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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힙합, 블루노트를 침공하다
제목 [기획] 힙합, 블루노트를 침공하다 2019-01-11

류희성


힙합 프로듀서 매들립(Madlib)이 2003년에 발표한 앨범 [Shades Of Blue]의 부제는 ‘매들립, 블루노트를 침공하다’(Madlib Invades Blue Note)였다. 이 과감한 제목의 앨범은 블루노트 레이블에서 직접 허가하고 기획한 작품으로, 앨범 커버 디자인부터 사용된 샘플까지 모든 게 블루노트의 것이다. 이 앨범에 수록된 ‘Song For My Father’(호레이스 실버), ‘Montara’(바비 허처슨), ‘Footprints’(웨인 쇼터) 등 블루노트의 카탈로그들을 따라온 재즈 팬이라면 너무나도 익숙한 제목들일 것이다. 하지만 이 앨범은 블루노트가 힙합 뮤지션에 침공당한 첫 사례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미 과거에도 블루노트는 재즈 음악가에 의해 샘플링되었고, 스스로 그렇게 할 권한을 내어주기도 했다.



표본화라고 우리말로 옮길 수 있을 샘플링이란 작법은 말 그대로 기존의 것에서 무언가를 떼어오는 것이다. 떼어온 것을 부분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고, 핵심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과거 훵크곡에서 브레이크(간주)를 루프(반복)시키는 데서 유래한 힙합 음악에서 샘플은 곡의 중심을 이루는 핵심재료로 사용된다. 대부분의 샘플들은 소울이나 훵크에서 가져왔지만, 재즈를 사랑했던 일부 힙합 음악가들은 재즈를 활용했다. 자랑스럽게 재즈를 샘플링했던 파사이드(The Pharcyde),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A Tribe Called Quest, 이하 ATCQ)가 대표적이다. 그들이 사용한 음악 중에는 당연히 블루노트의 위대한 유산도 있었다.


일부는 이러한 샘플링이 도둑질이라 손가락질한다. 지금은 ‘샘플 클리어런스’라는 절차를 거쳐 합법적으로 샘플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과거에는 그런 개념이 희미했다. 그렇게 모호한 경계 사이에서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그랜트 그린(Grant Green)의 곡 ‘Sookie Sookie’를 무단으로 샘플링해서 힙합곡으로 만든 영국인 프로듀서 제프 윌킨슨(Geoff Wilkinson)이 당시 블루노트의 소유주였던 EMI에 걸리고 만 것이었다.


하지만 영국 EMI이 건넨 제안은 예상과 달랐다. 블루노트의 백 카탈로그를 자유롭게 사용해서 이 시대의 음악으로 만들어달라고 제안했던 것이다. 이미 수년 전부터 블루노트는 재발매 명반으로 상당한 수익을 올렸었고, 이제는 조금 더 새로운 방식으로 젊은 음악 팬들을 유입시키려 했다. 제프 윌킨슨은 EMI 측이 원하는 대답을 정확하게 알았다. 그는 어스쓰리(Us3)라는 팀을 결성해 음악을 만들었다. 아트 블래키의 [A Night At Birdland Vol.1] 도입부에서 피 위 마켓의 상징적인 내레이션에 템포를 올린 ‘Cantaloup Island’(허비 행콕)를 붙였다. 그렇게 탄생한 곡의 제목은 ‘Cantaloop (Flip Fantasia)’. 원곡의 제목(‘Cantaloup Island’)과 힙합에서 사용되는 루프(loop)를 조합해 만든 제목이다. 이 곡은 빌보드 팝 차트 9위를 기록했고, 이 곡이 수록된 앨범 [Hand On The Torch](1993)는 팝 앨범 차트 31위, 알앤비 앨범 차트 21위에 올랐다. 2000년대 초에 노라 존스가 등장하기 전까지 블루노트의 최고의 히트작이자 문제작으로 남았다. 논란은 있었으나, 이 음악을 들은 사람들은 허비 행콕의 1960년대 음악을 다시 찾아 듣게 됐고, 블루노트는 과거의 음악과 미래의 음악을 동시에 살필 수 있게 됐다.



