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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토니 베넷 & 다이애나 크롤의 새로운 듀엣  
제목 [기획] 토니 베넷 & 다이애나 크롤의 새로운 듀엣   2018-08-17


새로운 사운드에 목마른 연주자들은 만남을 즐긴다. 새로운 연주자들과 만나 함께 연주하는 것은 새로운 긴장을 발생시키고 이 긴장은 새로운 사운드로 이어진다. 물론, 오랜 시간 그룹을 이루어 함께 활동하며 하나의 스타일을 발전시키고 완성하는 것도 매력적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사운드의 변화가 필요할 때는 연주자와 편성을 바꾸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 그 악기 편성, 그 인적 구성이 리더에게 영향을 주어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러 연주자가 만나고 그 속에서 그들 각각의 의지와는 다른 비자발적 음악을 재즈라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재즈를 순간의 음악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실제로 마일스 데이비스는 새로운 음악이 필요할 때 새로운 연주자를 찾아 헤맸다. 아트 블래키, 게리 버튼 등의 연주자들이 새로운 연주자를 발굴하는 데 힘썼던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보컬리스트들은 어떨까? 이들 또한 피아노나 기타 등 하나의 악기만을 배경으로 하는 것부터 트리오, 쿼텟, 나아가 빅밴드와 함께하는 등 편성의 변화를 통해 새로운 시도를 하곤 한다. 하지만 가장 신선한 시도는 다른 보컬리스트와 함께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편성의 변화가 배경의 변화를 의미한다면 다른 보컬리스트와 함께하는 것은 그 속에서 자신의 위치 변화를 의미한다.



토니 베넷의 듀엣 활동


보컬리스트 토니 베넷은 60대에 접어들면서 다른 보컬리스트와 함께하는 것을 통해 노장답지 않은 새로운 앨범을 선보여 왔다. 그 전까지 그는 언급했듯이 편성의 변화와 레퍼토리의 변화를 통해 음악적 신선도를 유지하곤 했다. 그러나 재즈가 갈수록 대중들과 멀어지고, 게다가 그 대중들 또한 중장년이 주류를 이루게 되면서 다양한 보컬리스트들과 함께 노래하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여기에는 그의 경제적인 상황도 영향을 주었다. 그러니까 1970년대 후반 그는 자신의 앨범 제작을 위해 설립했던 임프로브 레이블이 문을 닫고 여기에 두 번째 결혼마저 이혼으로 막을 내린 데다가 마약에 중독되는 등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그런 과정에서 돈을 탕진해 국세청으로부터 집이 압류되기도 했다.


길을 잃은 것 같은 상황에서 그의 아들 대니 베넷이 독자적인 음악 활동을 멈추고 매니저로 나서면서 상황이 반전되었다. 아들의 적절한 관리 속에 그는 크고 작건 다양한 공연을 통해 과거의 명성을 쌓아갔다. 그 결과 1986년 임프로브 레이블을 만들며 떠났던 콜롬비아 레이블과 다시 계약을 맺고 다시 앨범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 중 1990년대 뮤직비디오의 시대가 열리자 그는 이에 맞추어 1993년 앨범 [Steppin’ Out]을 발표하며 타이틀곡이라 할 수 있는 ‘Steppin' Out With My Baby’를 뮤직비디오로 제작했다. 그런데 그것이 MTV에 방송되면서 기대 이상의 인기를 얻었다. 이에 <뉴욕 타임스>는 ‘토니 베넷은 세대 차이를 극복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없앴다. 그는 록을 듣고 자란 젊은 세대와 견고하게 연결되었다’고 했다. 이러한 새로운 인기에 힘입어 그는 1994년 당시 유행하던 <MTV 언플러그드> 방송에 출연했다. (사실 평생 언플러그드 음악을 해온 그에게 이 공연은 다소 역설적인 것이었다.)


그의 오랜 음악적 지우(知友)였던 피아노 연주자 랄프 쉐런이 이끄는 트리오와 함께했던 이 공연에서 그는 엘비스 코스텔로, 케이디 랭을 초대해 함께 노래했다.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이 공연을 담은 앨범 [MTV Unplugged: Tony Bennett]은 백만 장이란 판매고를 이루며 그래미 어워즈 '올해의 앨범' 부분을 수상하기까지 했다.


이 언플러그드 공연은 다른 보컬리스트와 듀오로 노래하는 것의 매력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곧바로 그는 듀오 앨범을 녹음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 함께 해온 랄프 쉐런과 편성과 레퍼토리를 새로이 하며 넉 장의 앨범을 이어갔다. 그리고 랄프 쉐런과의 마지막 녹음이 된 2001년 앨범 [Playing With My Friends: Bennett Sings The Blues]를 시작으로 그는 다양한 보컬리스트들과 함께 노래하기 시작했다. 이 앨범에서 그는 다이애나 크롤, 레이 찰스, 나탈리 콜, 쉐릴 크로우, 빌리 조엘, 비비 킹, 보니 레이트, 케이 스타, 스티비 원더 등 재즈는 물론 팝과 록의 유명 보컬리스트들과 함께 노래했다.



