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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보컬리스트 웅산  
제목 [인터뷰] 보컬리스트 웅산   2018-09-17


‘재즈 음악가의 이름을 한 명이라도 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는 비아냥 섞인 질문을 받을 때마다 꺼내는 이름이 있다. 바로, 웅산. 그는 대중적인 인지도와 유명세를 지닌 한국의 몇 안 되는 재즈 음악인이다. 장르 음악인이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으면 흔히 ‘변질’이란 수식어가 잇따르지만, 웅산은 그와는 전혀 무관한 인물이다. 장르에 충실한 음악성과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대중성을 모두 겸비한 웅산. 그 여정은 어느덧 20년이 넘었다. 데뷔 앨범을 발표한 지 어느덧 15년이 된 올해, 그가 이번에는 아홉 번째 정규 앨범 [I’m Alright]을 들고 돌아왔다.




2015년 8월호에 인터뷰가 실렸으니 3년 만이네요. 그 사이에 <재즈피플> 리더스폴에 선정되기도 했어요. 어떻게 지내셨나요.


벌써 그렇게 됐군요. 2016년 말에 [Jazz Is My Life]를 냈어요. 데뷔 20주년 공연을 했고, 베스트 앨범도 냈어요. 그리고 다시 이렇게 정규 앨범을 내게 됐어요. 시간이 너무나 빨리 가는 것 같아요.




20주년 공연을 말씀하셨는데요. 빨리 지나갔다는 시간에 20년도 포함이 될까요.


네. 너무 즐거웠던 기억들밖에 없어요. 20주년이라고 하니까, 인터뷰를 할 때마다 ‘힘들지 않았냐’라는 질문을 받았어요. 사실, 늘 즐거웠어요. 그런데 정작 20주년 공연 때가 되니까 리허설 때부터 벅차오르더라고요. 20년이 주마등처럼 많은 것들이 스쳐 지나갔어요. 마음이 울컥울컥했어요. 멘트로도 “20주년이란 게 실감나지 않았는데, 무대에 서서 노래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많은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많이 행복했지만, 먹먹해진다”고 했어요. 마지막에 제가 아끼는 제자들이 ‘Yesterday’를 아카펠라로 노래해서 선물로 제게 줬어요. 그걸 보고 참지 못해서 울었던 기억도 나요.


20년 사이에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개인적으로 가르치기도 했어요. 그 아이들이 지금 아주 많은 활동을 하고 있어요. 유사랑, 마리아킴, 샤카 등 많은 친구들이 있어요. 제가 20주년을 맞이하는 이 시간은 이제 그 친구들이 한국 재즈계를 이끌어가야 하는 시간인 거잖아요. 그게 좀 신기하기도 해요.


재즈가 제게 준 선물이 너무 많아요. ‘Gracias A La Vida’라는 노래가 있어요. 아르헨티나의 국민가수인 메르세데스 소사의 곡이에요. ‘인생이여 감사합니다’라는 제목이에요.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해하는 가사예요. 그 노래를 들으면서 ‘인생이 너무 감사하다’, ‘재즈를 만난 게 너무나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제 그런 가사에 더 공감하게 된 건가요.


네. 정말 공감하게 됐어요.




제자들을 말씀하셨잖아요. 신인이 아니라 한국 재즈계의 주역이 되었어요.


그 친구들이 10년 정도 전에 저를 찾아왔었어요. 마리아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찾아왔고, 사랑이는 스무 살이 갓 넘었을 때 찾아왔어요. 그 친구들에서 잘될 거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특히, 마리아 같은 경우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연주할 수 있는 재즈 레퍼토리가 400곡 정도 됐어요. 그 친구들이 멋진 뮤지션이 될 거란 확신이 있었어요. 지금 그 길을 잘 헤쳐 나가고 있는 모습이 너무 뿌듯해요. 마리아가 새로 낸 앨범도 너무 좋더라고요. (웃음) 이렇게 재즈를 사랑하고, 멈춤 없이 노력해온 사람들이 어떤 결과물을 일궈내는지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더 자랑하고 싶어요.




