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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스 마스터즈] 트럼페터 크리스 보티  
제목 [브라스 마스터즈] 트럼페터 크리스 보티   2018-04-09


[브라스 마스터즈] 트럼페터 크리스 보티


지난 기억을 회상한다. 맑은 날씨, 아름다운 바다가 펼쳐진 광장의 풍경, 모든 것이 완벽했던 지난 2015년 여름날,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자신의 단독 콘서트를 가진 그를 만날 수 있었다. 당시 그의 나팔 소리는 천 석이 넘는 콘서트홀을 가득 메웠고, 트럼펫 연주부터 확고한 사운드 디렉팅과 밴드 마스터링, 재즈와 팝, 클래식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기획력과 무대 매너까지, 그에게 왜 세계 최고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지 몸소 보여준 공연이었다. 숨을 쉬는 여백조차 음악이 되는 꽃중년의 섬세함에 나조차도 반해버렸다.


이번에 소개할 아티스트는 트럼페터 크리스 보티(Chris Botti)다. 대중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는 로맨틱한 트럼펫 연주와 출중한 외모를 지닌 그는 세계적인 재즈 스타다. 그리고 거의 모든 장르를 아우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드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가진 인물이다.




수준 높은 교육과 풍부한 경험


그의 풀네임은 크리스토퍼 스티븐 보티다. 1962년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위치한 코발리스(Corvallis)라는 도시에서 출생한 그는 어머니의 교육열과 파트타임 클래식 피아노 교사를 통해 음악을 만나게 된다. 트럼펫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9세 때부터다. 12세가 될 무렵에 처음 마일스 데이비스의 ‘My Funny Valentine’을 들은 크리스 보티는 나팔수로 살 자신의 운명을 알아차렸다. 멜로디와 공간감이 아름다운 균형을 이루는 것을 어린 나이에 깨달았으며, 이것을 실제로 구현해내기도 했다. 그의 연주를 직접 본 독자라면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감이 잡힐 것이다.


1980년대에 들어서 크리스 보티는 인디애나 대학교에 진학해 재즈 교육자이자 작곡가 데이비드 베이커(David Baker)와 리드 파이프 버징과 워밍업 프로그램 등 트럼펫 교육에 앞장선 빌 아담(Bill Adam)의 가르침을 받았다(빌 아담에게 배운 방법으로 20여 년째 매일 연습하고 있다고 한다). 국제예술기금(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 NEA 재즈 마스터즈 프로그램 진행으로 유명한 미국의 예술 장학재단)의 2년 연속 장학생으로 발탁되어 트럼페터 우디 쇼(Woody Shaw), 색소포니스트 조지 콜먼(George Coleman)과 함께 여름 방학 동안 함께 재즈를 공부했다.


인디애나에서 학업을 마친 뒤 뉴욕으로 이주한 크리스 보티는 버디 리치 빅밴드와 프랭크 시나트라, 나탈리 콜, 조니 미첼 등과 같은 아티스트들의 주요 무대에 연이어 오르며 유명세를 얻기 시작한다. 1991년부터는 포크 가수 폴 사이먼(Paul Simon)의 제안으로 그의 투어 밴드에 참여했다. 크리스 보티는 5년 동안 그 밴드에 머물면서 폴 사이먼을 뒷받침했다. 그와의 투어 중 색소포니스트 마이클 브레커를 만나게 되는데, 그와의 인연도 의미가 깊다. 당시 마이클 브레커는 친형제인 트럼페터 랜디 브레커와 함께 그룹 브레커 브라더스(Brecker Brothers)로 재즈 록 퓨전 스타일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크리스는 좋은 기회로 마이클 브레커와 함께 (연주자가 아닌) 공동 작곡가로 브레커 브라더스의 앨범 [Out Of The Loop]의 수록곡 ‘Evocations’를 제작하게 되었다. 이 앨범은 1995년도 그래미 어워즈에서 ‘최우수 컨템포러리 재즈 앨범’ 부문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크리스 보티의 성공 가능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대중을 사랑한 재즈 아티스트


크리스 보티는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재즈 스타지만, 그를 골수 재즈 연주자로 보는 이들은 아마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재즈의 역량이 부족하다거나 재즈를 멀리하지 않는다. 오히려 재즈를 전면에 앞세워 타 장르를 아우른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그리고 재즈를 비롯한 클래식, 팝 등의 다양한 장르를 고급스럽게 완성해내는 그의 능력은 누구도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다.


