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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헌의 재즈 사이다] 피아니스트 칙 코리아  
제목 [김주헌의 재즈 사이다] 피아니스트 칙 코리아   2018-09-27


다재다능의 끝판왕으로 꼽자면 그만한 이가 없다. 솔로, 듀오, 트리오, 퓨전, 클래식 등 어떤 장르를 막론하고 모두 특A급으로 연주할 수 있는 거장 중의 거장. 작곡 면에서도 뛰어나서 ‘Spain’, ‘Windows’ 등 걸출한 명곡들을 남긴 이 피아니스트를 빼놓고 특히 1970년대 이후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할 정도다. 레전더리 퓨전 밴드 ‘리턴 투 포에버’의 그 남자, 오늘의 토픽은 칙 코리아(Chick Corea)다.


우스갯소리지만 칙 코리아의 코리아는 우리나라와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미리 밝힌다. 본론으로 들어가, 허비 행콕을 제외하고 칙 코리아처럼 많은 종류의 음악에 관심을 보인 피아니스트가 또 있을까. 물론 있긴 할 터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칙 코리아의 존재감은 특별하다. 흔히 포스트밥 피아노계의 4대 천왕으로 손꼽히는 허비 행콕, 맥코이 타이너, 칙 코리아, 키스 자렛 중에서 지금까지도 가장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칙 코리아.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왕성한 그 에너지가 끝없이 계속되기를 희망하며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칙 코리아의 데뷔


본명은 아만도 앤서니 코리아(Armando Anthony Corea)로 1941년 6월 12일,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첼시 지역에서 태어난 그는, 이탈리아와 스페인계 핏줄을 가지고 있다. 어린 시절, 재즈 트럼페터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재즈를 일찍부터 접하게 되었고, 특히 피아노와 드럼 연주에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그 외에도 클래식 피아노 레슨을 받는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재즈 연주자의 잠재력을 터트릴 요소를 가득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뉴욕으로 이주해 신세계를 보게 된다.


1960년대 초중반 그의 커리어는 월드 클래스 여럿의 세션맨으로 활동하는 데 있었다. 대표적으로 허비 맨과 스탄 게츠를 꼽을 수 있다. 그리고 칙 코리아는 1966년 자신의 데뷔작 [Tones For Joan’s Bones]라는 앨범을 내놓는다. 이 앨범이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지만, 그의 두 번째 작품인 1968년 앨범 [Now He Sings, Now He Sobs]는 그야말로 ‘칙 코리아의 명작’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리고 그 직후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데, 바로 1969년 마일스 데이비스가 촉발한 새로운 재즈, 곧 ‘퓨전 재즈’가 그것이다.


1968년, 기존의 마일스 데이비스 밴드 멤버였던 허비 행콕을 대신해 자리를 메꾼 칙 코리아는 이후 마일스 데이비스의 [Filles De Kilimanjaro], [In A Silent Way], [Bitches Brew]에 참여하며 퓨전 재즈계 키보디스트의 대부로 올라선다. 펜더 로즈를 위시한 여러 대의 키보드를 자유자재로 연주하던 그의 모습은 많은 이후 세대들에게 롤모델로 자리 잡았고, 지금까지도 당시의 앨범들은 명반 중의 명반들로 꼽히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일렉트릭 베이스에 데이브 홀랜드, 드럼에 잭 디조넷이 참여하였으니, 기회가 닿는다면 위 3장의 앨범을 꼭 찾아서 들어보시길 추천해본다.




리턴 투 포에버


1972년 마일스 데이비스로부터 독립해, 칙 코리아 자신이 리더로 결성한 ‘리턴 투 포에버’ 밴드는 당시 센세이션이었다. 라틴아메리카 음악을 적극적으로 차용해 록, 훵크 뮤직과 섞어 연주한 음악은 강렬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악기 편성은 다양하다. 보컬과 플루트, 소프라노 색소폰 등이 메인 악기였으며, 리듬 섹션으로 키보드, 베이스, 드럼, 그리고 일렉트릭 기타가 동원됐다. 멤버들의 인앤아웃은 많았지만 음악의 통일성은 유지되어서, 칙 코리아 ‘리턴 투 포에버’로 대표되는 이 사운드는 1970년대를 대표하는 재즈의 유산으로 남게 된다.


