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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위대한 레코딩 엔지니어, 루디 반 겔더  
제목 [기획] 위대한 레코딩 엔지니어, 루디 반 겔더   2016-10-10


재즈 사운드를 정립한 위대한 레코딩 엔지니어


루디 반 겔더

Rudy Van Gelder (1924~2016)

  

1877년 에디슨에 의해 발명된 축음기와 함께소리를 담는다라는 개념은 이제 너무나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음악 녹음에 있어 장르와 스타일의 잣대를 확립한 선배 레코딩 엔지니어들의 노력과 결실은 다시금 재조명 받아야 한다. 이 시점에서 재즈 사운드를, 특히 비밥과 하드밥 사운드의 개념을 확고히 한 전설의 엔지니어 루디 반 겔더가 얼마 전 정말로 전설이 되어버렸다.  




기본적인 레코딩의 역사


사운드라는 음성정보를 포착한다는 노력은 산업혁명 이후 생겨났던 것으로 많은 자료가 기록하고 있다. 1839년 루이 다게르(Louis Jacques Daguerre)에 의한 사진의 발명 30년 후에 시작된 레코딩의 역사는 네 개의 큰 카테고리로 분류된다. 에디슨이 발명한 녹음과 재생이 가능한 포노그래프(Phonograph) 이전에도 녹음에 대한 많은 연구가 기록으로 남아있지만 대공황 이전까지의 초창기 어쿠스틱 레코딩 개념의 핵심은 우리에게 턴테이블의 바늘로 이해가 편한 스타일러스(Stylus)를 통한 물리적인 마찰이었다. 녹음 역시 다이아프램(Diaphragm)이라는 막이나 판에 스타일러스의 물리력으로 의존해야 가능했던 시기였다. 초창기의 재즈 녹음은 베이스와 드럼 대신 나무 조각이 대신했으며 음압이 큰 브라스 악기들은 녹음 포인트의 뒤쪽에 위치하는 등 분명한 한계가 존재했던 시기로 기록되어있다. 이후 음을 증폭시키는 앰프 및 마이크, 스피커의 발명은 전기 녹음의일렉트릭시대를 열었으며 레코딩 기술 발전에 기인한 음반사들의 출범을 유도한 시기이기도 하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존 멀린이라는 초창기 엔지니어가 암펙스(Ampex)사와 개발한 마그네틱테이프 녹음 방식은마그네틱’(Magnetic) 시대의 출범과 함께 멀티 테이프 레코딩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는 테이프 내에 다중 트랙의 분리를 통한 개별적 녹음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악기 간의 더빙도 용이하게 해주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듣는 음악의 시대가 펼쳐졌으며 녹음된 음원은 대량 복제, 생산, 판매가 가능한 레코드 산업으로 발전하였다. CD를 지나 블루투스, 와이파이를 통한 무선의디지털시대를 사는 우리가 현재 듣고 있는 다수의 재즈 사운드는 0 1의 샘플링 조합으로 디지털 리마스터가 되었다 하더라도 마그네틱 시대의 산물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 소리 중 재즈를 대표하는 사운드의 대부분은 지난 8 25일 타계한 루디 반 겔더의 업적이다.




해컨색의 RVG, 잉글우드 클리프


1924 11 2일 미국 뉴저지 주 저지시티에서 태어난 루돌프 루디 반 겔더는 마이크와 아마추어 라디오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던 유,소년기를 보냈다. 대학 졸업 후인 1946년 뉴저지주 북동부 해컨섹에 위치한 그 부모의 집 거실에 차린 녹음실은 위대한 재즈 레코딩인 RVG 사운드의 시작이었으며, 그곳에서 재미로 부업처럼 시도했던 녹음 세션은 위대한 재즈 엔지니어 루디 반 겔더를 탄생시켰다. 1953년 블루노트의 수장 알프레드 라이언을 만나게 되면서 공식적인 재즈 레코딩 엔지니어의 길을 걷게 된 루디 반 겔더는 경쟁사 프레스티지의 사운드에도 깊이 관여하게 된다. 모든 세션에 항상 미리 대비하는 철저한 준비성과 수십 년 같은 일을 하면서도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새로운 사운드에 대해 공부하고 시도하는 노력을 보였다는 프레스티지의 대표이자 또 한명의 전설적 재즈 프로듀서 밥 와인스탁의 언급처럼 루디 반 겔더는 외유내강의 전형적인 노력형 천재이었던 듯하다. 1959년 잉글우드 클리프에 차린 그의 스튜디오는 본격적인 재즈 사운드의 산실이 되는데 임펄스, 버브 레이블을 통한 하드밥의 후반부에서 크리드 테일러 CTI의 초창기 스무드 재즈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듣고 있는 20세기 후반에 탄생한 다양한 스타일의 재즈는 그의 귀와 손을 통해 마무리되었다. 세기가 바뀌어 일흔이 넘은 고령에도 루디 반 겔더는 아랑곳없이 레코딩 활동을 지속하는데, 특히 RVG 에디션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블루노트, 프레스티지 녹음 작들의 24비트 리마스터링에 주력하였다.

