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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피아니스트 백건우, 담백한 일관성  
제목 [트렌드] 피아니스트 백건우, 담백한 일관성   2016-09-17


피아니스트 백건우, 담백한 일관성

 

누군들 음악 안에서 나름의 진리를 찾지 않으랴. 그러나 백건우의 태도는 성실하다. 그 태도는 제의적이다. 너무나 유명한 수식어인음악의 구도자란 표현보다는 차라리음악의 사제를 연상시킨다. 일찍이 독특한 향기가 어렸던 그의 라벨이나 리스트, 라흐마니노프, 데카로 이적한 후에 녹음한 바흐-부조니, 포레, 쇼팽 협주곡, 베토벤 소나타, 도이치 그라모폰을 달고 발매된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과 간주곡, 슈베르트 작품집은 하나같이 자극적이지 않다. 담백한 연주를 들으며 그의 말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된다.

 

백건우의 음반은 1991년 단테 레이블에서 발매한 라벨 작품집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어 풀랑과 드뷔시, 사티 등 프랑스 작곡가들의 작품이 버진 레이블에서 나왔다. 낙소스에서 안토니 비트가 지휘한 폴란드 국립방송관현악단과 녹음한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전곡은 격찬을 받았다. 스크랴빈 소나타 등 피아노 작품집(단테),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소나타집(단테), 페도세예프가 지휘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전곡(RCA), 멘델스존 무언가집(단테), 휘세인 세르메트와 함께한 슈미트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랩소디(오비디스) 등 음반들이 발매됐다.

 

데카와의 첫 레코딩은 부조니가 편곡한 바흐의 건반 작품집이었다. 백건우는 바흐를 20세기적인 인물로 평가했다. 바흐가 예견한 20세기의 복잡한 화음의 일부를 부조니가 노출했다고 보았다. 실내악적인 음악보다는 심포닉한 곡에 경도된 그의 취향이 그를 부조니로 이끌었다고 할 수 있다. 데카에서 두 번째 음반은 가브리엘 포레. 20년 전부터 공부해오며 고귀하게 생각해 아껴오던 작곡가였다.

 

2003년 안토니 비트가 지휘하는 바르샤바 필과 녹음한 쇼팽 피아노 협주곡집이 발매됐고 2004 6 12일 이들 진용 그대로 예술의전당에서 내한공연도 열렸다. 이들이 첫 등장할 때부터 무대와 객석의 완벽한 호흡을 예감했다. 첫곡크라코비아크에선 폴란드 크라코프 지역 민속무곡에서 땄다는 론도가 화려한 패시지로 흘렀다. 백건우의 타건은 야무졌고, 음색은 영롱했다. 백건우가 연주한 쇼팽 협주곡 2번은 가볍고 담백한 터치, 비감한 정서에 함몰되지 않는 절제가 돋보였다. 모던한 응시는 파스텔조 여운의 2악장에서 빼어났다. 안개처럼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그의 쇼팽은 아름다웠다.

 

이후 백건우의 데카 레코딩은 베토벤 소나타 전곡녹음으로 이어졌다. 2005년부터 3년동안 계속된 큰 프로젝트였다. 백건우는 베토벤이 고전주의자가 아닌 낭만주의자, 즉 로맨티스트라고 이야기한다. 하이든, 모차르트는 고전적인 삶을 살았고 궁정을 떠나지 못했다. 고전주의 음악은 대부분 궁정에서 추던 춤곡이었다. 반면 베토벤은 음악을 들고 거리로 나간 사람이었다. 클래식 음악을 대중에게 발표하기 시작한 베토벤은 혁명가였다.

 

2007 12월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 32곡을 1주일에 완주하는 대장정을 마쳤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3층 좌석까지 전원의 기립 박수 속에 꽃다발을 든 팬들이 초인적인 일정을 감동적으로 소화한 백건우에게 축하의 인사를 보내고 있었다. 그때 1층 맨 뒷좌석에 앉아있던 아내 윤정희는 백건우의 뮤즈이자 불멸의 연인이었다.

