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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을 빛낸 앨범] 키스 자렛 [Somewhere]  
제목 [10년을 빛낸 앨범] 키스 자렛 [Somewhere]   2016-08-15


키스 자렛 [Somewhere]


이들이 보낸 한결같은 세월에 경의를 표하며


우리가 기꺼이 거장이라고 부르는 아티스트들에게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을 하나 꼽자면, 늘 우리의 기대를 뛰어넘는 놀라운 작품을 만들어내고, 항상 그 작품들은 반박하기 어려운 완성도로 우리의 동의를 받아낸다는 점이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키스 자렛을 거장이라고 부른다. 2009년 7월 11일, 알프스 산자락의 아름다운 호반 도시 루체른의 대표적인 콘서트홀, 루체른 문화 컨벤션 센터(KKL)에서 키스 자렛의 스탠더드 트리오 공연이 있었다. 이 공연의 실황을 담고 있는 앨범 [Somewhere]가 2013년에 발표되자, 일제히 입을 모아 앨범을 극찬했던 평론가들의 논평은 대개 이러했다. 과연 지금껏 키스 자렛의 트리오가 보여주었던 그 이상의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했었지만 결국 또다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는 고백이 주를 이루었다. 필자 또한 이에 대해 딱히 반박할 것이 없었다.


앨범 [Somewhere]가 발매된 2013년은 키스 자렛의 스탠더드 트리오가 결성된 지 30년이 되는 해였다. 이제는 스탠더드 트리오라는 이름보다는, 그냥 키스 자렛, 개리 피콕, 잭 디조넷 이렇게 세 거장의 이름을 공평하게 나열하여 부르는 것이 더 익숙하다. 녹음실에서 녹음한 스튜디오 앨범보다는 이렇게 공연 실황을 녹음하여 발표한 라이브 앨범이 더 많은 이 트리오는, 이미 경지에 오른 아티스트들이 오랜 기간 합을 맞추었을 때 과연 어떤 음악이 나올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들려줬다. 그러나 그렇게 30년 이상을 함께하며 우리에게 놀라운 세계를 경험시켜준 이들에게도 마지막은 있었다. 2014년 11월 30일, 키스 자렛의 스탠더드 트리오는 미국 뉴저지 퍼포밍아츠센터에서의 공연을 끝으로 해체됐다. 2015년, 영국의 재즈 매거진 재즈와이즈를 통해 공개된 인터뷰에서, 키스 자렛은 이제 개리 피콕, 잭 디조넷과 함께 셋이서 들려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전부 다 들려준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트리오를 해체할 시점이 왔다는 얘기를 했다. 이로써 앨범 [Somewhere]는 스탠더드 트리오의 마지막 앨범이 됐다. 물론 앞으로 이들의 공연 실황 앨범이 추가로 발매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러나 키스 자렛은 이에 덧붙여 앞으로 더 이상 다른 트리오 멤버를 구할 일은 없을 거라고 못 박았다. 개리 피콕과 잭 디조넷 이상으로 서로 음악에 대한 이해와 교감을 나눌 수 있는 트리오 조합은 더 이상 없을 것 같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 앨범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귀를 사로잡는 트랙은 네 번째 트랙에 놓인 ‘Somewhere/Everywhere’다.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위해서 레너드 번스타인이 작곡한 ‘Somewhere’를 시작으로 약 5분이 지나면서 연주는 자연스럽게 키스 자렛의 ‘Everywhere’로 옮겨간다. 섬세한 변주로 연주의 강약을 달리하며 짧은 테마를 끝없이 이어가는 트리오의 연주는 19분이 넘는 런닝타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만큼 매력적이다. 트리오의 연주라기보다는, 키스 자렛의 왼손과 오른손, 그리고 그의 목소리까지 분명한 자기 소리를 내고 있어, 트리오보다는 퀸텟의 연주라고 부르는 것이 오히려 더 합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예전보다 연주의 다이내믹이 줄어들었지만 적절하게 튜닝되어 듣는 이의 귀를 기분 좋게 자극하는 잭 디조넷의 드럼은 왠지 마음을 들뜨게 한다. 그리고 개리 피콕의 베이스는 트리오의 사운드를 더 깊은 곳으로 확장해주는 동시에 연주 내내 마치 잘 단련된 근육처럼 이완하며 긴장감을 유지해준다. 키스 자렛이 얘기한 것처럼 이런 트리오를 다시 또 어디서 만날 수 있겠는가.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앨범의 시작과 끝은 마일스 데이비스와 관련이 있다. 키스 자렛의 클래시컬한 솔로 연주로 시작되는 ‘Deep Space’는 개리 피콕과 잭 디조넷이 합류하면서 한 번 전열을 가다듬고, 이내 마일스 데이비스의 ‘Solar’로 넘어간다. 그리고 마지막에 등장하는 ‘I Thought About You’는 마일스 데이비스가 즐겨 연주하던 곡이다. 1991년에 마일스 데이비스가 세상을 떠나고 2주 뒤에 녹음됐던 키스 자렛 스탠더드 트리오의 앨범 [Bye Bye Blackbird]에도 수록돼 있는 곡이다. 뉴욕의 파워스테이션 녹음실에서 녹음됐던 스튜디오 버전과 앨범 [Somewhere]의 대미를 장식하는 라이브 버전의 ‘I Thought About You’를 비교해서 들어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깊은 연주에 놀라고, 18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미묘하게 달라진 그의 피아노 터치와 좀 더 차분해진 트리오의 연주에 또 다른 감동을 느끼게 된다.


월간 재즈피플 ‘10년을 빛낸 열 장의 재즈 앨범’에 이 앨범을 선택한 것은, 물론 그 자체로 훌륭한 음악을 담고 있어서도 있겠지만, 30년을 한결같이 이어온 놀랍고 아름다운 음악 세계에 대한 경의를 표하기 위함이다. 또한 이제 진짜 전설로 남은 키스 자렛과 개리 피콕, 잭 디조넷의 스탠더드 트리오가 남긴 마지막(지금까지는) 발자취라는 상징성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앨범은 그들의 가장 최고의 앨범은 아닐 수 있지만, 그들이 왜 최고의 트리오인지는 확실하게 증명해 보이고 있다. 언젠가 키스 자렛은 자신에게 어떻게 하면 그렇게 즉흥 연주를 할 수 있냐는 질문에, 한참을 뜸을 들인 후, 그냥 이렇게 오래 연주를 하면 된다는 대답을 한 적이 있다. 이 트리오의 뛰어난 연주보다, 그렇게 오래 함께 연주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 훨씬 놀라운 일이다.  




전승훈 | 공연기획자

자라섬이 있는 가평에서 일하고 있다.

처음엔 일 때문에, 지금은 좋아서 재즈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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