작년인지 재작년인지, 몇몇 분들과 함께 ‘디바 야누스’ 클럽에 갔었는데, 그때 마리아킴 씨가 연주를 하고 있었어요. 그때도 웅산 씨가 자랑을 했던 거로 기억해요. 되게 자랑스러워하셨어요.


항상 뿌듯해요. 정말로요. (웃음)




클럽 공연은 거의 안 하는 것 같고, 콘서트나 페스티벌 위주의 활동을 하는 것 같아요. 평소에는 뭘 하면서 지내는지도 궁금해요


2005년부터 2015년까지는 술을 마시지 않고, 사람도 안 만났어요. 음악과 앨범 발매에 집중했어요. 1년에 두 장의 앨범을 발표한 적도 있어요. 산에 가고, 외국어 공부도 했어요. 2015년부터 술을 다시 마시고, 사람도 만났어요. 이전의 은둔형 아티스트의 삶은 제게 많은 것을 가져다 줬던 게 사실이에요. 그런데 세상으로 나와서 사람들과 교류하니까 또 다른 천국이 펼쳐지더라고요. (웃음) 다른 분야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재미있어요. 그리고 저를 발전시키는 것 같아요. 벽을 쌓아놓고 제 안에서 얻는 영감이 아니라, 저를 풀어놓고 흡수하고 받아들이고 소통하면서 얻는 영감인 거죠.


매년 여름에는 미국에  공연을 하러 가요. 올해는 네덜란드, 포르투갈에서 공연한 뒤에 이탈리아에 가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어요. 여행이 왜 필요한지를 알았어요. 예전에는 포리재즈페스티벌, 코펜하겐재즈페스티벌 같은 해외 페스티벌에서 공연한 뒤에 그냥 귀국했었거든요. 인제 와서 그게 후회돼요. (웃음)




웅산이란 이름이 큰 산이란 의미이고, 그 안에는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큰마음을 가진 사람’이란 깊은 의미가 담겨 있어요. 이름 따라간다는 말이 있는데, 그 이름이 지금의 웅산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요.


아니라고는 얘기하지는 못할 것 같아요. 워낙 크고 바른 이름이어서 음악을 하면서 게을러질 수 없었어요. 이 이름을 쓴 게 거의 30년이 되었는데, 이 이름이 편해진 건 불과 몇 년밖에 되지 않았어요. 앞으로도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음악적인 것이든 인간적인 것이든, 지금까지는 다듬는 과정이었고, 이제부터는 조금 더 나아가야 할 것 같아요. 아직 완성형이 아니니까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음악을 나눠주고, 더 마음을 다해서 소리를 내고 싶어요. 그래서 데뷔 30주년이 되고 40주년이 되었을 때 마주한 ‘내 이름에 걸맞게 살아가고 있는가’란 질문에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만 길을 걸어가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초심자의 마음을 간직한 거장


그럼 다시 되돌아보도록 해요. 활동 초기에 좋아했던, 혹은 롤모델로 삼았던 보컬리스트가 있었나요.


빌리 홀리데이 때문에 재즈를 시작했지만, 그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재즈 안에 들어와서 봤더니 빌리 홀리데이가 가지고 있는 음악은 너무 깊고 아파서, 제가 쉽게 따라 할 수 없더라고요. ‘I’m A Fool To Want You‘란 곡으로 재즈를 시작했지만, 10번이 안 되게 불러봤을 정도로 쉽지 않은 대상이었어요.


음악적으로 롤모델로 삼을 사람은 너무 많죠. 저는 트럼펫을 불었기 때문에 마일스 데이비스를 굉장히 좋아했었어요.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은 그때그때 다른 것 같아요. 예전에 엘라 피츠제럴드가 좋았다면, 어느 때부터는 사라 본이 매력적으로 느껴지고, 어느 때는 아니타 오데이의 세련됨에 빠지고는 하죠. 요즘에는 재즈미어 혼이라는 친구한테 빠져 있어요. 너무 마음에 들어요.