참고로, 리턴 투 포에버라는 팀명은 1972년 작 [Return To Forever]라는 동명의 앨범 제목에서 따 왔다. 초록빛 호수 수면에 바짝 붙어 날아가는 새 한 마리의 커버는 자유에 대한 갈망을 담고 있다. 그 소원을 담아 이후 주옥같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온다. ‘Spain’이라는 칙 코리아의 명곡을 담고 있는 1973년 [Light As A Feather] 앨범부터, 같은 해 [Hymn Of The Seventh Galaxy], 1974년에는 [When Have I Known You Before], 1976년 [Romantic Warrior]에 이르기까지. 이후에는 1976년 명작 [My Spanish Heart]로 화룡점정을 찍는다.



칙 코리아 인생 최고의 명곡을 꼽으라면 아마도 ‘Spain’을 꼽지 않을까. 리턴 투 포에버 시기를 대표하는 이 곡은 브라질리안 삼바 리듬에 스페인 특유의 플라멩코 느낌을 가미해, 보컬과 플루트, 퍼커션까지 더함으로써 스페인 감성을 온전히 구현해냈다. 이후 본인도 ‘Spain’을 여러 버전으로 녹음했으며, 또 많은 타 연주자들에게 사랑을 받아 스탠더드 레퍼토리로 많이 연주되기도 한다. Sharp(#) 키에서 오는 상승감과 모던함, 그에 더해 몽환적인 화성진행, 수시로 들이닥치는 유니즌 라인과 킥타임은 1970년대 퓨전 재즈의 진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척도이다.




칙 코리아의 다재다능함

솔로, 듀오, 클래식, 일렉트릭 밴드, 트리오


칙 코리아의 다재다능함은 이제 시작이다. 그가 남들과 다른 특출한 결과를 남긴 영역 중 하나가 바로 ‘듀오’ 연주이다. 특히 비브라포니스트 게리 버튼과의 합작이 유명한데, 듀오 연주의 엄청난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가다. 1972년 ECM과 함께한 듀오 앨범 [Crystal Silence] 이래, 게리 버튼과 여러 장의 듀오 앨범으로 세상에 그 존재감을 알렸다. 그 외에도 같은 피아니스트 허비 행콕, 보컬리스트 바비 맥퍼린, 밴조 연주자 벨라 플랙, 일본의 신성 피아니스트 히로미 우에하라, 이탈리아 피아니스트 스테파노 볼라니에 이르기까지, 많은 컬래버레이션으로 유수의 듀오 명반들을 남긴 바 있다.  



이뿐만인가. 솔로 피아노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적을 내었다. 1971년 ECM 레이블과 작업한 [Piano Improvisations, Vol.1]과 [Piano Improvisations, Vol.2]를 시작으로 지금껏 솔로 피아노의 거장으로서도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1983년 앨범 [Children’s Songs] 또한 추천하는 솔로 피아노 작품이며, 2000년 [Solo Piano: Standards]와 [Solo Piano: Originals] 시리즈 또한 꼭 주목해야 할 앨범이다.

 

계속되는 ‘이뿐만인가’ 시리즈에 다시금 악센트를 더해본다. 이뿐만인가! 칙 코리아는 클래식에도 큰 조예를 보이며 여러 장의 클래식 앨범을 녹음하기도 한다. 개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아마도 피아니스트 키스 자렛과의 ‘두대의 피아노를 위한 모차르트 협주곡 K.365’ 컬래버레이션이 아닐까. 젊은 시절의 이 둘이 남긴 이 작품은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서 쉽게 검색이 가능하다. 게다가 오케스트라에 대한 관심은 본인이 직접 오케스트라 곡을 작곡하는 것에 이르러, 특히 1999년 [Corea Concerto] 앨범은 무려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자신이 사랑하는 젊은 재즈 뮤지션들의 조합으로 엄청난 작품을 이루어냈다.


이뿐만인가. 이토록 많은 활동을 이어 온 그이지만 여기에 또다시 새로운 스텝이 존재한다. 리턴 투 포에버에 이은 새로운 일렉트릭 퓨전 밴드가 그것이다. 1986년 결성된 ‘칙 코리아 일렉트릭 밴드’. 베이시스트 존 페티투치와 드러머 데이브 웨클을 필두로 색소폰 에릭 마리엔탈과 기타 프랭크 갬베일이 참여한 이 밴드는 1986년 [The Chick Corea Elektric Band], 1987년 [Light Years], 1988년 [Eye Of The Beholder], 1990년 [Inside Out], 1991년 [Beneath The Mask] 앨범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칙 코리아의 명성을 한층 더 업시킨 바 있다. 이후에는 새로운 라인업과 일렉트릭 밴드 투(Elektric Band II)를 결성해 또 다른 사운드를 이어가는데, 이 밴드의 음악은 그야말로 복잡함과 정교함의 끝을 보이며 살벌한 정확함을 자랑한다.