1995년도에 버브 레코드를 통해 데뷔작 [First Wish]을 발표한 크리스 보티는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킬 스무드 재즈 스타일의 트럼펫 연주로 먼저 출사표를 던졌다. 서정적이면서도 때로는 훵키한 그루브와 풍부한 울림의 트럼펫 사운드로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담아낸 본 작품은 케니 지의 작품들이 연상된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만큼 대중성이 짙게 느껴졌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된다. 두 번째 앨범인 [Midnight Without You]는 전형적인 팝 스타일을 선보였다. 신스팝 밴드 블루 나일(The Blue Nile)의 보컬리스트 폴 부캐넌(Paul Buchanan)이 객원 연주자로 참여하면서 세간의 많은 주목을 받았다. 타이틀곡 ‘Midnight Without You’는 블루 나일의 사운드를 쏙 빼닮은 신스팝 사운드와 폴 부캐넌의 음성을 바탕으로 크리스 보티의 트럼펫 연주가 조화롭게 녹아들었다. 그리고 영화감독 로버트 영(Robert M. Young)의 에로틱 누아르를 담아낸 스릴러 영화 <코트>(Caught)에서는 싱어송라이터 조너사 브룩(Jonatha Brooke)과 함께한 ‘Forgiven’을 비롯한 사운드트랙 전체를 직접 제작했다. 영화가 뿜어내는 특유의 어둡고, 고독한 분위기는 크리스 보티의 솜씨라고 해도 무방하다. [Slowing Down The World]를 연이어 발표하면서 이 시점까지 케니 지, 데이브 코즈 그리고 리처드 엘리엇과 같은 스무드 재즈 계열의 아티스트로 주로 일컬어졌다. 스팅과의 인연도 이때쯤 시작되었다. 스팅의 배우자 트루디 스타일러(Trudie Styler)가 설립한 열대우림재단(Rainforest Foundation)의 자선 공연에서 그를 처음 만나게 된다. 1999년도에 크리스는 스팅의 [Brand New Day] 앨범 투어 특별 솔리스트로 초대되면서 [All This Time], [Sacred Love], [If On A Winter's Night] 등의 앨범에 줄곧 그와 함께해왔다. 이후에는 크리스 보티의 콘서트마다 게스트로 출연하며 크리스 보티의 든든한 지지자 역할을 하는 스팅을 만날 수 있다.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크리스 보티는 블러드 스웨트 앤 티어스(Blood, Sweat & Tears)의 원년멤버인 드러머 바비 콜롬비(Bobby Colomby)를 통해 콜롬비아 레코드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다. 먼저 기존에 고수하던 스무드 재즈를 담아낸 [Night Session]으로 높은 완성도를 자랑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앨범 [December]는 여러 가지 스타일의 캐럴을 서정적이면서 익살스럽게 연주하는 크리스 보티를 사실적으로 잘 표현했다. 1990년대 팝 스타 리차드 막스(Richard Marx)가 ‘Perfect Day’의 작곡과 앨범 전체의 프로덕션, 코러스에 참여해 앨범 발매 초부터 많은 이의 궁금증을 끌어냈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유연한 음악성


