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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기] 블루노트 사운드의 요람, 반 겔더 스튜디오  
제목 [방문기] 블루노트 사운드의 요람, 반 겔더 스튜디오   2019-10-28


글, 사진 진푸름


〈뉴욕 타임스〉는 2016년 루디 반 겔더가 9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을 때 그에 대하여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프로듀서가 아닌 엔지니어였다. 그는 레코딩을 할 때 뮤지션을 직접 섭외하거나 녹음할 곡목을 정하는 일에 관여하지 않았다. 단 한 번도 엔지니어가 아닌 다른 역할을 담당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 어떤 뮤지션보다도 그 어떤 프로듀서보다도 나은 견해를 가지고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서 큰 역할을 했다.”


올해는 블루노트 탄생 80주년으로, 그 어느 때보다 블루노트에 관심이 쏠린 해다. 최근에 한국에도 개봉하여 재즈 팬들에게는 꼭 봐야 할 영화로 손꼽히는 〈블루노트 레코드(Blue Note: Beyond The Notes)〉에서 엔지니어 루디 반 겔더는 블루노트가 현재의 명성을 얻는 데 핵심이 되었던 블루노트만의 독창적이고 품격있는 ‘사운드’를 만들어낸 인물로 설명된다.


존 콜트레인의 [A Love Supreme], 마일스 데이비스의 [Walkin’], 허비 행콕의 [Maiden Voyage], 호레이스 실버의 [Song For My Father] 등 재즈의 전설과도 같은 앨범들이 그의 손을 거쳐 갔음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몇 달 전 현재 스튜디오를 운영 중인 시클러 부부가 필자를 포함, 뉴욕에 공연차 방문한 안드레아 모티스 밴드를 스튜디오 투어에 초대하여 방문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사운드 엔지니어로서의 루디 반겔더만의 특별함 그리고 뉴저지 잉글우드 클리프스에 위치한 반 겔더 스튜디오 방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후, 두 달간은 현재 스튜디오를 운영 중인 시클러 부부와의 인터뷰 그리고 이들이 추천하는 블루노트 명반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위대한 사운드 엔지니어의 탄생


반 겔더는 처음부터 레코딩 엔지니어로 활동했던 것은 아니다. 재즈 드러머였던 삼촌의 영향으로 트럼펫 레슨을 받았고 재즈를 좋아했으며 라디오나 마이크 같은 장비들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일찍이 레코딩 엔지니어로 여유로운 삶을 영위하기가 힘들다고 판단한 그는, 검안사(시력 검사자)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였고 이후 실제로 한동안 검안사의 삶을 살았지만, 일을 마친 저녁에는 뉴저지 해컨색에 위치한 함께 살던 부모님의 집 거실에서 뉴욕 현지 뮤지션들의 녹음하는 일을 시작했다.


1953년 블루노트 레이블의 프로듀서던 알프레드 라이언을 만나게 된 후, 반 갤더는 점차 전문 레코딩 엔지니어로서의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후 1959년엔 본인의 스튜디오를 만들며 검안사 일은 그만두고 본격적인 재즈 레코딩 엔지니어가 된다. 알프레드 라이언과 루디 반 겔더가 만나게 된 에피소드가 상당히 재미있는데, 1952년 당시 색소포니스트였던 길 멜은 반 겔더의 부모님 집에서 앨범 발매를 위한 녹음했지만, 앨범이 실제 발매가 되지는 않았다. 녹음이 버려지는 것이 아까웠던 멜은 이를 데모로 활용하며 당시 블루노트의 수장인 알프레드에게 가져가 들어보도록 했다. 결국, 블루노트에서 앨범을 작업하게 됐는데, 아무리 다양한 방법으로 녹음을 해도 데모에서의 사운드 퀄리티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알프레드는 결국 이전에 작업했던 엔지니어를 데리고 오라고 길 멜에게 요청하게 되고 이렇게 루디 반 겔더와 알프레드 라이언의 역사적인 만남은 시작된다.




