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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안토니오 산체스는 왜 ‘나쁜놈’이 되었나  
제목 [기획] 안토니오 산체스는 왜 ‘나쁜놈’이 되었나   2018-02-21


안토니오 산체스는 왜 ‘나쁜놈’이 되었나


약 50km² 정도 면적의 섬. 사람 100명을 태운 수송기가 이 섬을 가로지른다. 탑승자들은 각자 원하는 장소를 향해 낙하산을 매고 뛰어내린다. 빈집에 들어가 무기와 방어구를 착용하고 다른 사람을 찾아 죽인다. 마지막 1인이 되기 위한 생존 게임, 대세의 ‘배틀그라운드’다.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섬 지형이 유일한 전투지였던 이 게임에 사막 지형이 새롭게 추가됐다. 엘 포조(El Poso), 산타 도밍고(Santa Domingo) 같은 스페인어 지명으로 가득한 이곳의 모델은 라틴 아메리카다. 멕시코를 배경으로 만들었다고 알았는데, 페루라는 말도 있고, 칠레라는 말도 있다. 실제 모델은 게임을 하는 데 별 의미가 없어 굳이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멕시코일 거라고 짐작했다. 수송기에서 아래를 향하면 보이는 지형 외곽의 검은 장벽 때문이다. 게임 플레이어들이 제한된 경기장 내에서 밖으로 이탈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설치한 이 장벽은 전장을 진정한 개싸움장으로 만든다.


미국이 멕시코 국경에 설치한 장벽. 그 장벽 안의 라틴 아메리카인은 미국 전체 인구의 약 17%를 차지한다. 상당한 인구수에도 라틴 아메리카 이민자들은 소외계층에 속한 약자이며, 차별과 멸시의 대상이다. 미국인들이 이들에 경계를 내비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많은 이민자들이 빈민층이며, 이들이 불법 행위나 각종 사고에 연루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 그리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로 인해 미국의 공장들이 라틴 아메리카에 새롭게 건설되어 미국인 노동자들이 실직을 하게 됐다는 점이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인들을 ‘나쁜 사람들’(Bad Hombres)이라고 칭하며 미국인의 마음 속에 내재되어 있던 차별과 멸시의 심지에 불을 붙였다. 원색적인 비난이었다. 그는 굳이 그들의 언어인 스페인어 단어 옴브레(Hombre)를 써가며 조롱조로 비난했다. 남미에서의 사업이 잘 되지 않은 과거의 씁쓸한 기억이 앙심으로 남아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민심을 얻기에 너무나 유효한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동남아시아나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온 불법체류자들과 그 일부가 저지르는 사고들을 떠올린다면 미국인들의 불안과 분노 섞인 시선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테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다. 사람과 민족, 국가를 대하는 태도다. 트럼프는 이민법을 강화했고, 멕시코 경계에는 절단기로도 구멍을 낼 수 없는 벽을 세웠다. 가두고, 차별하고, 비난한다. 특정 인종을 ‘악한 대상’으로 몰아가며 민심을 장악하는 정치적 행동은 20시기 중반 유럽에서 일어났던 홀로코스트의 현대판처럼 보이기도 한다.


트럼프의 발언으로 제시카 알바, 셀레나 고메즈 등의 유명 연예인들도 덩달아 나쁜 사람들이 됐다. 그 사이에는 드러머 안토니오 산체스(Antonio Sanchez)도 포함됐다. 많은 라틴 아메리카계 유명인들이 이민자 부모를 둔 미국인인 것과는 달리 안토니오 산체스는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 출생의 ‘토종’ 멕시코인이다. 그가 미국으로 넘어와 살게 됐을 때 그는 이미 성인이었다. 그는 트럼프 당선 전부터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트럼프를 비판하는 글과 이미지를 꾸준히 게재했다. 당선이 된 후에, 그리고 ‘나쁜 사람들’ 비난 이후 그의 반발은 더욱 거세졌다. 급기야 트럼프의 발언을 제목에 단 앨범 [Bad Hombre]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팻 메시니와의 오랜 합작, 자신의 그룹 마이그레이션(Migration)의 히트, 영화 <버드맨>의 음악감독으로의 대성공이 증폭제가 되어 이번 앨범에 이전과는 다른 수준의 관심이 쏟아졌다.




안토니오 산체스는 자신의 개인 스튜디오에서 홀로 연주를 했다. 여기에 각종 소리와 샘플을 더해 메시지가 구체적이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소리를 조금 더 뚜렷하게 만들기도 한다. 분노와 울분을 표출한다. 솔로 드럼 연주만으로 영화 <버드맨>에 다채로운 질감을 더했다면, 이 앨범에서는 영화의 시각적인 도움 없이 그저 콘셉트 하나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상세히 풀어낸다. 앨범을 지배하는 분명한 정신과 슈퍼스타 드러머의 독기가 만나 펼쳐지는 환상적인 순간이다. 트럼프를 비난한 곡이 이것이 최초는 아니다. 래퍼 YG는 제목부터 드러나듯 ‘FDT (Fuck Donald Trump)’로 트럼프를 비난했고, 힙합 그룹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A Tribe Called Quest)는 ‘We The People’에서 차별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트럼프의 발언을 언급했다. 래퍼 에미넴도 이러한 추세에 합류했다. 하지만 이 사안을 앨범 전체의 콘셉트를 내세운 재즈 연주자는 없었다. 안토니오 산체스는 자신을 '나쁜놈'이라 하며 비난의 대상의 위치에 세우고, 그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문제의식을 일깨운다.


안토니오 산체스의 행동은 팝 가수 프린스(Prince)를 떠올리게 했다. 프린스는 흑인이었고 흑인음악을 기반으로 둔 음악을 펼쳤지만, 누가 봐도 백인음악의 영역에서 활보하는 로커이자 팝스타였다. 차별의 대상에는 포함되겠지만 실질적인 피해를 입을 것 같지 않았던 그가 앞장서서 차별에 대해 말을 하고 행동한 것은 피해와 차별을 직면한 이들이 하소연한 듯한 이야기보다 훨씬 효과적이었다. 슈퍼스타 드러머인 안토니오 산체스도 비난의 가장 중심점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렇게 그는 ‘나쁜놈’이 되길 자처했다.  




류희성 | 월간 재즈피플 기자

여러 매체에서 음악과 관련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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