앨범은 미국에서만 골드 레코드(50만 장)의 판매고를 이루는 성공을 거두었다. 이에 힘입어 그는 케이디 랭과 함께한 앨범 [A Wonderful World](2002), 폴 매카트니,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제임스 테일러, 후아네스, 엘튼 존, 팀 맥그로우, 스팅, 보노, 존 레전드, 조지 마이클 등 2001년도 앨범보다 훨씬 더 다양한 성향의 보컬리스트들과 함께한 앨범 [Duets: An American Classic](2006), 레이디 가가, 존 메이어, 에이미 와인하우스, 노라 존스 등 당대의 핫한 보컬리스트들과 조쉬 그로번, 안드레아 보첼리 등 클래식 계열의 보컬리스트들까지 아우르는 여러 보컬리스트들과 함께한 [Duet II](2011),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마크 앤서니, 글로리아 에스테판, 비첸테 페르난데스 등 영어권은 물론 스페인어, 포르투갈어권의 라틴 보컬리스트들과 함께한 앨범 [Viva Duets](2012), 레이디 가가와 함께한 [Cheek To Cheek](2014), 그리고 다이애나 크롤, 빌리 조엘, 레이디 가가, 마이클 부블레, 안드레아 보첼리, 케이디 랭, 스티비 원더, 엘튼 존, 루퍼스 웨인라이트, 여기에 배우 케빈 스페이시까지 참여한 그의 90세 생일 기념 공연을 담은 앨범 [Tony Bennett Celebrates 90](2016)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듀오 앨범을 선보였다.


재즈에 국한되지 않은 팝, 록, 클래식, 월드뮤직 장르의 보컬까지 아우르는 노래를 불렀기에 감상자에 따라 너무 대중적인 부분만을 신경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꼭 그렇게만 볼 수 없는 것이 보컬리스트들은 다양해도 레퍼토리만큼은 스탠더드곡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많은 보컬리스트들이 대중성을 이유로 유명한 팝, 록을 노래하고 그 과정에서 음악 또한 팝, 록 쪽으로 경도되곤 하는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높이 평가할 부분이다. 여러 장르의 유명 보컬리스트들을 초대해 그들에게 마치 재즈의 매력을 느끼게 해주려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1990년대 뮤직비디오를 계기로 젊은 감상자들을 재즈로 이끌었던 것처럼 재즈 밖의 감상자들이 재즈에 관심을 갖게 하기도 한다. 이 앨범들 대부분이 골드나 플래티넘(1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재즈 애호가들만을 대상으로서는 이런 성과를 내기란 매우 어렵다.



토니 베넷, 다이애나 크롤과 함께

조지 거쉰을 노래하다


이달 3일, 우리 나이로 93세가 되는 것에 맞추어 토니 베넷의 새로운 듀오 앨범 [Our Love Is Here To Stay]가 발매된다. 이번에는 여러 보컬리스트와 함께한 앨범이 아닌 다이애나 크롤과 함께하는 공동 앨범이다. 토니 베넷은 이미 여러 차례 다이애나 크롤과 호흡을 맞추었다. 2001년도 앨범 [Playing With My Friends: Bennett Sings The Blues]에서 ‘Alright, Okay, You Win’을 노래한 것을 비롯해 2006년 앨범 [Duets]에서는 ’The Best Is Yet To Come‘을, 2016년 앨범 [Tony Bennett Celebrates 90]에서는 ‘I've Got The World On A String’를 함께 노래한 적이 있다. 대략 18년간 인연을 이어온 셈이다. 한편 다이애나 크롤은 그녀대로 2015년 앨범 [Wallflower]에서 마이클 부블레, 브라이언 아담스, 조지 페임, 사라 맥라클란, 빈스 길 등 다양한 보컬리스트들과 함께 노래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이 스튜디오에서 만나 한 곡이 아닌 한 장의 앨범을 녹음하려면 과거의 경험 이상의 비자발적 사건이 필요하다. 특히 두 사람이 소속된 레이블이 다르다는 것은 큰 장애로 작용할 수 있었다. 그래도 현재의 아버지를 재기하게 해 오늘의 위치까지 이끈 대니 베넷이 유니버설 뮤직 그룹 산하 재즈와 클래식 레이블을 모아 놓은 버브 레이블 그룹의 수장으로 2016년에 취임한 것이 적잖은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싶다. 분명 자신이 경영하는 레이블의 대표 여성 보컬리스트와 오랜 시간 매니저로서 함께한 아버지가 함께 노래한 앨범을 만드는 것,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한편 두 보컬리스트는 이번 앨범에서 ‘S’Wonderful’, ‘But Not For Me’, ‘Fascinating Rhythm’ 등 조지 거쉰의 곡들을 노래했다. 여기에는 지난 2017년 11월 토니 베넷이 미국 의회 도서관이 평생에 걸쳐 대중음악을 문화적으로 널리 알리는 데 큰 업적을 기록한 음악가에게 주는 ‘거쉰상’을 수상한 것이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다. 게다가 올해—정확히는 9월 26일—는 거쉰의 탄생 120주년이 되는 해가 아니던가.


