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슈아 레드맨 & 브래드 멜다우 [Nearness]
오랜 우정을 바탕으로 한 현대적인 연주
독특한 머리 스타일에 매서운 눈매를 지닌, 그리고 항상 열정적인 색소포니스트
조슈아 레드맨과 피아니스트 브래드 멜다우가 만났다는 사실은 앨범 발매 전부터 많은 애호가의 관심을 끌었다. 두
연주자가 90년대에 재즈의 새로운 시대를 이끌 젊은 연주자 무리의 일원으로 등장한 이후 그 기대대로
음악성과 대중성 모두에서 현대 재즈를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애호가이 두 연주자의 만남을
기대했다.
이런 바람에는 두 연주자의 오랜 인연도 한몫했다. 조슈아 레드맨의 1994년도 앨범 [Moodswing]에 이 피아니스트가 참여하면서
두 사람의 음악적 인연은 시작되었다. 이 앨범에서 색소포니스트는 진정한 그만의 음악이자 1990년대를 대표하는 음악을 선보였다. 여기에는 브래드 멜다우의
피아노가 큰 역할을 했다. 이것은 1998년도 앨범 [Timeless Tales (For Changing Times)]에서도 반복되었다.
하지만 이후 두 연주자는 한동안 함께 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조슈아
레드맨만큼이나 브래드 멜다우 또한 'Art Of The Trio'라 명명된 일련의 앨범들을 통해 큰
성공을 거두어 그만의 길을 갔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브래드 멜다우의
2010년도 앨범 [Highway Rider]와 조슈아 레드맨의 2013년도 앨범 [Walking Shadows]를 통해 함께 할
수 있었다.
그 가운데 이번에 큰 기대 속에 발매된 듀오 앨범은 2011년, 그러니까 [Highway Rider] 이후 가진 유럽 투어를 정리한
것이다. 노르웨이 콩스버그, 스위스 베른, 독일 뒤셀도르프와 프랑크푸르트, 네덜란드 그로닝겐, 스페인 마드리드 등에서 가진 공연에서 각각 한 곡씩 선별해 총 여섯 곡을 수록하고 있다. 앨범에서 두 연주자는 오랜만에 만나서 우정을 나누었다는 것 이상의 음악적 감동을 준다. 노장 연주자들이 추억을 회고하듯 편안하게 과거에 함께 즐겼던 곡들을 연주하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어린 시절 우정을 나눈 친구가 각자의 길을 간 뒤 오랜만에 만나 그사이 갈고 닦은 실력을 겨루는 것 같다고
할까? 이것은 찰리 파커의 'Ornithology'나 델로니어스
몽크의 'In Walked Bud'처럼 선배 연주자들이 쓴 곡을 연주할 때 잘 느껴진다. 두 연주자는 솔로와 반주의 구분은 의미 없다는 듯 서로 자신만의 연주를 펼치는 것만 같다. 이 기본적인 곡들을 너는 그리 연주하냐? 나는 이렇다, 라고 서로 이야기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경쟁적인 움직임은 이내
상대가 비워둔 공간을 파고들며 앞선 프레이징에 슬쩍 호응을 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상대의 공간을 그대로
존중하고 내 위치를 지키면서도 자연스레 겹쳐짐을 수용하는 연주, 그 겹쳐짐이 아름다운 어울림으로 이어지는
연주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것은 듀오 연주의 가장 기본적인 미덕이기도 하다.
한편 두 연주자는 각각의 자작곡도 연주했다. 이 곡들은 두 연주자의
감수성이 만나 새로운 지점을 향하는 것을 확인하게 해준다. 예를 들면 브래드 멜다우가 쓴 'Always August'는 테마 부분은 확실히 브래드 멜다우의 우수를 느끼게 한다. 하지만 조슈아 레드맨의 연주는 그만의 지적인 분위기로 곡을 중성적인 담담함으로 이끈다. 피아니스트도 이에 공감한 듯 우수를 걷어낸 연주로 향한다. 서정적인
분위기를 기대한다면 앨범 타이틀곡이라 할 수 있는 'The Nearness Of You'를 들어야 할
것이다. 두 친구가 각자의 일로 바빠도 늘 함께할 날을 기다려왔음을 생각하게 해주는 이 곡은 두 연주자의
서정성이 가장 아름답게 드러낸다. 발라드 연주의 진수를 느끼게 한다.
그래도 나는 이 색소포니스트가 쓴 곡-제목에서 브래드 멜다우를 염두에
두지 않았나 싶은-'Mehlsancholy Mode'가 앨범에서 가장 돋보인다고 생각한다. 치열한 두 연주자의 연주가 1990년대의 추억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서로가 비슷한 출발점에서 손을 잡고 나아가던 시절을 그리게 한다. 그렇다고
향수에 기댄 연주라는 것은 아니다. 이 곡에서도 두 연주자는 느긋함을 피하고 차이를 인정하고 긴장을
수용하는 현대적인 어울림을 보여준다.
시작은 오랜 우정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그 전개는 노장 연주자들의
만남과는 달랐다. 훈훈한 마음만큼이나 두 연주자는 새로운 연주에 대한 설렘으로 각자의 현재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이를 바탕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래서 음악이 마냥 따스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나는 바로 이것이 두 연주자의 우정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오랜만이라고
괜히 상대를 조심하는 대신 어제 만난 것처럼 마음 편히 자신의 현재를 담은 연주를 펼치는 것이야말로 깊은 우정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 아니던가? 술 한잔 하며 추억을 곱씹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추억을 만들고 내일을 꿈꾸는 친구의 모습이 두 사람의
연주에 담겨 있다.
★★★★
최규용 | 재즈 칼럼니스트
라디오 키스 재즈 담당 PD이다.
저서로는 [재즈], [재즈와
살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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