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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스 마스터즈] 트럼페터 아투로 산도발  
제목 [브라스 마스터즈] 트럼페터 아투로 산도발   2018-04-09


[브라스 마스터즈] 트럼페터 아투로 산도발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여름에는 뭐니 뭐니 해도 라틴 음악이 제격이다. 퍼커션들의 복잡한 리듬을 비집고 들어오는 브라스 섹션의 강력한 어택은 더위를 잊게 만드는 청량감을 선사한다. 살사의 고향 쿠바에서는 낮이나 밤이나 어디서든 살사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즉 겨울을 보내면서 먼지가 쌓인 라틴 음악 음반들을 다시금 꺼내 들을 시즌이 다가왔다는 것이다.


여섯 번째로 소개할 아티스트는 트럼페터 아투로 산도발(Arturo Sandoval)이다. 그는 트럼펫이라는 악기를 통해 어느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폭발적이고, 화려한 연주력을 선보이며 전 세계를 사로잡아버린 정열의 나팔수다.




억압의 시대에 꽃피운 자유의 음악


아투로 산도발. 그의 이름은 트럼펫을 비롯한 관악기를 다루는 연주자들이 아니더라도 익히 들어보았을 것이다. 시대를 타고난 명연주자인 그는 마치 영화와 같은 인생을 살아온 장본인이다. 실제로 2001년도에는 HBO가 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리빙 하바나>를 제작하기도 했다. 아투로는 1949년도 쿠바 아바나 외곽의 작은 마을인 아르떼미사(Artemisa)에서 출생하였다. 재즈 트럼펫의 전설인 디지 길레스피가 차노 포조와 함께 라틴 음악들의 요소를 가미시킨 재즈를 최초로 미국 재즈 시장에 선보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지 불과 2년이 채 되지 않은 해이다. 그는 6세에 트럼펫을 처음 접하였고, 12세 때부터 클래식 교육을 받으며 쿠바 전통 음악과 클래식을 주로 연주하였다. 성인이 된 후 쿠바 국립음악원 소속으로 오랫 동안 재직해오면서 연주자로서의 명성을 쌓아갔다. 아투로는 국경을 넘어 흘러온 라디오 전파를 통해 처음 디지 길레스피의 음악을 듣고는 큰 충격에 빠졌다고 한다. 그리고는 곧장 재즈의 매력에 흠뻑 빠졌고, 어느 무엇에도 억압받지 않는 자유로운 이 음악은 그에게 음악의 자유를 넘어서 삶의 자유를 꿈꾸게 했다.


쿠바는 지난해에 세상을 떠난 혁명가 피델 카스트로의 정치적 탄압이 오랜 세월동안 유지되어왔다. 1959년도 혁명에 성공하며 카스트로 정권이 국민들에게 내세운 공약인 농지개혁과 여러 산업 분야 등의 국유화를 이유로 외국인들의 토지와 산업시설, 금융 등의 소유권을 강제로 빼앗게 된다. 특히 이 사태로 미국인들의 피해가 막대했다. 미국은 이를 보복하여 쿠바산 설탕 수입을 전면 금지시키는 방안을 내놓았는데, 오히려 카스트로는 미국인이 소유한 통신사, 전기회사, 심지어 호텔과 카지노까지 모두 몰수해버렸다.


미국과의 오랜 갈등은 외교의 단절로 인한 국제적 고립으로 이어졌고, 쿠바의 공산주의화를 가속시켰다. 그리고 이 영향은 예술가들에게까지 고스란히 전해지게 된다. 아투로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재즈라는 음악의 태생은 미국이니 자연스럽게 적들의 음악이라는 정의가 내려졌고, 급기야 재즈감상 금지령까지 내려지게 된다. 당연히 재즈를 연주하는 것도 큰 문제가 되는 것이었다. 쿠바의 문화예술인에게 '쿠바에서의 문화는 혁명을 옹호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카스트로의 뜻을 사상적으로 거부했던 아투로는 이에 대한 반감이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하지만 결국 재즈를 연주할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래서 아투로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추초 발데스와 파키토 디 리베라 등과 함께 차후 쿠바의 전설적인 밴드가 되는 이라케레(Irakere)의 결성을 주도하게 된다. 이라케레는 퍼커션을 앞세워 쿠바 전통음악을 위장한 재즈를 연주했고, 나아가 클래식과 록 등의 다양한 음악적 요소들을 가미시키면서 엄청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라케레는 쿠바를 넘어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흥행해 쿠바 정부의 독려로 세계 각지로 투어를 다녔다. 공산주의였던 그 당시 정부에게는 이라케레가 자금 조달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으므로 그들의 해외활동이 조금이나마 자유로울 수 있었다.(실제로 그 틈을 타 파키토 디 리베라는 이라케레의 해외 투어 도중 미국으로 망명신청을 하게 된다.) 대중들은 그들이 외치는 자유를 들었던 것일까? 세계는 1980년도 그래미 어워즈에서 베스트 라틴 레코딩 부문의 우승을 그들에게 안겨주었다. 이로써 이라케레는 라틴 재즈의 표본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디지 길레스피와의 운명적인 만남


