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Article

재즈피플에서 소개하는 주요 기사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앨범 리뷰] 앰브로스 아킨무시리 [A Rift In Decorum]  
제목 [앨범 리뷰] 앰브로스 아킨무시리 [A Rift In Decorum]   2017-07-25


앰브로스 아킨무시리 [A Rift In Decorum]


재즈의 혁신과 미래를 그려가는 트럼펫 디자이너의 대답


많은 재즈 팬들이 가고 싶어 하는 명소 중에서도, 뉴욕에 위치한 빌리지 뱅가드는 그 의미가 남다르다. 재즈 뮤지션이라면 언젠가 서고 싶어 하는 곳이자 재즈 팬이라면 일생에 한 번은 가봐야 할 최고 동경의 대상이 빌리지 뱅가드라는 데는 이견을 제기할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동경을 품어오던 차, 2007년의 늦가을에 이르러 비로소 뉴욕의 빌리지 뱅가드를 찾았다. 그 날은 빌 샬랩 트리오의 공연이 있던 날이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지하로 이어지는 좁고 낡은 계단과 내부 인테리어가 조금은 실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자리를 잡고 음악을 듣는 순간, 음악 이상으로 미묘하지만 또렷하게 전해져 오는 왠지 모를 거룩한 아우라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단상으로 자리 잡았다. (빌 샬렙의 트리오의 라이브 역시 앨범보다 훌륭했음은 물론이다.)


그런 유서 깊은 공간에서 앰브로스 아킨무시리의 이번 앨범이 잉태했다. 아비샤이 코헨, 크리스천 스콧 등과 더불어 그에게 재즈 트럼펫의 신성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그는 3년에 한 번씩 신작을 발표하는데, 벌써 네 번째 작품이다. 한 템포 쉬어갈 시점이기도 한데, 이 앨범은 그간의 성과를 정리하는 수준의 앨범이 아니라 이전 정규 앨범과 같은 수준의 완성도와 치밀함으로 접근했다. 다작을 하지 않는 그이지만 이번에는 16개의 자작곡을 2장짜리 CD로 발표할 정도로 그야말로 창작열을 하얗게 불태웠다. 그런 요인 중에는 빌리지 뱅가드라는 공간 자체가 주는 영감도 한몫한듯하다.


아킨무시리는 이렇게 말한다. "저스틴(드러머)과 저는 빌리지 뱅가드에서 느낄 수 있는 영혼(Spirit)에 대해 많이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거기에 있는 영혼들이 나를 껴안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습니다. 따라서 원래 그곳에 존재했던 방식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공간감을 갖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빌리지 뱅가드라는 공간이 주는 아우라와 역사성, 더 나아가 그 무게감을 그 역시 똑같이 감내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마일스 데이비스로부터 케니 휠러와 돈 체리, 그리고 니콜라스 페이튼까지 이르는 다양한 영향력을 체화하면서 정통과 현재성을 아우른다는 찬사를 받아온 트럼페터 앰브로스 아킨무시리. 재미있는 것은 그 아우름의 결과물이 반드시 정반합이 아님을 이번 앨범에서 힘주어 강조하고 있다. ‘점잖음 속의 균열’이라는 제목에서 감지되듯 그의 음악은 과거와 현재 사이의 끊임없는 알력과 긴장으로 표출된다. 기본적으로 과거로부터의 영향력을 배척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스탠더드곡은 물론이고 이전 자작곡의 자가 복제조차도 엄격하게 배제한 독창성, 예측 불가능성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가 펼쳐 놓은 음악에선 언뜻 익숙해 보여도 낯선 코드와 불편한 멜로디, 실험적인 즉흥연주와 중독성 강한 인터플레이가 끊임없이 출몰한다. 남이든 자신이든, 누군가가 한 번이라도 시도한 것은 결코 따라 하지 않겠다는 듯이. 오프닝곡 ‘Maurice & Michael’처럼 포스트밥의 교과서적인 색깔과 외향성을 유지하다가도 ‘A Song To Exhale’처럼 내밀한 에너지를 머금은 채 이해하기 어려운 독백을 이어가기도 한다. 때론 우아하기도, 때론 흑인음악 특유의 반항적인 톤이 느껴지기도 하는 등, 복합적인 인상의 악절들이 쉴새없이 이어진다. 아무리 재즈에 조예가 깊은 팬들이라도, 심지어 빌리지 뱅가드의 현장에서 그의 음악을 접한 관객들조차도 그의 이런 종잡을 수 없는 낯선 어법을 100% 온전하게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ECM 레이블 등에서 흔히 포착되는 현재성과 궤를 같이하나 그들과 같은 서정성이나 지향성을 쉽게 포착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지향성이 없다고 속단하기도 어렵다. 그것은 동서남북이라는 평면상의 방향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의 오감으로는 쉽게 포착하기 어려운 입체적 방향성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뒤따르는 자의 한발은 전진이지만, 앞서가는 자의 한발은 방향이 된다. 이제 앰브로스 아킨무시리가 시도하는 모든 것들은 하나의 방향이 된다. 그의 이전 앨범들도 좋았지만 이번 작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선두에 서 있는 음악인이라는 점을 증명해냈다. 비르투오소라기보다는 혁신과 미래성을 표현하는 트럼펫 디자이너 앰브로스 아킨무시리, 그가 내놓은 대답이 옳았다. 적어도 그 창의성과 실험정신이 진부하게 받아들여지기 전까지는 계속 유효한 명제이다.





허재훈 | 재즈 칼럼니스트


인스타그램 페이지로 이동




7월호 목차 보기

 정기구독 신청

첨부파일 ambrose.JPG
비밀번호 삭제하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목록

삭제 수정 답변

댓글 수정

비밀번호

수정 취소

/ by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