웅산 씨와 스타일적으로 잘 맞는 것 같아요. 블루스와 소울적인 느낌도 있고요.


모든 걸 가지고 있는 보컬리스트예요. 예전에는 디 디 브릿지워터도 좋아했었지만, 재즈미어 혼만큼 저를 강렬하게 끌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음악적으로도, 에너지적으로도, 감성적으로도 다 강력해요. 세게 풀어내는 사람들은 부드러움에서 약한 편인데도 재즈미어 혼은 다 할 수 있는 음악가예요. 나이가 어리지만, 그 친구에게서 많은 영감을 받아요.




어린 음악가에게서도 영감을 받으시나 봐요.


저는 지금도 재즈 클럽에 암행을 많이 나가요. (웃음) 어떤 친구가 잘한다고 하면 들으러 가요. 요즘 유행하는 음악을 들으러도 가요. 요즘엔 모르는 친구가 많고, 같이할 기회를 엿보고 있어요. 몇 명 눈여겨보고 있어요. 심성보, 심규민 같은. 심 씨가 많네. (웃음)




그런 젊은 연주자들에겐 웅산 씨와 함께하는 게 또 꿈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면 너무나 좋죠. 뮤지션이 함께해보고 싶은 뮤지션이 된다는 건, 반 이상은 성공한 거라고 생각해요. 후배님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뮤지션이 되고 싶어요.




음악을 들어보면 재즈뿐 아니라 알앤비/소울, 록, 블루스, 라틴 등 다양한 음악에 대한 애정이 드러나요. 그런데 왜 재즈를 택했을까요. 그 모든 걸 다 안을 수 있는 장르여서였을까요.


재즈계에 와서, 제가 록에 대한 미련을 두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처음에 록을 하다가 재즈를 했을 때 주변인들이 재즈가 심심하고 재미없다고 했어요. 당시에 저는 재즈가 뭔지 몰랐던 초보자였고, 친구들은 제게 록을 하던 모습을 기대했으니까 당연한 결과였어요. 2007년에 3집 [Yesterday]를 내기 전에 다른 길로 가려고 했었어요. 그게 록이었어요. 2집 때 블루스를 했고, 3집에선 록을 할 생각이었어요. 당시에 미국에서 굉장한 작곡가들에게 곡을 받아서 하게 됐어요. 데모를 들을 때랑 부를 때랑 너무 다른 거예요. 데모에서의 느낌이 나지 않았고, 저도 행복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음악적인 슬럼프에 빠졌다가 작업한 게 [Yesterday]예요. 바닥까지 가야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좋은 에너지가 생기나 봐요.




아이러니하게도 [Yesterday]는 웅산 씨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에요.


아티스트로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나면, 사기와 같은 것들이 응집돼서 생겨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슬픔과 고뇌 같은 게 쌓이고 쌓여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그걸 제대로 토해냈을 때 마음을 진심으로 담은 소리, 멜로디, 가사가 나와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 앨범을 듣고 ‘저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이 느껴진다’고 많은 분들이 말씀해주셔요. 그래서 그런 평가를 받는 게 아닐까요?




재즈가 하나의 예술 장르이기도 하지만, 더 많은 사람이 듣고 즐긴다면 창작자 입장에선 더욱 기쁜 일일 거예요. 웅산 씨는 그러한 성과를 모두 거두었잖아요. ‘사람들이 내 음악을 많이 들었으면 좋겠다’라든지 ‘한국을 대표하는 재즈 보컬리스트가 되겠다’ 같은 목표가 있었을까요.


아예 없었어요. 운이 따라줬던 것 같아요. 아마추어로서 준비 단계 없이 한국 재즈 1세대 선생님들과 함께 무대에 섰었죠. 당장 다음 주에 선생님이 연습해오라고 하셨던 곡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어요. 한 5년쯤 됐을 때, 잘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심을 했고, 그게 음악을 더 깊이 들어가는 데 도움이 되었어요.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외국에서도 활동을 했던 10년 차에는 ‘내가 한국을 대표하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런 활동이 저 스스로에게 동기 부여가 되었던 것 같아요.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하는 것이란 생각에 자극을 받았어요.




