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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힙합]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 [The Low End Theory]  
제목 [재즈×힙합]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 [The Low End Theory]   2016-09-17


힙합을 들은 아버지는 비밥을 떠올리셨지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 [The Low End Theory]

 

아마 재즈와 힙합이 가장 자주 만나는 지점을 샘플링일 것이다. 재즈 뮤지션을 동원하지 않아도 되기에 작업이 용이하고, 재즈의 소리를 그대로 가져다 씀으로써 그 질감을 그대로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재즈 샘플링을 적극적으로 시도한 것은 네이티브 텅스(Native Tongues)라는 힙합 집단이었다. 뉴욕에 자리 잡은 이 무리는 데 라 소울(De La Soul),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A Tribe Called Quest, 이하 ATCQ), 정글 브라더스(The Jungle Brothers), 블랙 쉽(Black Sheep) 등의 그룹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들은 재즈를 샘플링의 대상 중 하나로 보았다. 그중 재즈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던 것은 ATCQ였다.

 

 


음악을 좋아한 고등학생들

 

언제나 그렇듯 음악적 욕구가 가장 왕성한 시기는 십대 때다. 이번 기사에서 다룰 힙합 그룹 ATCQ 역시 학교 친구들끼리 의기투합하여 만든 그룹이다. 멤버는 파이프 독(), 알리 샤히드 무하마드(프로듀스), 큐팁(, 프로듀스), 그리고 자로비 화이트이다. 이들은 네이티브 텅스라는 집단에 소속되어 있었다. 뉴욕 출신의 힙합 그룹들이 뭉친 집단이었는데, 당시에 유행했던 거칠고 폭력적인 힙합에 반하는 음악을 하기로 합의했으며, 흑인적인 멋을 추구하고자 했다. 이들의 가사에선 언어 유희적인 재미와 긍정적인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자이브 레코드와 계약을 하고 1990년에 발표한 첫 앨범 [People's Instinctive Travels And The Paths Of Rhythm]에선 그러한 정신으로 가득 채워졌다. 사운드와 가사 모두 당시에 발표되던 대부분의 힙합 앨범과는 거리가 멀었고 사람들은 '얼터너티브 힙합'이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물론, 지금의 기준으론 이 정도 음악으로 '얼터너티브' 음악에 낄 수도 없지만, 당시로써는 굉장히 독창적인 음악이었다.

 

프로덕션적으로 매우 훌륭했다. 힙합 샘플링의 주재료가 되는 소울/훵크뿐 아니라 재즈, , 클래식까지 다양한 음악이 재료로 활용됐다. 대표적으로 데뷔 앨범의 히트곡이자 이들의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Can I Kick It?'에는 록 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멤버 루 리드의 곡 'Walk On The Wild Side', 재즈 오르가니스트 로니 스미스의 'Spinning Wheel', 러시아 작곡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의 'Montagues And Capulets'(발레곡 [로미오와 줄리엣] )의 조각들이 얽혀 있다. 이들의 음악적 스펙트럼과 관심사를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트랙이다. 이 앨범은 여러 매체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대표적으로 LA타임스는 이 앨범을 두고 '랩 음악에 대한 편견을 깨줄 앨범'이라는 평가를 했다. 그럴만했다. ATCQ가 들려주려 한 음악은 그간 사람들이 알고 있던 힙합과는 전혀 달랐으니까 말이다.

 

그룹의 중심은 큐팁이다. 알리 샤히드 무하마드와 함께 앨범의 프로덕션을 책임지며, 대부분의 랩도 자신이 담당한다. 매끈하고 유려하게 흘러가는 랩 플로우라든지 수준 높은 가사와 라임을 운용하는 능력은 당시에서도 최고 수준이었고, 지금의 기준에서 봐도 탁월하다. 올뮤직가이드의 평론가 존 부쉬는 큐팁을 두고 '힙합 역사상 가장 위대한 래퍼이자 프로듀서'라 평했다.

 

반대로 자로비 화이트는 그룹 내에서 정체성이 가장 모호한 멤버인데, 실제로 이들이 발표한 첫 앨범 [People's Instinctive Travels And The Paths Of Rhythm]에서 자로비 화이트는 특별한 역할이 없다. 일부 트랙에서 아웃트로에 잠깐 등장하는 정도이다. 음악에서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던 것인지 앨범이 나오자 요리 공부를 위해 그룹을 떠났다. 현재는 요리사가 되었고, ATCQ에 간간이 참여를 했다. (근래에는 그룹을 결성하기도 했으나, 별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2집 앨범부터는 세 명의 멤버 체제로 활동한다.




재즈를 의식한 명반의 탄생

 

첫 앨범에도 재즈가 많이 사용되긴 했지만, 이어서 발표한 2집 앨범 [The Low End Theory]만큼 공격적이진 않았다. 첫 앨범에선 주로 소울재즈, 스무드재즈에 한정해서 사용했던 것에 비해 [The Low End Theory]에선 더 다양한 재즈를 활용했다. 지난 앨범에서도 만날 수 있었던 캐넌볼 애덜리, 웨더 리포트, 로니 스미스 외에도 그랜트 그린, 아트 블래키, 잭 디조넷, 에릭 돌피, 게리 바츠, 브라더 잭 맥더프 등 온 영역에 걸친 재즈 뮤지션들의 곡을 활용했다. 거의 모든 곡에 재즈곡이 샘플링됐다.