거쉰의 탄생 120주년을 기념한다고 해서, 현재 가장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두 보컬리스트의 만남이라고 해서 편곡과 편성을 복잡하게 하여 외적인 부분을 부풀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앨범은 토니 베넷이나 다이애나 크롤의 다른 앨범들보다 한층 가볍고 소박하다. 열두 곡을 노래했지만 앨범 시간이 37분밖에 되지 않는다. 연주 또한 토니 베넷의 2015년도 앨범 [The Silver Lining: The Songs Of Jerome Kern]에 참여했던 빌 샬랩  트리오만을 의지했다.


이렇게 사운드의 힘을 뺀 것은 그만큼 두 보컬리스트의 노래를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였고, 거쉰의 멜로디가 지닌 매력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였다고도 생각한다. 실제 두 사람의 낭만적인 노래는 멜로디를 거의 그대로 따라간다. 스캣이나 장식적인 부분은 찾아보기 힘들다. 빌 샬랩 트리오 또한 테마와 테마 사이에 가벼운 피아노 솔로를 넣기도 했지만 두 보컬리스트가 편안하게, 그리고 낭만적으로 노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데 주력할 뿐이다.


두 사람의 호흡에 있어서는 자연스러움이 매력이다. 많은 연습을 통해 호흡과 비브라토까지 맞추는 식의 정교함보다는 각자 하던 대로 편안하게 노래했다는 인상이 강하다. 다이애나 크롤은 스모키 보이스로 평소처럼 부드럽고 육감적으로 노래하고 토니 베넷도 널리 알려진 그대로 그리 길지 않은 호흡으로 리듬을 타면서 툭툭 던지듯 마치 이야기하는 것처럼 노래한다. (이를 위해서 다이애나 크롤리 혼자서 노래한 ‘But Not For Me’와 토니 베넷이 혼자서 노래한 ‘Who Cares?’를 먼저 듣고 나머지 곡을 들어보기 바란다.) 그래서 두 사람의 노래는 하나의 노래를 두고 각자의 느낌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다. 곡 전체의 분위기에서는 동의하면서도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이를 확인하며 즐거워한다고 할까? 그래서인지 두 사람이 주고받는 단계를 넘어 함께 같은 부분을 노래하는 부분은 상대적으로 적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어울림은 스튜디오 녹음임에도 라이브 같은 생동감을 강화했다. 모든 곡을 한 번에 녹음했을 것만 같다. 특히 ‘S’Wonderful’의 경우 다이애나 크롤의 노래 사이로 희미하게 웃음소리가 들리는데 아주 잠깐의, 작은 부분이지만 그것이 두 사람이 어느 공연에서 즉흥적으로 만나 서로가 아는 노래를 부르는 것 같은 상상을 하게 만든다. 나 같은 경우 120세가 된 거쉰 앞에서 두 사람이 노래하는 비현실적이지만 매우 즐겁고 유쾌한 이미지가 떠올랐다.


각자의 방식으로 편안히 노래했음에도 두 사람의 노래가 주고받는 것 이상의 조화로 다가오는 것은 결국 전반에 흐르는 흥겹고 낭만적인 정서 때문이다. 두 사람의 노래에는 일체의 근심이 없다. 인생은 만남의 연속이고 그 만남 속에서 즐거움이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즐거움은 거쉰의 스탠더드곡 속에 담겨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또한 간단한 밴드가 있고 같이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더 복잡하게 재즈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도 말하는 것 같다. 그것이 두 사람의 차이를 넘어 조화로 다가온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이 긍정적 분위기의 연출을 위해 서로의 역할, 노래 방법 등을 정하고 녹음에 임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서로의 눈을 보며 자신의 느낌에 충실해 노래를 하다 보니 이러한 사운드가 만들어졌을 뿐이다. 또한 바로 이 맛에 두 사람이 함께 노래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 또한 서로의 합을 넘은 그 이상의 우발적 결과에 궁금해하며 노래했을 것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음악을 담은 이 앨범이 생각 외로 신선하게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   




최규용 | 재즈 칼럼니스트
라디오 키스 재즈 담당 PD이다.
저서로는 <재즈>와 <재즈와 살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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