대놓고 물어보기는 어렵겠지만, 후배들이 많이 부러워할 것 같은데요.


어떤 보컬리스트들은 조언을 얻고 싶다고 연락을 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걸 잘 모르겠어요. (웃음)




이렇게 하면 된다는 조언 같은 건 있을 것 같아요.


음, 제게 뮤지컬을 하자는 제안이 왔을 때 두려웠지만, 시도를 했어요. 시도를 하고 나서 스스로에게 ‘잘했다’,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뮤지컬을 권해요. 주인공 배역을 맡든, 앙상블 팀에 들어가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한번 해보면 내 노래에 그림을 그리는 데 많은 도움이 돼요. (나)윤선 언니도 뮤지컬을 했었잖아요!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굉장한 인기를 누리고 있으시잖아요. 우리나라는 카페나 바에서나 재즈가 나오지만, 일본에선 편의점에서도 나오더라고요. 어떤 것이든 깊이 파고드는 마니악함이 일본인의 특징 중 하나일 텐데, 일본의 재즈 팬들은 어떤가요.


예전에는 매년 네 번씩도 갔었는데, 요즘에는 두 번 정도 가요. 일본은 재즈 뮤지션들이 가장 아끼는 나라인지도 모르겠어요. 뮤지션이 설 수 있는 무대가 있고, 그걸 진지하게 들어줄 수 있는 감상자가 있어요. 뮤지션에겐 화려한 무대만이 좋은 게 아니에요. 소박하더라도 뮤지션들끼리 에너지를 나누고, 관객과 소통할 때 행복한 사람이에요. 아시아의 국가 중에 그걸 잘 받아줄 준비가 되어 있는 나라이고, 그걸 얕은 수준에서 즐기는 게 아니라 전문적으로 감상해요. 일본의 재즈 클럽은 일종의 소극장처럼 운영돼요. 2~3달 전의 스케줄이 정해져 있고, 입장료도 정해져요. 연주자들은 그 입장료를 책임져야 하니까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고요. 어떤 클럽에선 공연 만족도에 대한 조사를 해요. 좋은 평가를 받은 음악가는 다음번엔 더 좋은 조건으로 초대되겠죠.




그러면 관객도 그런 걸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는 수준이 된다는 거네요.


네, 맞아요. 놀랍죠.




웅산, 음악을 말하다


개인적으로 흑인음악을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라, 재즈 연주자들이 재해석하는 소울/알앤비곡을 많이 들어요. 웅산 씨의 커버곡을 들어보면 단순히 원곡을 재즈로 부른다는 느낌은 아니에요.


스탠더드곡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재즈는 커버곡을 연주하는 장르잖아요. 당연히 자신의 색깔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끔 제 노래가 만족스럽지 않아서 다른 사람의 스타일로 부르면 그건 더 만족스럽지 않아요. 역시 내가 부르고 싶은 방식대로 부르는 게 나라고 생각해요. 제가 표현하고 싶은 방식으로 표현해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나중에 그걸 듣고 후회하는 것도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노래에서 ‘블루스 필’이 자주 드러나요. 웅산이란 보컬리스트가 가진 색깔이 다양해서 하나로 규정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러한 블루스적인 느낌은 중요한 특성이기도 해요.


저는 재즈와 블루스를 구분해서 생각하지 않아요. 재즈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블루스이기 때문에 블루스를 안고 재즈를 하는 건 굉장히 중요해요. 어떤 종류든 간에 블루스를 노래할 때 저는 엄청난 희열을 느껴요. ‘나스럽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번 앨범에는 멤피스 소울 뮤지션인 앤 피블스의 ‘I Can’t Stand The Rain’, 록 밴드 블러드 스웨트 앤 티어스의 ‘I Love You More Than You’ll Ever Know’를 커버했어요. 이러한 곡들을 잇는 것은 블루스예요. 팝송 커버곡을 고를 때 이런 성격이 있는 곡을 우선으로 삼나요.


