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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아코디어니스트 제희  
제목 [인터뷰] 아코디어니스트 제희   2017-10-21


배려가 돋보이는 첫걸음

아코디어니스트 제희


필자는 나름 신인 아티스트들과 꽤 많은 작업을 해봤다. 그래서 그들이 가질 수밖에 없는 일반적인 한계들도 인식하고 있다. 작품의 완성도 외에 주변인들을 인식할 수밖에 없는, 그래서 환경의 굴레에 갇히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하지만 소리소문없이 한국 재즈 씬에 등장한 신예 아코디언 연주자 제희의 데뷔 앨범은 조금 특별했다. 배려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누군가의 프로듀싱으로 연출된 타의적 양보가 아닌 순수한 의도가 엿보였다. 그렇지 않다면 리더작임에도, 자신의 자작곡임에도 다른 악기들에게 마무리마저 양보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EDM의 시대에 재즈 아티스트로, 그것도 흔치 않은 아코디언이라는 악기로, 프로듀서나 기획사도 없이 외로이 작업한 신인 아티스트 제희. 이 여성 아티스트에 대한 궁금증이 많아졌다.


사진_김호만, 모인 스튜디오




반갑습니다.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재즈 아코디어니스트 제희입니다. 이렇게 인터뷰 자리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해요. 지난 8월 8일에 첫 정규앨범 [WARP DRIVE]를 발표한 제희 퀸텟(JéHee Quintet)의 리더이고, 또 제희 스탠더드 재즈 밴드의 리더이기도 합니다. 제희 퀸텟은 제 자작곡들을 연주하는 팀이고, 제희 스탠더드 재즈 밴드는 재즈 스탠더드곡들을 연주하는 팀이에요.




어떤 계기로 아코디언을 접하시게 되었나요.


우연한 계기였어요. 얀 티에르상의 아코디언 연주를 듣고 그 소리에 반해 아코디언이라는 악기에 빠져들기 시작했어요. 많은 아코디언 곡들을 찾아 듣다가, ‘나도 이 아름다운 악기를 한번 연주해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그땐 이베이를 통해 해외배송으로 악기를 구입하고, 연주하고 싶은 곡을 듣고 악보를 채보해서 연습하고 그랬어요.




아코디언이 배우기 어려운 악기라고 하던데.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워서였는지 피아노와 같은 건반을 사용하는 아코디언이 크게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왔어요. 어려운 악기이긴 하지만 다른 악기들도 대부분 다 어려우니까요. (웃음) 어느 선까지 배울 것이냐에 따라 빨리 배워서 쉽게 연주할 수도 있고, 정말 오랜 세월 인내를 가지고 고되게 훈련해도 될까 말까 한 악기이기도 한 것이 아코디언이에요.




프랑스로 유학을 가기 전에는 아코디언을 어떻게 배우셨나요.


처음엔 인터넷을 찾아보며 독학했죠. 악보도 혼자 만들어서 연습하고, 지금도 그렇지만 유튜브가 가장 큰 선생님이에요. (웃음) 그러다가 더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은 욕심이 생겨서 정말 간절히 사방에 선생님을 알아보던 중, 운이 좋게도 이탈리아 음악학교에서 클래식 아코디언을 배우고 오신 이정용 선생님을 만나게 되어 기초부터 탄탄하게 배울 수 있었어요. 나이가 많으신 할아버지 선생님이셨는데, 아쉽게도 저를 가르치시던 중 이탈리아로 다시 돌아가셨어요. 그 후로 다른 선생님을 찾다가 해결이 안 되어 유학을 떠나게 되었고요. 파리로 유학 갔을 때 프랑스인 아코디언 선생님께서 기초부터 제대로 잘 배우고 왔다고 얘기해주셔서, 이정용 선생님께 정말 감사했어요.




첫 선생님이 계시는 이탈리아로 유학을 가지 않고 프랑스 파리로 가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처음 아코디언을 시작했을 때 뮈제트(Musette)라는 장르의 프랑스 아코디언 음악에 푹 빠져 있었어요. 뮈제트는 파리에서 1800년대 후반에 대중을 위한 무도회장 붐이 일면서 함께 시작된 음악 장르예요. 예전 궁정 시대에 귀족들이 궁이나 저택에서 왈츠에 맞춰 춤을 추던 유흥 문화가 시대적 변화와 함께 대중문화로 이어진 거죠. 장소는 상업적인 댄스홀로, 음악은 오케스트라 왈츠 대신에 초간단 편성인 아코디언 뮈제트로 바뀌면서요. 프랑스의 뮈제트가 (아코디언으로 유명한 또 다른 나라인) 이탈리아나 러시아의 아코디언 음악과 가장 다른 점은, 구름 위를 걷는 듯한 경쾌한 그루브가 살아 있다는 점이에요. 그것을 배우기 위해 파리를 선택하여 유학을 가게 된 거고요. 이 그루브를 사랑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스윙과 연결되어 후에 재즈의 세계에 빠지게 된 것 같아요.