1990년대 초중반은 힙합과 재즈가 격렬하게 조화했던 시기로 기억된다. ATCQ의 2집 앨범 [The Low End Theory](1991)는 재즈 샘플링을 최전선으로 끌고 간 작품이었다. ATCQ의 리더이자 래퍼, 프로듀서인 큐팁(Q-Tip)은 블루노트의 음악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로니 포스터의 ‘Mystic Brew’, 그랜트 그린의 ‘Down Here On The Ground’, 로니 스미스의 ‘Spinning Wheel’ 등 블루노트의 소울/퓨전 재즈 트랙들을 활용했다. 수록곡 중 싱글로 발표된 ‘Jazz (We’ve Got)’의 아트워크는 블루노트의 디자인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었다. 큐팁은 가사에서 ‘즉흥성’이란 키워드로 힙합과 재즈의 연관성을 논하기도 했는데, 그의 탁월한 재즈 샘플링 능력과 랩 스킬이 없었더라면 충분한 설득력을 지닐 수 없었을 것이다.



ATCQ가 제시한 모범적인 재즈 샘플링은 다양한 실험들이 일어나게 했다. 파사이드, 소울스 오브 미스치프(Souls Of Mischief) 등의 그룹들이 재즈 랩을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디거블 플래니츠(Digable Planets)라는 그룹은 자신들이 ‘재즈 그룹’이며 ‘샘플링을 통해 재즈에 새로운 생명을 주었다’고 했다. 디거블 플래니츠는 재즈를 단순한 샘플링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았다. 자신들이 샘플링한 아트 블래키, 그랜트 그린, 소니 롤린스, 허비 행콕, 그랜트 그린 등의 전설적인 연주자가 어떤 존재인지를 정확히 이해했고, 랩 가사를 통해 그들에 대한 존경심을 내비쳤다.


재즈와 힙합의 결합은 생경하지만 즐거운 소리로 이어졌다. 대중들에게 어스쓰리의 [Hand On The Torch]가 블루노트의 놀라운 시도라고 볼 수 있겠지만, 블루노트의 첫 힙합 앨범은 따로 있었다. 바로 색소포니스트 그렉 오스비의 앨범이다. 엠베이스(M-Base) 운동의 리더 중 한 명으로, 다소 난해한 음악을 선보이는 연주자로 잘 알려진 그는 1993년에 블루노트에서 [3-D Lifestyles]라는 힙합 앨범을 발표했다. 어렵고(Difficult), 더럽고(Dirty), 위험한(Dangerous)라 불리는 3D는 힙합의 성장배경인 스트릿(길거리)의 삶을 그래도 상징하는 단어였을 것이다. 드럼비트로 찍은 비트, LP 스크래치, 함성 소리, 각종 샘플들을 라이브 연주와 조합해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아마 특정 장르로 자신들을 규정하는 것을 거부했던 엠베이스 연주자였던 그에게 이러한 자유로운 시도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같은 해에 래퍼 구루(Guru)는 유사한 시도를 했다. 재즈를 샘플링하고 랩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재즈 연주자와 함께 ‘연주’했던 것이다. 도널드 버드, 로니 조던, 로니 리스턴 스미스, 브랜포드 마살리스, 코트니 파인, 로이 에이어스 등의 재즈 연주자들과 함께 새로운 차원에서의 재즈 랩을 시도했다. 그는 앨범 아트워크는 리드 블루노트의 디자인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었다. 담배 연기를 내뿜는 흑백사진과 푸른색 배경 위의 타이포그래피는 1950년대 블루노트를 떠올리게 한다. 이후에 브랜포드 마살리스는 벅샷 르퐁크를 통해 힙합을 시도했고, 그 결과물은 상당히 훌륭했다. 이제는 ‘로버트 글래스퍼의 래퍼’로 인식되는 커먼(Common)도 재즈 샘플링을 기반으로 한 여러 앨범을 발표했다. 훗날 엘비스 코스텔로와 블루노트에서 앨범을 내게 되는 드러머이자 프로듀서 퀘스트러브(Questlove)가 이끄는 그룹 루츠(The Roots)도 재즈 샘플링으로 정평이 난 힙합 그룹이다.