정말 대단하게도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일렉트릭 밴드 시절의 베이시스트 존 페티투치와 드러머 데이브 웨클을 끌어들여 ‘칙 코리아 어쿠스틱 밴드’를 결성한 그는 1989년 앨범 [The Chick Corea Akoustic Band]로 기어코 또다시 그래미 수상을 이끌어낸다. 그 외에도 고정된 멤버가 아닌, 월드클래스 뮤지션 여럿과 계속 조합을 바꿔가며 피아노 트리오 명반들을 쏟아내 온 칙 코리아. 그 조합이 한 둘이 아니어서 다 적기도 힘들 정도다.


약간의 사견을 더해보자.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조합은 역시 ‘미로슬라브 비투스와 로이 헤인즈’가 함께한 조합이다.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1980~1990년대에는 존 페티투치, 데이브 웨클과 함께한 어쿠스틱 트리오(Akoustic Trio)로, 최근에는 크리스찬 맥브라이드, 브라이언 블레이드와 함께 연주한 앨범으로 호평을 받는 등 항시 최강의 트리오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기존의 퓨전 밴드 리턴 투 포에버에서부터 솔로, 듀오, 클래식, 어쿠스틱 트리오, 일렉트릭 밴드, 최근의 트리오 앨범들까지. 이 모든 걸 현재까지도 병행하고 있다는 것이 칙 코리아의 큰 장점이다. 오죽하면 얼마 전 2016년 칙 코리아의 75번째 생일 축하 공연이 뉴욕 블루노트에서 6주간 열렸는데, 지금까지 해왔던 20개의 다른 밴드들로 매번 다른 공연을 선보였다. 평생 해온 20여 개의 밴드를 아직도 유지하면서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 바로 칙 코리아가 레전드로 올라설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가 아닐까.




음악적 성취와 특징


재즈계 가장 영예로운 상인 그래미 어워즈. 매년 초 진행되는 이 잔치에 초대되는 단골손님으로, 무려 21번의 그래미 수상을 한 칙 코리아다(칙 코리아 홈페이지 기준). 허비 행콕이 14번의 그래미 수상, 빌 에반스가  7번의 그래미 수상을 경험한 것과 비교해, 칙 코리아는 그야말로 별 중의 별이다.  


스패니시 프리지안 스케일과 펜타토닉 스케일부터 양손의 자유로운 사용(특히, 왼손으로 오른손과 같은 역할을 맡기는 콘트라풍탈 아이디어), 16분음표 싱코페이션의 자유자재 사용과 복잡한 컴핑 스타일, 스페인 클래식에서 끌어온 화성학적 아이디어, 섬세하고 번뜩이는 아티큘레이션까지, 그저 완벽하다는 표현밖에는 쓸 말이 없다. 이런 업적들과 함께 칙 코리아는 아마도 현시대 가장 존경받는 현역 연주자가 아닐까. 허비 행콕은 근래에 들어 팝 재즈와 정치에 빠졌고, 맥코이 타이너는 노화에 의한 에너지의 하락세, 그나마 키스 자렛이 정정하게 버티고 있지만 그 또한 건강 악화를 걱정하는 상황이다. 라이벌이자 친구들이 이런 상황에서 칙 코리아만큼은 정정하게, 그리고 아직도 월드클래스 연주 능력으로 세계 재즈를 이끌고 있다. 그의 나이 벌써 77세, 그러나 아직도 재즈계의 선도자이다. 놀랍지 않은가.  






김주헌 | 피아니스트

김주헌 혹은 라르고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재즈 피아니스트.

팟캐스트 <재즈가 알고싶다>에서 화려한 언변으로 이름을 알리는 중.






칙 코리아 솔로 피아노

일시 2018년 10월 30일 (화) 오후 8시

장소 롯데콘서트홀

티켓 R석 90,000원 / S석 70,000원 / A석 50,000원 / B석 20,000원

문의 롯데콘서트홀 1544-7744

예매 https://goo.gl/zfs7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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