전공을 재즈로 바꾸면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처음엔 정말 힘들었죠! 물론 지금도 늘 이것 때문에 수심 가득하고, 아마 평생 풀어가야 할 숙제이겠지만, 가장 큰 어려움은 즉흥연주였어요. 대부분의 재즈 학도들이 그렇듯이 처음엔 유명 연주자들의 솔로를 채보하여 연습했어요. 너무 신기하게도 어느 순간부터 뭔가 득음을 하듯이 (웃음) 자연스럽게 갑자기 스스로 즉흥연주를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심리적으로 솔로 공포증을 이겨내면서부터였던 것 같아요. 제가 학교에서 청음 수업 때문에 ‘귀가 좋은’ 학생으로 좀 알려졌었는데. 아, 이거 안티 생기는 거 아닌가요? (웃음) 아무튼, 앙상블 수업과 개인 레슨 교수님들께서 솔로 연주 앞에 마냥 위축되어 있던 제게 ‘네 귀를 믿으라’고 말씀해 주곤 하셨어요. 그 응원이 정말 큰 도움이 되었어요. 프랑스 재즈 전공 학생들은 대부분 어린 나이부터 재즈를 시작하는데, 저는 늦게 재즈를 시작한 만큼 부족한 부분을 빠르게 채우기 위해 학교를 네 군데나 다니면서 필요한 수업을 들었어요. 졸업은 두 학교만 하였고요.




영향을 준 아코디어니스트들은.


초기에는 아코디언 연주곡들을 정말 열심히 듣고 배웠어요. 뮈제트, 브라질 음악, 탱고, 클래식, 집시 음악 등등. 프랑스인이고, 단연 세계 최고의 아코디어니스트인 리처드 갈리아노를 가장 좋아했고요. 그런데 재즈를 배우기 시작한 후로는 일반적인 아코디언 음악보다는 재즈에 완전히 빠져 지냈어요. 정말 많은 뮤지션들을 다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도 빌 에반스부터 찰스 밍거스, 에릭 돌피, 존 콜트레인, 조 헨더슨, 맥코이 타이너를 많이 좋아했어요. 이젠 더는 신곡을 들을 수 없는 e.s.t의 팬이었고, 프레드 허쉬, 브래드 멜다우, 마크 줄리아나, 그리고 이 둘이 함께한 멜리아나는 정말 베스트 오브 베스트로 좋아해요! 그리고 아르메니아 출신의 티그랑 하마시안도 정말 좋아하고요. 분량 때문에 더 많은 뮤지션들을 언급할 수 없는 게 아쉽네요. 다양한 지역의 월드뮤직도 많이 즐겨듣고요. 음악을 듣는 데 있어서는 엄청난 잡식성이에요.




프랑스 학업 때 에피소드도 있었을 텐데.


프랑스가 아코디언의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아코디언을 전공으로 가르치는 학교는 정말 손에 꼽을 만큼 몇 곳 없어요. 특히나 재즈 아코디언은 더더군다나 정말 레어 중의 레어 아이템이고요. 학교에서 아코디언을 매고 다니면 다들 신기하게 쳐다보곤 했어요. (웃음)




저는 국내에서의 배경 없이 유학을 마치고 와서 막막했던 기억이 나요. 제희 씨는 귀국 후 어떻게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제가 2015년에 귀국했는데요, 그때 제가 한국에 개인적으로 아는 뮤지션이라고는 딱 세 명밖에 없었어요. 정말 막막했죠. 게다가 제 성격이 앞에 나서는 걸 싫어하는 소극적인 성격이라서 귀국 후 막연히 집에만 있었던 것 같아요. 파리 유학 시절에 같이 공연을 하며 알게 되었던 기타리스트 오진원 씨가 오진원 트리오의 공연에 객원 연주자로 불러 주셔서 폼택웍스홀과 대림미술관 공연을 함께하게 되었어요. 그게 제 한국 재즈 씬 데뷔 무대였어요. 정말 지금도 늘 감사하게 생각해요. 그 후에 차차 이런저런 연주 횟수가 많아지면서 감사하게도 차츰 여러 연주자분들을 알게 되고, 지금의 제희 퀸텟 멤버들도 만나게 됐고요.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게 정말 정답인 것 같아요. 제가 거의 극단적인 긍정주의자인데요, (웃음) 그 덕분에, 막막한 귀국 초기시절에도 조바심내지 않고 즐겁게 잘 지낼 수 있었어요.




제희 퀸텟 멤버들은 어떻게 선택했나요.