노래마다 그 힘이라는 게 있는데, 소울이 느껴지는 곡이 있어요. ‘I Love You More Than You’ll Ever Know’의 경우에는, 그걸 듣고 나서 바로 클럽에서 불렀는데 부르면서도 가슴이 터질 것 같았어요. 제가 그렇게 노래를 토해냈을 때 클럽에서 듣는 사람들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해서 좋은 느낌을 받았어요. 제가 앨범에서 소리 지르는 걸 싫어하지만 이건 앨범에 넣어봐야겠다고 생각했죠. ‘I Can’t Stand The Rain’은 제가 활동 초기에 들었던 곡이에요. 그 도입부가 늘 머릿속에 남아 있었고, 기회가 되면 불러보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이번에 수록했어요.


어떤 노래를 좋아하는 것과 그걸 앨범에 수록하는 건 다른 이야기예요. 20년 전에 듣던 노래인데 앨범에는 이제 실은 거잖아요. 빌리 홀리데이의 ‘I’m A Fool To Want You’를 듣고 재즈를 시작했는데도 10번도 안 불러본 것처럼요. 이런 게 재미있어요. 아직도 이 세상에는 불러봐야 할 곡도, 들어봐야 할 곡도 너무 많아요. 그래서 앞으로도 바쁠 것 같아요. (웃음)




그런 데에 욕심이 많으신가 봐요.


욕심이 많은 거예요. 다 불러보고 싶어요. 저는 외국어 공부를 좋아하는데, 언어마다 특성이 있어요. 포르투갈에 갈 때도 포르투갈어로 부르려고 공부를 했어요. 그런데 쉽지가 않더라고요. (웃음) 저 같은 경우에는 소통하는 재즈를 좋아해서, 가는 나라의 언어로 한 곡 정도는 부르려고 해요. 욕심이고, 오지랖이에요. 너무 힘들어요. (웃음)




배려이기도 한 것 같아요. 새로운 사람과 함께 공감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이랄까요.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분들과는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저는 과거 절에서 기도했을 때처럼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거나, 위로가 될 수 있는 음악가가 되고 싶어요. 혼자 하는 음악을 하시는 분들도 멋지지만, 제가 선택한 길은 이 쪽인 거죠.




2016년에는 EP [Jazz Is My Life]를 발표했어요. 직역하면 ‘재즈는 나의 삶’인데, 웅산 씨에게 ‘재즈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나의 삶’이라 답하실 건가요.


재즈가 제 삶이었죠. 물론, 재즈가 없어도 살 수는 있어요. 그렇지만 재즈 안에서 가장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이에요. 그걸로 이야기를 할 때 할 이야기가 가장 많은 사람이고요.




새로운 시대의 웅산 사운드


[Temptation]부터 함께한 존 비즐리는 워낙 유명한 편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이지만, 2016년에 몽케스트라 앨범을 내면서 그야말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됐어요. 이런 스타와의 작업은 어땠나요.


리 릿나워랑 앨범을 작업하면서 존 비즐리를 처음 만났어요. 같이 연주를 하면서 ‘이 사람이 내 음악을 잘 읽어주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정도 수준의 음악가라면 누구의 음악도 잘 읽어주겠지만, 제 음악을 저렇게 잘 읽어주는 사람과 해보고 싶었어요. (웃음) 그래서 그다음 작품부터 제 작품을 맡아달라고 부탁해서 함께하게 됐어요. [Jazz Is My Life]는 뉴욕에서 녹음했어요. ‘Beautiful Arirang’ 같은 경우에는 제가 준비한 게 있었는데, 녹음 당일에 존 비즐리가 다 뒤집어놨어요. 멋지게 나왔어요. 우리는 그런 거에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잖아요. 저희는 굉장히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는데, 아쉽게도 EP라서 많이 알려지지는 않은 것 같아요.




[Temptation]에선 존 비즐리, 리 릿나워, 나단 이스트와 함께했어요. 이러한 세계적인 스타 연주자와 함께하면서 배우는 것이 있나요.