 

재즈에 대한 의식은 앨범 전반에서 드러난다. 앨범을 여는 첫 트랙 'Excursions'은 굵직한 베이스 솔로로 시작된다. 바로 아트 블래키 앤 더 재즈 메신저스의 곡 'Chant For Blu'에서의 미키 베이스의 연주를 샘플링한 소리다. 중요한 것은 "힙합에선 추상적인 것(Abstract)을 찾을 수 있었지 / 그걸 본 아버지는 비밥을 연상된다고 말씀하시곤 했어"라는 도입부 가사다. 가사 속의 'Abstract'란 단어가 자신의 별명인 앱스트랙트 포엣(Abstract Poet)을 지칭하는 것인지, 힙합 음악에서 탐구해야 할 추상적인 대상을 말하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나, 일단은 추상적인 것으로 해석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큐팁이 힙합과 재즈를 연관 짓는 부분이다. 그는 이런 가사를 통해 그 두 장르 음악 간의 일정한 접점을 찾아내려고 한다. 쉽게 말하자면, 자기 세대의 힙합은 아버지가 젊은 시절 접했던 비밥, 즉 재즈와 비슷한 위치를 점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해석하자면, 힙합은 단순히 젊은이들의 한 시절 유흥거리가 아니라, (재즈처럼) 앞으로 더 탐구하고 연구되어야 할 예술 장르란 점을 강조한 것이다.

 

'Verses From The Abstract'란 곡을 보면 베이시스트 론 카터의 이름이 올라있단 걸 확인할 수 있다. 샘플링된 게 아니라 실제로 론 카터가 참여했다. 큐팁은 '론 카터는 이 시대 최고의 베이시스트'라고 치켜세우며 그의 연주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론 카터는 비속어 가사를 사용하지 않는 조건으로 참여했다고 알려져 있다(실제로 이 곡에는 비속어가 들어가지 않았다). 곡의 끝자락에 가서 큐팁은 론 카터의 참여에 대한 언급을 한다. 론 카터 정도의 재즈 뮤지션과 함께한다는 뿌듯함이나 자부심의 발로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보다는 재즈적인 요소를 취하려고 했던 것 같다. 재즈 공연 중에 밴드리더가 사이드맨들을 소개하는 것처럼 말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트랙은 'Jazz (We've Got)'이다. 재즈 오르가니스트 지미 맥그리프가 연주한 스탠더드곡 'Green Dolphin Street'을 샘플링한 곡이다. 오르간 소리를 곡의 배경에 운무처럼 깔아 몽환적인 소리를 구축했다. 이 곡의 훅은 '우리에겐 재즈가 있지(We got the jazz)'를 여덟 번 반복하는 단순한 구조다. 중반부까지는 그저 자기들 이야기를 하는데, 후반부에 들어서면 큐팁이 재즈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다. "이제 스캣을 해볼 테니까 잘 듣고, 재즈에 밑줄 쳐 / 뭐라고? 재즈는 네 궁둥이를 들썩이게(move that ass) 할 수 있어 / 왜냐하면 우리는 간지(pizazz)를 끌어내거든." 여기서 큐팁은 재즈의 스캣과 힙합의 프리스타일랩을 '즉흥연주'라는 큰 맥락에서 묶어내며 두 장르 간의 유사성을 강조한다. 재즈로 춤을 추게 한다는 표면적인 메시지와 힙합의 또 다른 의미(Hip-엉덩이, Hop-들썩이다)를 동시에 연상하게 하는 'Move that ass'라는 가사이라든지, 멋이란 의미의 단어 '프재즈(pizazz)'에선 이중적인 의미를 통해 랩의 언어유희적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이 곡은 싱글로 따로 발매되기도 했다. 재미있는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싱글 앨범아트로 블루노트의 스타일을 차용한 것이다. 세 멤버의 사진을 엇갈리게 배치하고, 직관적인 타이포그라피, 그리고 마지막으로 블루노트의 레이블로고를 패러디했다. 말하자면 복합적인 요소를 통해 재즈와 재즈를 상징하는 레이블 블루노트에 대한 오마주를 집대성한 곡이라고 할 수 있겠다.

 

큐팁은 [The Low End Theory] N.W.A [Straight Outta Compton](1989)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한 앨범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사실, N.W.A ATCQ와는 정반대의 그룹이다. ATCQ가 동부 뉴욕 출신이라면 N.W.A는 서부 LA 출신이고, ATCQ가 긍정적이고 밝은 소리를 들려줬다면, N.W.A는 전형적인 폭력적이고 호전적인 소리를 냈다. 무엇보다도 N.W.A는 흑인들이 감내해야 했던 차별과 이로 인한 분노를 담아냈다. 중요한 것은 내용이나 질감이 아니라, 앨범의 완성도였다. 훗날 큐팁이 N.W.A의 프로듀서이자 래퍼인 닥터 드레에 이 사실을 말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나는 [The Low End Theory]에 자극을 받아서 [The Chronic]*을 만들었고 말이지."

 

엔지니어 밥 파워는 이 앨범을 두고 '힙합계의 페퍼 상사(비틀즈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라 말했다. 롤링스톤 매거진은 '이 시대의 500대 명반'에 이 앨범을 154위에 랭크시켰다. 앨범을 작업하던 시기에 어느 기자는 소포모어 징크스**의 부담에 대해서 물었고, 큐팁은 이렇게 대답했다.

 

"소포모어 징크스라고? 뭔 헛소리야, 나는 [The Low End Theory]를 만들 거라고!"

 

 

* 닥터 드레가 1992년에 발표한 솔로 앨범이자, 그가 창시한 힙합 장르 '지훵크'를 대중적으로 유행시킨 작품. 웨스트코스트 힙합을 상징하는 명반으로 꼽힌다.

 

** 첫 작품의 대성공에는 2집의 실패가 잇따른다는 징크스.

 


 

류희성 | 월간 재즈피플 기자

여러 매체에서 음악과 관련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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