 

2010년 백건우는 클래식 강국인 일본에 인상적인 족적을 남겼다. 이전의 그는 유독 일본에는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피아니스트 같은 존재였다. 실제 공연을 통해서 백건우를 접한 평론가들이 격찬을 하면서 파이쿠(Paik의 일본식 발음)의 이름이 급속도로 회자됐다. 2005년 윌리엄 에딘이 지휘한 이탈리아 토리노 RAI 심포니와 협연에서 열정적이면서도 겸허한 태도로 브람스를 관조하는 해석을 선보인 바 있던 백건우는 2010년 엘리아후 인발이 지휘한 체코 필과 브람스 협주곡 1번을 녹음했다. 백건우는 특유의 끈기와 미감을 바탕으로 새로운 해석의 미학을 보여주었다. 생명력을 불어넣는 특유의 영롱한 리듬 감각과 브람스 해석에 특히 요구되는, 나무보다는 숲을 아우르는 거시적인 조형 감각이 발휘됐다.


2011년에는 브람스의 간주곡, 카프리스, 로망스를 연주한 독주 음반을 기매해 작곡가 특유의 잿빛 회한에 슬픔과 평온함을 묵직하게 투사했다. “음표마다 고독해야 한다는 브람스의 말대로 담담하고 향기로운 타건을 엿볼 수 있었다. 베토벤과 브람스 이후순례자백건우가 향한 곳은 슈베르트였다. 2013년 도이치 그라마폰 레이블을 달고 발매된 새 음반은 네 개의 즉흥곡 D899악흥의 순간’ D780 Op.94 2,4,6, 피아노 소곡 D946 1~3번을 수록했다. 백건우는 가장 슈베르트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숙고를 거듭했고, 그에 따라 순서를 재배열했다. 2013 9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리사이틀 프로그램도 음반의 순서와 동일했다. 그 누구의 것도 아닌백건우의 슈베르트였다. 그의 해석은 달지 않았다. 아첨하지 않는 연주였다. 깊고 두터운 타건은 가을바람을 떠올리게 했다. 백건우는 2013 6월 한국 섬마을을 찾아 지역 주민을 위한 음악회인섬마을 콘서트투어로 큰 화제를 모았다. 2014 7 24일에는 제주도 제주항 특설무대에서세월호 사고 100일 추모공연 - 백건우의 영혼을 위한 소나타로 조용히 관심을 환기시켰다.

 

그는 결코 달변이 아니다. 어눌한 쪽에 가깝다. 질문 하나 던지면 오래 오래 곱씹듯이 이야기하다가 삼천포로 빠지고, 또 다른 질문 얘기하다가 아까 그 질문에 대한 현답이 나오곤 한다. 따지고보면 음악이 그런 게 아닐까. 음악에 정답은 없다. 인생에 정답이 없는 것처럼. 오는 9 29백건우의 선물에서는 바흐 프랑스 모음곡 5, 브람스의 헨델 주제에 의한 변주곡, 리스트의 바흐 이름에 따른 음계명 환상곡을 연주한다. 나머지 4~5곡을 관객의 신청으로 채운다는 점은 흥미롭다. 백건우는 어떻게 이런 공연을 하게 하게 됐을까.

 

“만 70이 됐어요. 여유가 생겼을 겁니다. 사실 내 자신이 궁금해요. 사람들이 어떤 곡을 듣기를 원하는지 바라는지 궁금할 수 있지 않겠어요? 브람스의 헨델 주제 변주곡은 옛날부터 하고 싶었던 곡이에요. 한국에서 그 전엔 하지 않았지. 다만 리스트바흐 이름에 따른 음계명 환상곡은 그동안 잊어버리고 있었어요. 대만 친구랑 이야기를 하다가 이 곡 이야기가 나와서 다시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바흐로 시작해서 바흐로 끝나게 중간에 브람스. 음악적으로 잘 맞는 것 같아요.”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되는 걸까. 이제 백건우는 또 한 번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연주할 계획을 짜고 있다. “10년이 됐으니까 또 듣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예전보다 베토벤이 더 재미있게 다가오기도 해요. 요즘 다시 한 번 치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진지하게 생각중이에요.”

 

거칠게 표현하면, 백건우의 음악은 담백함으로 일관했다. 일관성은 담백해야 오래 가는 게 아닐까. 오랫동안 예술을 하려는 사람이라면 새겨볼 만하다.  

 


류태형 | 음악 칼럼니스트

여러 매체에 음악 관련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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