어떤 면에서 굉장히 많이 배려하다가, 어떤 면에서는 배려가 아예 없어요. 배려하지 않는 순간에 그 안에서 제가 살아남는 법을 찾고 배우게 돼요. 대가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흥분하지 않더라고요. 리 릿나워랑 공연을 할 때, 그가 조금 더 빌드업을 시켜주길 바랐는데 그러질 않았어요. 그때는 그게 너무 아쉬웠는데, 나중에 영상으로 다시 보고 그 의미를 알았어요. 그게 더 쿨하고 음악적인 것이더라고요. 순간적으로 관객들을 흥분시키기 위한 ‘트릭’ 같은 음악이 아니라, 진짜 알맹이로 승부하는 사람들을 대가라고 한다는 걸 알았어요. 사실,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쉬워요. 멋있는 척하고, 어려운 릭 몇 개 외워서 결정적인 순간에 해보이고 하는 식으로요. 대가들의 연주에는 그 쿨함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더라고요. 그리고 연주만큼이나 인격도 훌륭했어요.




인격이 훌륭하다고는 했지만, 배려가 없을 때도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런 그들, 그것도 스타 연주자인 그들을 끌고 간다는 건 쉽지 않을 것 같기도 해요.


이번 녹음을 할 땐, 지난번에 아쉬웠던 부분들을 염두에 두고 편곡을 완벽하게 해서 갔어요. 녹음 전날 존 비즐리와 악보를 보고 이야기를 하는데, 순식간에 ‘뒤집어엎기’를 하더라고요. (전원 웃음) 근데 그게 멋지지 않거나, 납득할 것이 없으면 반대했을 텐데, 설득력이 있는 거예요. 작업을 하면서도 많이 느꼈어요. 많이 배워요.




[Temptation]과 [I’m Alright]은 ‘컨템포러리 스무드 재즈’라는 키워드를 공유해요. 어떠한 음악을 지칭하는 건가요.


[Temptation]은 제 아이디어보다는 프로듀서였던 잭 리 씨의 아이디어가 많이 반영된 작품이에요. 이번 [I’m Alright]에선 제가 그리는 그림을 더 많이 담아내고 싶었어요. 물론, 막판 뒤집기가 있기는 했지만, 제가 선장이 돼서 진행을 했어요. 그래서 ‘나스러운’ 편곡, 음악은 [I’m Alright]에 있는 것 같아요.

이 두 앨범의 수록곡들이 스무드 재즈의 형식을 하고 있어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어요. 그런데 사실 제가 하고 싶었던 음악을 다 넣었어요. 의도적으로 스무드 재즈를 하겠다고 해서 한 건 아닌데,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흘러갔어요. 스무드 재즈, 퓨전 재즈라고 하면 로스앤젤레스잖아요. 그곳에서 녹음을 했어요. 함께한 기타리스트 찰리정도 그곳에서 10년을 살았고,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장르가 스무드 재즈거든요. 운명적으로 스무드 재즈에 딱 맞아떨어졌던 것 같아요.





앞서 언급한 커버곡말고도 스탠더드곡 ‘Smoke Gets In Your Eyes’와 ‘You And The Night And The Music’도 있어요. 역시 관심이 가는 것은 자작곡 ‘I’m Alright’, ‘Love Is A Losing Game’, ‘Tell Me Why’이에요. 많은 재즈 보컬리스트들이 스탠더드곡, 더 나아가서는 커버곡에 커리어를 맞추는 것과는 달리 웅산 씨에겐 자작곡이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것 같아요.


우선순위를 따지지 못하겠지만, 제 20년을 나눠서 본다면 첫 10년은 재즈 스탠더드곡 위주로 했었고, 그 이후부터는 제가 원하는 걸 찾기 위해서 곡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것들의 균형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걸 병행했을 때 자기가 원하는 걸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곡을 쓰고, 스탠더드곡을 부를 거예요.




자기에게 맞는 곡을 써서 부르는 건 기존의 곡을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해서 표현하는 것과는 또 다를 것 같아요.