앞서 이야기했듯이 아투로는 디지 길레스피에게 음악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라디오 너머로 들려오는 자유로운 그의 음악을 동경하고, 그와 함께 무대에 오르는 것을 늘 꿈꿔왔다. 어느 날 차노 포조의 흔적을 따라 아바나를 찾은 디지 길레스피는 자신을 위한 무대를 준비한 이라케레의 공연을 관람하게 되었고, 그때 처음 아투로의 명연주도 함께 확인하게 되었다. 화려하게 빛나는 그의 트럼펫 연주에 매료된 디지는 아투로에게 자신의 밴드에 합류할 것을 제안했다. 아투로에게는 늘 꿈꿔온 일들을 현실로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여러 가지 여건상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고, 이 절호의 기회는 아쉽게도 물 건너가게 된다.


이는 곧 자신의 삶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그는 재즈를 연주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아투로가 눈엣가시였던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예의주시하기 시작했다. 결국 아투로의 연주는 정부의 제재를 당하게 되었다. 마음 놓고 연주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된 아투로는 다시 무대에 서기 위해 카스트로 정권의 혁명을 옹호한다는 발언을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했다.그는 오랜 고민 끝에 진정한 자유를 찾기 위한 방법으로 디지의 러브콜을 받아들이게 된다. 정부의 승인을 받아 일부 가족들과 함께 디지 길레스피 밴드의 투어에 합류했고, 투어 도중 미국으로 망명을 시도했다. 디지는 '그의 음악은 전 세계 모두의 것이 되어야한다'는 일념 아래 그와 그의 가족이 무사히 망명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면에서 도움을 주었다. 망명에 성공한 아투로는 자유의 땅 미국에서 제2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디지의 무한한 은혜를 입은 아투로는 그가 떠난 지 20여 년이 흐른 지금도 그를 추억한다. 그의 홈페이지는 디지와의 추억들로 가득하고, 최근에는 디지와의 관계를 담은 책 [The Man Who Changed My Life]를 발간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음악적 우상 그리고 삶의 은인. 디지가 없었다면 아투로와 같은 시대를 타고난 연주자는 나타날 수 없었을 것이다.




폭발적이고, 강력한 라틴 재즈


그의 음악이 명작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시기는 GRP에 합류하게 되면서부터다. 미국으로 망명한 직후 발매한 [Flight To Freedom]은 칙 코리아, 다닐로 페레즈 등의 당시 최고의 연주자들과 함께 자신의 존재감을 미국 대중들에게 확연히 알리게 된다. 그리고 GRP 특유의 화려한 연주력을 앞세운 [Danzón]은 빅밴드를 통한 실험적인 라틴 재즈를 담아내며 많은 주목을 받았다. 본 앨범은 1995년도 그래미 어워즈와 빌보드 어워즈에서 베스트 라틴 재즈 앨범 부문으로 수상하게 된다. [Arturo Sandoval & The Latin Train]를 마지막으로 이후 레이블을 여러 번 옮겨 다니며 작품 활동을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1998년도에 발매한 [Hot House]에서는 보다 정돈된 라틴 빅밴드 사운드를 선보이며 정통 쿠바 음악과 정통 재즈 음악에 대한 이해를 동시에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본 작품도 역시 1998년도 그래미 어워즈, 빌보드 어워즈에서 수상하는 쾌거를 이룬다. 아투로의 트럼펫 사운드는 이제 라틴 재즈를 연상할 때 완성적이고, 정형화된 사운드로 정의된다. 계속해서 명반에 가까운 작품들을 쏟아내는 그의 행보는 많은 대중들의 사랑을 이끌어냈다. 이렇게 아투로는 화려한 라틴 재즈의 부응을 이끌며 미국 재즈 시장에서 성공한 뮤지션은 물론 라틴 재즈의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다.


워낙에 곡예연주로 유명하긴 하지만 아투로는 유능한 작곡가이기도 하다. 그의 음악성을 잘 담아낸 여러 작품들을 살펴보면 자신이 작곡한 클래식 오케스트라 협주곡을 담은 [The Classical Album], 직접 피아노 플레이어로 나선 [My Passion For The Piano], 자신의 순수한 감정선을 그려낸 [A Time For Love] 등 수많은 작품들에서 그의 드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디지를 기념하는 빅밴드 앨범 [Dear Diz (Every Day I Think Of You)]를 포함해 그래미 어워즈에서 무려 열 차례나 수상한 이력이 있다. 이처럼 아투로는 트럼펫으로 재즈 역사에 길이 남을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상실의 시대를 몸소 겪으며 표현의 자유를 갈망했던 그는 이 모든 염원을 담은 자신의 나팔소리로 세계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의 음악에는 실로 자유가 있었다. 그의 연주에서 유독 빛이 나는 이유다.  



최수진 | 트롬보니스트

트롬보니스트와 작편곡가, 재즈 칼럼니스트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종합 예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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