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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루이 스클라비 [Characters On A Wall]  
제목 [리뷰] 루이 스클라비 [Characters On A Wall]   2019-09-30

정병욱


클래식적 표현과 재즈의 즉흥성


클라리네티스트이자 작곡가, 색소포니스트이기도 한 프랑스 정상급 뮤지션 루이 스클라비의 열세 번째 ECM 앨범. 1975년 이후 반세기 가량 활동을 이어온 그가 20여 년 전 현대 예술가 에르네스트 피뇽-에르네스트의 거리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했던 전작 [Napoli’s Walls](2002)의 콘셉트를 뒤이어, 다시 한번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 깃든 맥락을 추상적인 프리 재즈의 매력으로 재구축한다. 이번 앨범은 팔레스타인 라말라부터 이탈리아 로마에 이르는 긴 여정에서 그가 포착한 피뇽-에르네스트의 여덟 가지 벽화에 대한 의미와 감정들을 재현했다.


좋은 작곡가이자 연주자로서 스클라비의 미덕은, 그가 어떤 연주 파트너와 함께하든 어떤 시간이나 공간 속에 있든, 기정립된 전작의 방법론이나 일정한 관습에 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매 앨범이 그 배경에 품고 있을 낯선 감각과 경험을, 멤버 구성에 걸맞은 참신한 구상으로 완성해, 작품의 속성에 구애받지 않는 역동적이고 능동적인 감상을 청자에게 선사한다.


본작에 영감을 제공한 피뇽-에르네스트 작품들은 모두 사회나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비극적 시인(랭보, 파졸리니, 장 주네, 마흐무드 다르위시 등) 혹은 ‘감옥’과 ‘난민’ 같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키워드를 오브제로 다룬다. 허름한 골목이나 폐허가 된 담장 위, 인물의 반항적이거나 비장한 표정이 실물 크기에 가깝게 강렬한 흑백 대비로 그려진 피뇽-에른스트의 작품 속 캐릭터들은 별다른 설명이나 구체적 상황 설정 없이도 강렬한 인상과 심오한 의미를 던져준다. 반면에 스클라비의 이번 곡들은 자유롭게 뻗어가는 즉흥성과 상상력을 견지하면서도, 뜻밖에 차분한 태도와 이지적인 어조를 동시에 취하고 있어, 그저 감정이 화려하고 풍성하게 들어찬 [Napoli’s Walls]와 대조되기도 한다.


핵심은 클래식적 표현이다. ‘Prison’만이 시작부터 스윙을 앞세운다. 대부분의 곡은 드럼을 최소한으로 활용할 뿐 좀처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더블베이스가 간간이 부각되지만 이 역시 주인공이 되지는 못한다. 마치 협주곡의 독주 악기처럼 시선을 독점한 클라리넷이 잔잔하게 선율을 이끌다가 건반의 선명한 타건과 함께 황홀한 접점을 이루거나, 피아노가 클래식 전통과 현대 화성을 오가며 나머지 악기에 조금씩 빈자리를 내주며 악곡의 근간이 되는 피뇽-에른스트 작품의 진중한 멋을 모사하는 식이다. 그렇다고 해서 [Characters On A Wall]이 재즈 본연의 정체성을 놓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최소한 악기들이 적시에 등장해, 예측 불가능한 즉흥으로 적재적소를 채우는 순수한 재즈적 풍경은 거리 예술의 의외성을 관통하며 스클라비의 구상력에 새삼 감탄하게 한다.


★★★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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