곡을 만들다 보면 졸작이 나올 수 있죠. (전원 웃음) 쓸 때는 만족스러웠다가 나중에 아쉬울 때도 있죠. 스탠더드곡은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은, 검증받은 곡이에요. 계속해서 그 사이에서 찾아 나가야 하는 것 같아요.




앨범 작업하면서 특별히 재미있었던 에피소드가 있었나요.


‘You And The Night And The Music’에 그려놓은 그림이 있었는데, 녹음 전날 그걸 뒤집어서 10/4박자로 만들어놓은 거예요. 연습이 충분하지 않았어요. (웃음) 다들 곤란해했어요. 리허설 한 번 하고 진행했는데, 잘 진행됐어요. ‘I Can’t Stand The Rain’도 건반 없이 편곡을 했는데, 존 비즐리가 전통적인 느낌과 현대적인 느낌을 섞어보자고 해서 건반 라인을 넣기도 했어요.




이미 너무나 많은 앨범을 내셨어요. 지금 피지컬 앨범, 그것도 정규 앨범을 낸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손해를 감수하는 일이에요.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정규 앨범을 꾸준히 발표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이유를 찾을 것도 없어요. 제가 해야 하는 일, 제가 가야 하는 길 같은 거예요. 게을러지지 않으려고 해요.




그중에서 가장 아끼는 앨범이 있다면.


[Yesterday]와 [I Love You]를 좋아하고, 그다음으론 [Tomorrow]도 좋아해요.




말씀하신 앨범은 근작은 아니에요. 많은 사람들이 과거 자신의 작품을 보면 쑥스러움을 느낀다고 하잖아요.


1집을 들을 때마다 풋풋해서 민망하더라고요. 10여 년 넘어서 들으니까 귀엽다는 생각 정도만 들더라고요. 받아들여야죠. 부끄러운 것도 나였으니까요.




사람에게는 여러 종류의 성장이 있잖아요. 정말 말 그대로 성장을 하는 단계가 있고, 일정한 수준이 되면 다른 방향으로 성장을 하게 돼요. 웅산 씨는 본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시나요.


재즈라는 음악은 호락호락하게 ‘마스터’의 타이틀을 내주지 않아요. 아마 그래서 재즈 음악가들이 평생 공부를 하고, 겸손하게 사는 것 같아요. 계속해서 영감을 받아야 하죠.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음악을 듣는 것을 게을리하면 안 돼요.




외부에서 보기에 웅산 씨에게 전성기를 논하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로 늘 탄탄한 길만을 걸어온 것처럼 보여요. 하지만 그 과정에는 내적인 갈등이라든지 심리적, 물리적인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아요.


소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음악가여서 그런지 제 음악을 어렵지 않게 접하셨던 것 같아요. 그 덕분에 팬들을 가지게 됐어요. 어렵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부분은 스스로 극복해나가야 하는 부분이에요. 다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재즈와 후배 연주자들을 소개하고 싶었는데, 저 혼자만의 힘으로는 부족할 때가 많았어요. 그게 속상해요. 지방에서 공연을 하면 너무나 좋아해 주셔요. 공연이 끝나면 꼭 다른 연주자들의 음악도 들어달라고,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드려요.




20년이 지났고, 이제 한국 재즈계의 선배가 되셨어요. 지금의 한국 재즈계에 대한 생각을 말씀해주신다면.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20년 동안 제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멈추지 않았고, 많은 힘든 일들이 생기겠지만, 꿋꿋하게 가주었으면 좋겠어요.




첫 앨범을 발표한 지 올해로 15년이 됐어요. 그리고 활동은 20년이 넘었고요. 지금으로부터 15년 뒤, 20년 뒤의 모습을 그려본다면.


이렇게 웃으면서 인터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음악적인 이야기를 더 많이 하고 싶어서 눈이 반짝이는 음악가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멋지고, 아름다운 음악가는 꿈도 꾸지 않으니까, 음악적으로 근사해질 수 있고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류희성 | 월간 재즈피플 기자

여러 매체에서 음악과 관련된 글을 쓰고,

흑인음악 100년의 이야기를 담은 책 <블랙 스타 38>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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