저희 제희 퀸텟의 멤버들은 이명건(피아노), 오정수(기타), 정상이(베이스), 마누엘 웨이언드(드럼)로 정말 설명이 필요 없는 최고의 뮤지션들이세요. 제가 감히 ‘선택’했다고 말하기도 불경스러운 것 같은데요. (웃음) 함께 연주하게 된 사연도 한 분 한 분 다 달라서 일일이 말씀드리자면 너무 장황하겠고요. 한마디로, 제 음악을 가장 멋지게 연주해주시는 분들이고, 음악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너무 훌륭하신 분들이에요. 이런 분들과 함께한다는 건 정말 너무나 감사하고 신나는 일이죠!




제희 퀸텟 [WARP DRIVE] 앨범을 내며 힘들었던 점은.


첫 앨범 작업이라 여러 가지로 부담스럽기도 하고 스트레스가 정말 컸어요. 그런 동시에 ‘처음’이라는 것이 너무나 좋은 기회이기도 하기 때문에 배울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직접 다 해보려고 했어요. 시행착오와 경험으로 많이 배우고 싶었어요. 프로듀싱 등을 제가 아닌 더 훌륭한 전문가분들께 부탁드렸다면 물론 더 완성도 높은 결과물이 나왔겠지만, 저는 이런 작업들이 제 역량을 한 단계 한 단계 진화시키는 과정의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은 아쉬운 점이 있더라도 이것이 훗날의 저를 위해 큰 밑거름이 될 거라고 믿어요. 정말 애정과 정성을 듬뿍 담은 앨범이에요. 음악적인 이야기는 아니지만, 자켓 디자인도 제가 구상했고, 자동차와 파란 하늘이 있는 커버 사진도 제가 이집트 여행 중에 사막에서 찍은 사진이에요. 저의 음악 세계를 처음으로 세상에 소개하는 제 마음을 잘 나타내는 것 같아 망설임 없이 결정했죠. 사진이 앨범명과도 잘 어울리고요. 앨범명인 [WARP DRIVE]는 시 공간을 초월한 ‘순간 이동’을 뜻해요. 제가 안내하는 새로운 아코디언 재즈의 세계로, 함께 여행을 떠나는 기분으로 제 음악을 들어보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제목을 정했어요.




유튜브를 뒤지다 보니 영화음악도 하셨던데, 이번 음반에서 작곡가로서의 역량도 충분히 주목받을 만합니다. 수록곡 소개와 함께 곡 쓰실 때 유념하는 부분을 조금 말씀해주세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곡가마다 작업 스타일이 다 다른데, 저는 곡을 쓸 때, 어떤 것, 또는 어떤 감정, 어떤 생각에 대해 이야기를 할 건지 먼저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를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말을 제목으로 정해요. 그러고 나서 그것에 대해 생각과 감정을 확장하며 곡을 써 나갑니다. 그래서 곡들마다 저마다의 주제와 스토리가 있고, 저의 경험들과 생각, 상상의 세계가 있죠. (웃음) 앨범에 실린 8곡의 모든 곡들을 설명하기엔 얘기가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요. 저희 제희 퀸텟 공연에 오시면 곡 설명을 들으실 수 있답니다. (웃음) 광고 맞습니다. (전원 웃음)




앞으로는 어떤 걸 하실 건가요.


우선 가까운 공연 소식으로는 10월 7일 서울숲재즈페스티벌에 참가하고요, 27일에는 작년에 제가 연주했던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다시 초청해주셔서 이번에는 제희 퀸텟으로 공연하게 되었습니다. 11월엔 서울 마리아칼라스홀에서 제희 퀸텟 단독공연이 있어요. 그리고 아직 팀 이름도 정하지 못한 새로운 팀을 준비 중인데요, 9월 22일이 첫 공연이고, 지금 열심히 곡을 쓰고 있어요. 어쿠스틱 기타와 일렉트릭 기타, 그리고 이펙터를 이용하여 어쿠스틱과 일렉트릭을 넘나드는 아코디언 사운드가 어우러지는 트리오 구성의 팀이에요. 그리고 좀 더 장기적인 계획으로는 음악적으로도, 인격적으로도, 항상 성장하는 뮤지션이 되고 싶은 ‘계획’이 있습니다. (웃음)




마지막으로 <재즈피플> 독자분들께 한마디 해주시면 인터뷰 마무리하겠습니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저도 너무 반가웠습니다. 앞으로 더 좋은 곡과 연주로 더 많은 분들과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저를 비롯해 각자의 장르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다른 여러 아코디어니스트들에게 관심 가져주시고 응원을 해주시면, 아코디언이라는 악기가 좀 더 대중적인 악기로 가까워지고, 또 그와 더불어 전문 아코디언 연주자들이 많이 생기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웃음) <재즈피플> 독자 여러분 모두 좋은 가을날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영주 | 음반 프로듀서

버클리음대에서 프로덕션 과정을 전공했으며

각종 음반의 프로듀서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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