈재즈피플〉에서 칼라 블레이의 이야기를 읽었어요. 울었거든요. 나이가 많은데도 마지막까지 무대에서 음악을 했던 그런 모습이 너무 존경스러웠어요. 사실 멀리 있지 않아요. 제 주위에서 재즈를 하는 친구들, 언니들…. 그냥 묵묵하게 계속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해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저들이 모두 다 나의 롤모델’이라고 생각하게 돼요.
민희 님의 공연을 어디서 볼 수 있나요.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합니다.
일단 12월에는 25일에 (서울 서초구 재즈바) 플랫나인에서 공연하고요. 내년 1, 2월에는 아무 생각 없이 쉬어보고 싶어요. 그리고 김민희 3집에 대한 구상도 사실 2집 내기도 전부터 해놓고 있었어요. 곽정민 씨와 피아노 듀오 앨범을 내보고 싶어요. 언젠가는 말로의 [송창식 송북]처럼 가요 리메이크 앨범도 도전해 보고 싶고요. 가사가 아름답고 멜로디 라인이 예쁜 곡이라면 무엇이든 저만의 재즈로 해석하면 좋을 것 같네요. 일단은, 제가 지금 가장 잘할 수 있는 것들부터 충실히 해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