 

적절한 마이크 사용과 적합한 게인(Gain, 신호 증폭의 정도)으로 악기가 발현하는 소리 그 자체의 녹음에 충실하였으며 ‘Rudy Special’로 불리는 그만의 리버브 사용은 공간감을 통한 사운드의 포근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의 레코딩 크레딧은 대표작만 추려도 이 지면에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다. 알프레드 라이언에게 그를 소개한 길 마레(Gil Melle) 1953년 작이자 RVG의 첫 녹음으로 기록되어 있는 [New Faces, New Sounds]를 시작으로 케니 드류, 케니 도햄, 제임스 무디, 아트 파머, 마일스 데이비스, 델로니어스 몽크, 밀트 잭슨, 소니 롤린스, 케니 버렐, 리 코니츠, 리 모건, 존 콜트레인 등등 재즈 연주자 모두를 언급해야 할 만큼 그의 레코딩은 양으로도 엄청나다. 심지어 그와 작업하기를 거부했던 찰스 밍거스의 몇몇 음반조차 RVG의 이름이 크레딧 노트에 포함되어 있다. 시더 월턴의 2011년 작 [The Bouncer]가 공식적인 RVG의 마지막 녹음작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발매되지 않은 기록들이 분명 남아 있을테니 그의 레코딩 크레딧은 아마 진행형일지도 모른다.




Thanks, RVG


거의 30년 전, 버클리 음악대학 재학 중 기존의 곡을 거의 똑같이 재현해보는 강의에서 크리드 테일러 프로듀싱, 루디 반 겔더 레코딩의 1967년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작 [Wave]의 타이틀곡을 선택했다. 그 결과는 최악이었다. 연주를 담당했던 학우들의 능력보다는 베이스의 기준점을 찾지 못한 필자의 오만함 때문이었다. 피아노 녹음 역시 마이크를 수도 없이 바꿔가며 동분서주했는데 무심하게 녹음은 엉망진창으로 끝나고 말았다. 당시에 흘린 식은땀을 생각하면 아직도 등골이 서늘하다. 이후, 정말로 눈만 뜨면 루디 반 겔더의 녹음작들을 무식하게 들었었다. 그의 음악을 들으며아무나 레코딩 엔지니어가 되는 게 아니구나라는 결론을 얻었다.

 

주파수 대역에 대한 명쾌한 분리 능력과 리버브 등을 통한 공간 개념에 대한 타고난 재능은 소리에 대한 근원적인 애착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개성 강할 수밖에 없는 아티스트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능력과 그에 수반한 음악적 겸손함 역시좋은 귀만큼 필수적인 레코딩 엔지니어의 덕목이다. 루디 반 겔더는 이 모든 것을 갖춘 완벽한 엔지니어이다. 아티스트나 작품자들처럼 전면에 나서지 않지만 재즈사에 있어 거장으로 인정받고, 그래서 100세에 가깝게 살았던 그의 삶이 진심으로 추도 받는 이유이다. 루디 반 겔더의 사운드는 필자가 겪었던 것처럼 앞으로도 많은 레코딩 엔지니어들을 재능의 한계로 내몰지라도 말이다.

 



이영주 | 음반 프로듀서

버클리음대에서 프로덕션 과정을 전공했으며

각종 음반의 프로듀서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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