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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선의 아무말] 바꾸기는 어렵지만, 위로할 수는 있다  
제목 [김학선의 아무말] 바꾸기는 어렵지만, 위로할 수는 있다   2018-07-25


“족발집 사장은 왜 망치를 들었나?” 대략 이와 비슷한 제목의 기사가 쏟아졌다. 오랜 시간 건물주와 임대료 다툼을 벌이던 서울 서촌 궁중족발 사장이 건물주를 찾아가 망치를 휘두른 사건이다. 오랜 기간 싸워왔지만 몇몇 매체를 제외하곤 임차인의 외침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전국 어디에서나 비슷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기 때문에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었는지 모른다. 불행히도 망치를 휘두르고 난 뒤에야 많은 언론이 이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음악잡지에 사회면 소식을 길게 쓰기는 어렵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새롭게 건물을 인수한 건물주가 보증금 3,000만 원, 월 297만 원이었던 임대료를 보증금 1억 원, 월 1,200만 원으로 네 배 가까이 올리자 임차인이 이에 반발한 것이다. 건물주는 “(사실상) 임대료를 올리기보단 나가달라고 한 것”이라며 재산권 행사라 말한다. ‘합법’이란 만능열쇠 앞에서 임차인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몇 없었다. 수긍하고 나가거나 맞서 싸우거나. 임차인은 싸우기로 결심했다.


전쟁 같은 시간이었다. 모두 열두 번의 강제집행이 있었고 이에 맞서 많은 이들이 궁중족발과 연대해 가게를 지켰다. 이 과정에서 임차인의 손가락 네 개가 절단되는 사고도 있었다. 지게차를 동원한 위험천만한 강제집행에 결국 이들은 가게 밖으로 나와 싸움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강제퇴거 뒤 건물주에게 온 전화를 받은 임차인은 망치를 들고 그를 찾아갔다.


이 비극은 지금 한국 사회에서 너무나 흔하게 보는 풍경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낯선 외국어는 어느샌가 한국에서 흔한 말이 돼버렸고, 상권을 활발히 하고 건물 가치를 높이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이들은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도리어 쫓겨난다. 한 건물에서 5년 이상 영업을 한 궁중족발 같은 경우엔 건물주가 월세를 300만 원에서 3억 원으로 올려도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 이런 부당한 ‘합법’에 맞서려 하면 인터넷에선 이를 ‘을질’이라며 조롱한다.


이 서글픈 한국사회의 풍경에 두 가지 음악이 교차했다. 하나는 랩을 하는 영라이언의 음악이다. 궁중족발 건물주의 아들이기도 한 영라이언은 랩을 하는 한편으로 아버지 뒤를 쫓아다니며 임차인과 연대하는 이들을 자극하고 인터넷에선 조롱성 댓글을 단다. “기집애들 다리 벌리게 하는 건 내 profession”이라는 여혐 가사를 쓰고, “나는 왕좌에서 태어나 내가 태어난 데서 혼자서 내려와 나를 내려다보는 새끼들에게 증명하기 위해 전부 때려 부수고 또다시 세워놔”라며 느닷없이 스웩을 날리는 이 젊은 래퍼를 보며 음악이 무언가를 생각해본다.



때때로 음악이 이처럼 우습고 무력하게 들릴 때 다행히 다른 음악이 이 무력감을 떨치게 해준다. 지금은 정수민의 [Neoliberalism]이 그렇다. 앨범 제목을 아예 ‘신자유주의’로 정한 베이시스트 정수민은 ‘Neoliberalism’, ‘Sociallism’, ‘강남478’이란 제목을 가진 곡들을 아름답고 치열한 피아노 트리오 구성으로 풀어낸다. 스무 살 무렵 카이스트 학생들의 잇따른 자살을 보며 경쟁을 부추기는 현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눈뜬 그는 재즈로 사회적 메시지와 약자를 향한 시선, 자연과 환경을 이야기하려 한다.


정수민과 영라이언, 둘은 궁중족발 현장에서 마주쳤을지도 모른다. 정수민은 궁중족발과 연대해 함께 그곳을 지키던 이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계집애들 다리를 벌리게 할 수 있다는 음악이 있는 한편에 약자들의 마음을 낮은 더블베이스 소리로 보듬으려는 음악도 있다. 흔히 ‘세상을 바꾼 음악’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이는 수사에 가깝다. 음악으로 세상을 바꾸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위로받을 뿐이다. 음악의 역할은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신자유의주의는 이젠 그만 끝내야 하지 않나’ 하는 의미로 상여 행렬의 종소리를 연상시키는 소리를 넣었다는 정수민의 ‘Neoliberalism 1’을 들으며 이 무력한 마음을 위로받는다.  




김학선 | 대중음악평론가

음악을 듣는 사람.

음악을 모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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