크리스 보티의 사운드는 이후 확장되어 풀 오케스트라와 함께 더욱 낭만적인 음악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영향력 있는 재즈 스타일과 독창적인 관현악 앨범을 만들어내는 것에 목적을 둔 그는 2004년도에 발매한 [When I Fall In Love]를 통해 자신이 평소에 흠모하던 명곡들을 담았다. ‘When I Fall In Love’, ‘Nearness Of You’와 같은 재즈 스탠더드곡과 하몬 뮤트로 연주한 엔니오 모리꼬네의 ‘Cinema Paradiso’, 도미닉 밀러의 기타 연주와 스팅의 노래가 더해진 ‘La Belle Dame Sans Regrets’ 등이 대표적이다. 우아한 오케스트라 편곡과 크리스 보티의 연주가 어우러지면서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이 감동은 다음 작품인 [To Love Again]으로 이어진다. 톱스타들이 총출동한 본 앨범이다. 런던 세션 오케스트라(London Session Orchestra)의 풍부한 앙상블을 바탕으로 스팅과 마이클 부블레, 폴라 콜, 질 스캇, 로사 파소스 등의 개성 넘치는 보컬리스트과 부드러운 음색이 매력적인 트럼펫 연주의 합은 듣는 이에게 황홀한 순간을 선사한다. 놀라운 점은 이러한 대규모의 연출 속에서도 크리스 보티는 수준 높은 즉흥연주로 직설적인 재즈를 끊임없이 표현해냈다는 점이다.




이후 그는 클래식 음악을 섭렵하는 데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Italia]에서 크리스 보티는 슈베르트의 ‘Ave Maria’, 푸치니의 ‘Nessun Dorma’ 등의 고전 클래식곡을 트럼펫으로 연주하며 격조 높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성악가 안드레아 보첼리가 참여해 많은 주목을 받았다. 앞서 언급했던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들었던 음악 중 본 앨범에 수록된 ‘The Very Thought Of You’가 개인적으로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는 무대에서 내려와 관객들과 직접 호흡하는 모습을 선보였는데, 손 내밀면 닿을 것 같은 거리에서 그의 연주를 직접 들으니 그 감동은 배가되었다.


가장 최근에 발매된 2012년 앨범 [Impressions]는 앞서 발표했던 모든 작품들을 총망라하는 크리스 보티의 야심작이다. 클래식과 라틴, 팝과 재즈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가진 음악적 스펙트럼을 아낌없이 풀어냈다. 쇼팽의 장송행진곡 ‘프렐류드 No.20’과 보첼리가 노래한 팝페라 스타일의 ‘Per Te(For You)’, 스페인 음악의 대표곡인 호아킨 로드리고의 ‘En Aranjiuez Con Tu Amor’ 그리고 알 켈리가 작곡한 마이클 잭슨의 히트곡 ‘You Are Not Alone’, 허비 행콕의 집에서 즉흥 잼을 하다 탄생한 ‘Tango Suite’ 등이 수록되었다. 각 트랙이 탄생하게 된 스토리도 존재한다. 이렇게 다양한 장르를 한 작품에서 만나는 것은 아마도 행운이 아닐까 싶다. [Impressions]는 2013년도 그래미 어워즈 ‘최우수 팝 연주 앨범’ 부문에서 수상하며 그 가치를 세상에 알렸다.


어느 한 인터뷰에서 크리스 보티는 자신은 집이 없이 여행 가방과 트럼펫 케이스를 가지고 호텔을 전전한다고 했다. 개나 고양이, 여자친구, 아내, 자동차 같은 것도 없이 일 년의 300일 이상을 길에서 보낸다는데, 자신의 밴드와 함께 이러한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해내며 전 세계를 누빌 수 있다는 사실에 상당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지금도 어느 나라, 어느 곳에서 연습을 하거나, 공연을 하며 늘 음악과 함께인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무엇보다도 뚜렷하게 느껴지는 것은 늘 자신이 가진 최고의 것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명반을 탄생시키는 비결이 틀림없다고 필자는 확신한다.  




최수진 | 트롬보니스트

트롬보니스트와 작편곡가, 재즈 칼럼니스트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종합 예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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