루디 반 겔더만의 녹음 기법 그리고 특별함


1950년대 당시에만 해도 멀티트랙 녹음이 존재하지 않던 시대였다. 모노 녹음이 주를 이루었고 녹음 장비 또한 상당히 열악한 상황이었다. 2트랙 녹음기법이 막 시작되고 블루노트가 모노와 스테레오 앨범을 동시에 발매하고 판매하던 1957년, 반 겔더는 전적으로 스테레오 녹음만을 시작할 정도로 선구자적인 엔지니어였다. 또한, 현재의 멀티트랙에 비하면 스테레오 녹음은 두 채널밖에 안되기에 상대적으로 좀 더 쉬운 방식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으나, 멀티트랙과 달리 스테레오 녹음은 후속 믹싱을 통한 밸런스 작업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녹음 이전 악기마다 사운드 밸런스를 빠르고 섬세하게 잡아내는 역량이 매우 강조되었다. 반 겔더는 이 부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특출 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실제 녹음이 들어가기 전 연주자들이 단지 한 곡을 연주하는 동안 완벽한 밸런스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타 레이블의 경우, 대부분 현장에서 리허설과 녹음을 병행하였던 점에 반해 블루노트 레이블은 녹음 전 여러 번의 사전 리허설을 통해 음악을 더욱 완벽하게 만들어 가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였으며, 레이블 차원에서 이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기에 현재처럼 레코딩 트랙을 각각 개별로 나누고 사운드에 대한 밸런스를 조절하는 믹싱에 대한 기술이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사운드 밸런스와 퀄리티를 구사해 낼 수 있었다. 또한, 재즈 음악은 라이브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묘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라이브 레코딩의 기술력으로는 이를 맛깔스럽게 살려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반 겔더는 모두가 포기한 이 작업을 끊임없는 집요함으로 아트 블래키의 [A Night At Birdland]와 소니 롤린스의 [A Night At The Village Vanguard] 등의 음반들을 완벽하게 현장감을 살리면서 완성하였고, 재즈 라이브 레코딩의 퀄리티를 스튜디오 수준으로 높임으로 재즈 본연의 라이브의 질감을 스튜디오가 아닌 현장에서도 담아내기 시작하는 데 선구자의 역할을 하였다.


반 겔더는 다른 천재들이 그렇듯 본인의 분야에 있어 특유의 예민하고 집요한 부분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본인만의 녹음기술이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이 사용하는 모든 녹음기기의 브랜드명을 가리거나 없앴다고 한다. 심지어 스튜디오 내에서 사진을 찍을 때에는 마이크를 포함한 일체의 장비가 사진에 나오지 않도록 극도로 신경을 썼다고 한다. 또 실제로 필자가 스튜디오에 방문했을 때도 그랬지만 반 겔더는 엄격하게 스튜디오 내에서 음식을 먹거나 음료를 마시는 것을 금했고 아무도 마이크를 만지지 못하게 했으며, 본인조차도 직접 장갑을 끼고 조심스럽게 다루었다고 한다. 이렇게 녹음의 작은 부분들까지도 세심하게 심혈을 기울이는 것에 대해 반 겔더는 그저 연주자들이 내고 싶은 소리를 그대로 살릴 뿐이라고 블루노트 프로듀서이자 역사가인 마이클 쿠스쿠나와의 인터뷰가 실린 다큐멘터리 〈Blue Note Perfect Takes〉(2004)에서 담담하게 밝혔다. 연주자인 필자는 연주자와 소통하며 연주자가 내고 싶은 소리를 살리는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는 그의 말에 큰 감명을 받았다.


그는 종종 사보이, 임펄스, 프레스티지와 같은 다른 유명 재즈 레이블들과도 일했지만, 지금의 ‘블루노트 사운드 = 루디 반 겔더’라는 등식이 성립된 것은 이렇게 철저한 면모를 가진 반 겔더 특유의 사운드에 대한 철학과 노력, 그리고 블루노트의 실험정신과 뮤지션에 대한 음악적 존중이 어우러져 시너지를 발휘하였던 것이 아닐까.




현재의 반 겔더 스튜디오


현재 반 겔더 스튜디오는 1959년 오픈한 이래 금년 60주년을 맞이하였고, 2016년 루디 반 겔더가 타계한 이후,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루디 반 겔더의 녹음 보조역할을 해온 마우린 시클러와 그녀의 남편이면서 프로듀서이자 트럼페터인 돈 시클러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반 겔더의 방에 최대한 충실한 작업이 현재에도 꽤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최근 미국 재즈 라디오 차트를 석권하고 있는 마이크 르돈 트리오의 앨범 [Partners In Time]도 이곳에서 녹음됐다고 한다.


