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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프레드 허쉬 트리오 [Live In Europe]  
제목 [리뷰] 프레드 허쉬 트리오 [Live In Europe]   2018-06-25


프레드 허쉬 트리오 [Live In Europe]


다시 한번 정점에 선 연주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르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노력을 거듭한다. 그런 과정에서 발전하는 모습은 자신은 물론 지켜보는 주위 사람들에게도 큰 행복이다. 정상에 오른 뒤에도 그는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나아가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명인의 대접을 받을 자격이 주어진다.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피아니스트 프레드 허쉬는 정상의 경지에 오른 연주자다. 그는 지금까지 다양한 편성을 통해 음악적 깊이와 새로움을 향한 도전으로 가득한 음악을 선보여왔다. 특히, 베이시스트 존 허버트, 드러머 에릭 맥퍼슨과 함께한 트리오는 2009년도 앨범 [Whirl]을 시작으로 [Alive At the Vanguard](2012), [Floating](2014), [Sunday Night At The Vanguard](2016)에 이르기까지 탄탄한 인터플레이와 신선한 연주로 감상자를 사로잡곤 했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싶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연주였다. 키스 자렛 트리오나 브래드 멜다우 트리오처럼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았더라도 현재를 대표하는 트리오라 할 만했다.


그러므로 트리오의 새로운 앨범은 기존에 잘 했던 것을 계속 잘 하기만 해도 성공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 앨범은 기존 트리오의 연주를 보다 극한으로 밀어붙인, 한층 더 정교해지고 섬세해진, 최고 수준의 한계를 확장한 연주를 담고 있어 놀랍다.


앨범 제목이 [Live In Europe]이라고 하지만 유럽 여러 곳의 공연이 아닌 2017년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플라기 스튜디오 4에서의 공연을 담고 있다. 유럽 투어 일정 중 마지막 바로 직전의 공연이었다. 프레드 허쉬에 따르면 당시 공연장과 피아노도 훌륭했지만 무엇보다 트리오의 상태가 훌륭했다고 한다. 그 결과 최고의 연주가 기록될 수 있었다.


이번 앨범에 담긴 트리오 연주가 최고라 하는 것은 정밀한 호흡에 있다. 기본적으로 트리오는 프레드 허쉬의 피아노를 정점에 두고 있다. 완벽한 삼각형은 아니라는 뜻. 그래서 자칫 피아노 연주에만 감상이 집중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는 피아노를 지원하고 호흡하는 베이스와 드럼의 움직임이 연주를 최고 중 최고의 경지로 이끌었다. 예를 들어 델로니어스 몽크의 곡인 ‘We See’를 들어보면 몽크의 스타일을 반영한 듯 피아노가 갈지자의 움직임을 보이면 베이스가 이에 균형감을 부여하고 드럼이 여백을 메우며 그 위태로운 움직임을 흥겨움으로 바꾼다. 트리오의 첫 앨범 [Whirl]에서 한 차례 선보였던 ‘Skipping’에서도 마찬가지다.


나아가 영국 서퍽주에 위치한 스네이프 몰팅에 대한 프레드 허쉬의 느낌을 표현한 ‘Snape Maltings’, 게의 걸음걸이를 표현했다는 ‘Scutlers’에서는 베이스와 드럼의 참여가 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난다. 프레드 허쉬가 곡을 쓸 때부터 이를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싶고 그 의도대로 두 연주자가 피아노와 정해진 호흡을 맞추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 자유분방한 느낌이 세 악기의 즉흥적인 호흡이 현장에서 곡을 완성했다는 느낌을 준다. 서사도 좋지만 미장센까지 뛰어난 영화를 보는 것 같다.




한편 이번 앨범의 색다른 재미는 프레드 허쉬가 자신의 연주 속에 선배 연주자들의 그림자를 의도적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We See’에서 몽크의 기이한 리듬감과 여백을 느끼게 했던 것 외에 그는 ‘Bristol Fog’를 통해 피아니스트 존 테일러의 시정(詩情)을 앨범에서 가장 흥겨운 순간을 연출한 ‘Newklypso’에서는 칼립소 리듬을 사용하곤 했던 소니 롤린스의 유쾌함을 표현한다. 그리고 웨인 쇼터의 두 곡 ‘Miyako’와 ‘Black Nile’의 연주에서도 작곡자의 스타일을 테마에 거의 그대로 담아낸다. 그렇다고 그가 선배 연주자를 재현하는 데 연주를 집중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과거의 그림자 안에서 출발해 그 밖, 그러니까 어떠한 텍스트 속에서도 그만의 것이 유지되었다는 것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피아니스트의 대가다움만큼이나 꿈틀거리는 트리오의 생동감 넘치는 움직임에 집중한다면 감상이 즐거울 것이다. 게다가 내 말을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디. 트리오의 연주 자체가 절로 피아니스트를 시작으로 트리오로 감상의 중심을 이동하게 하니 말이다.


★★★★½




최규용 | 재즈 칼럼니스트
라디오 키스 재즈 담당 PD이다.
저서로는 <재즈>와 <재즈와 살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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