이 모든 것이 1990년대 중반까지 이뤄졌다. 그러니 2003년에 발표된 [Shades Of Blue]는 선언문이 아닌 항복문에 더 가까웠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매들립의 앨범을 제외하면 2000년대에는 재즈와 힙합의 흥미로운 결합이 이뤄지지 않았다. 재즈를 활용한 창의적인 실험은 1990년대 초중반에 이미 수도 없이 시도되었고, 2000년대에는 샘플링 기반의 작법이 큰 인기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재즈 음악가들이 힙합을 차용하는 음악은 등장했지만, 두 장르의 결합이란 거창한 수식에 걸맞은 신선함은 부재했다.

 

그로부터 시간이 조금 지난 뒤 등장한 로버트 글래스퍼 익스페리먼트(Robert Glasper Experiment)는 모든 것을 바꾸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블루노트에서 활동해온 피아니스트 로버트 글래스퍼의 일렉트로닉 그룹이었다. 그는 종종 기발한 사운드메이킹과 커버곡을 통해 현대적인 사운드를 선보이곤 했으나 그가 핵심적으로 다뤘던 것은 포스트밥이었다. 물론, 그가 힙합/알앤비 뮤지션들과의 합작을 해온 데서 곧 등장할 로버트 글래스퍼 익스페리먼트에 대한 힌트를 얻을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2012년에 발표한 [Black Radio]는 문제작이었다. 재즈 연주자들이 힙합적인 사운드를 만들었고, 알앤비/소울, 힙합 음악가들이 모든 트랙에서 노래하거나 랩했다. 블루노트에서 발표됐으나, 흑인음악적인 성격이 짙었다. 재즈 팬들 사이에선 이 음악의 장르적 정체성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급기야 그래미 어워드의 알앤비 부문에서 수상을 이뤄내며 논란은 더욱 커졌다. 로버트 글래스퍼는 자신이 함께해온 음악가들을 모아서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했다고 밝혔다. 이 앨범이 알앤비와 소울에 근접한 앨범이었다면, 같은 해에 발매된 리믹스 EP [Black Radio Recovered: The Remix EP]는 힙합 프로듀서들과 함께 재창조한 힙합적 해석을 담고 있었다. 1990년대의 어스쓰리와 그렉 오스비, 2000년대의 매들립에 이어 블루노트는 다시 한번 힙합에 팔을 벌렸다.



그의 음악은 과거 어스쓰리 때와 같은 결과를 낳았다. 힙합/알앤비 팬들이 컨템포러리 재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로버트 글래스퍼를 필두로 크리스찬 스콧, 크리스 데이브, 데릭 호지 등의 젊은 연주자들의 사운드를 찾기 시작했다. 로버트 글래스퍼는 테라스 마틴, 크리스찬 스콧, 데릭 호지, 테일러 맥퍼린, 저스틴 타이슨과 함께 슈퍼 그룹 R+R=NOW를 결성해 블루노트에서 데뷔 앨범 [Colligically Seapking]을 발표했다. 이 음악은 재즈와 얼터너티브/컨템포러리 알앤비를 완벽하게 연결했다. R+R=NOW의 음악은 알앤비 팬들에게도 호응을 끌어냈다. 힙합과 알앤비의 수혈을 받은 재즈 연주자들은 마르지 않는 상상력을 무기로 재즈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놀랍게도 여전히 이들의 음악을 두고 ‘재즈냐, 힙합이냐, 알앤비냐’며 따지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재즈는 특정한 스타일이나 장르에 한정하기에 너무나 크고 가능성이 많은 음악이다. 이는 블루노트의 초기부터 증명되어 왔고, 1990년대부터는 힙합과의 결합을 통해 증명되었다. 재즈 순혈주의자가 순수성을 따지려고 머리를 굴리는 순간에도 재즈는 다시 한번 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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