반 겔더 스튜디오는 반 겔더가 아내와 함께 뉴욕 현대미술관을 방문했을 때, 구겐하임 미술관을 디자인한 것으로도 유명한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유소니언(Usonian) 주택들을 보고 크게 감명을 받아 그의 제자였던 데이비드 헨켄과 함께 라이트의 콘셉트로 만든 건축물이다. 당시 라이트는 그의 제자들과 아름다우면서도 주변 환경 그리고 주변 토양과 조화를 이루는 자연 재료들로 건축물을 짓는 유기적 건축 설계를 전개하고 있었는데, 스튜디오는 유기적 공간이어야 했던 반 겔더의 요구와 정확히 일치하였다고 한다. 실제 스튜디오에 도착하였을 때 뉴욕의 도심이 아닌 뉴저지에 위치하여 비교적 한산하고 독립적인 느낌이 매우 좋았고, 또한 우거진 나무 사이 안에 자연스레 어우러지는 건물 디자인이 인상적이면서 차분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처음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필자는 목재로 된 약 12m 높이의 높은 천장과 탁 트인 내부, 그리고 벽돌로 이루어진 벽이 매우 인상 깊었다. 스튜디오 곳곳에 전시되어 있는 반 겔더가 직접 찍은 새 사진들을 바라보는 것마저도 성스럽게 느껴져, 마치 교회 안에 들어온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인테리어만으로 재즈의 성지라고 칭해도 될 것만 같았고, 보기만 해도 오로지 재즈를 위해 만들어지고 다듬어진 공간임을 알 수 있었다. 스튜디오 한가운데에는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위치하고 있어 잠시 앉아 기념촬영도 하고 연주해 볼 기회가 있었는데, 나무와 벽돌로 지어진 높고 큰 5면의 벽이 가져다주는 천연 리버브는 악기의 울림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면서도 연주자의 귀에 따뜻하고 포근하게 감싸주는 소리로 돌아왔으며,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톤을 구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만 같았다. 이러한 곳에서 연주하고 녹음한다는 것은 연주자 입장에서 아주 중요한 장점으로 작용하는데, 특히나 긴장과 스트레스의 레벨이 최고치에 다다를 수 있는 레코딩 스튜디오에서는 더욱더 그러하다.





현재 내부에 설치된 몇 개의 칸막이 방은 원래 처음에는 없었는데, 1970년대에 크리드 테일러라는 프로듀서의 제안으로 설치했다고 한다. 녹음기술이 발달하고 멀티트랙 녹음이 대중화되면서 녹음 후 편집과 믹싱 등을 하기 위함인데, 스튜디오 한가운데에는 칸막이가 없이 밴드가 함께 연주하면서 녹음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 있어서 선택적으로 녹음 방식을 선택하며 연주자가 가장 원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반 겔더가 주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을 것으로 추정되는 레코딩 컨트롤 룸도 들어가 보았는데 두 책상을 경계로 메인 믹싱 콘솔이 있는 안쪽은 반 겔더가 허락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고 하며 그 경계를 넘어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바깥의 레코딩 현장을 한눈에 다 볼 수 있도록 유리로 탁 트인 컨트롤 룸을 보면서 필자는 반 겔더가 얼마나 연주자들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듣고 있었는지를 충분히 추측할 수가 있었다.


스튜디오에 대해 알아갈수록 건물의 모든 것들이 재즈를 위한 그리고 재즈 연주자들이 편하게 음악을 만들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고 볼 수밖에 없었고, 이 방문을 통해 반 겔더의 세심한 노력과 배려를 몸소 느끼다 보니 자연스럽게 필자도 연주자로서 언젠가 이곳에서 한번 꼭 녹음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방문을 마치며


재즈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이의 흔적을 따라가 보는 것은 개인적으로 의미 있고 즐거운 일이다. 특히나 이렇게 눈으로 직접 보고 느끼면서 재즈의 한 시대를 풍미한 대가들의 발자취를 현장에서 느껴 볼 기회는 많지 않다. 그렇기에 필자는 이 소중한 경험을 국내의 재즈 팬들에게도 소개하며 이날의 감동을 함께 느껴보고자 이 탐방기를 쓰게 되었다. 반 겔더 스튜디오 투어를 통해 스마트한 시대에 살아가는 현재의 우리와는 다르게 과거 레코딩을 하는 일 자체가 얼마나 수고스럽고 어려운 일이었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지만, 그 시대 블루노트가 음반 속에 고스란히 담아낸 사운드와 정신은 많은 것을 누리는 현대인들이 결코 쉽게 담아낼 수 없는 그야말로 장인정신으로 빚어진 결과물이니 그 무게와 깊이에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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