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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힙합] 어스쓰리 [Hand On The Torch]  
제목 [재즈×힙합] 어스쓰리 [Hand On The Torch]   2017-07-18


어스쓰리 [Hand On The Torch]


힙합이 대중음악의 중심으로 위치를 옮겨가고 있던 90년대 초. 대중들은 낯선 음악을 받아들였다. 밝고 훵키한 재즈 연주가 중심에 있었지만, 힙합이었다. 랩과 샘플링, 프로그래밍된 드럼과 베이스, 모든 게 힙합이었다. 그 음악을 선보인 건 어스쓰리(Us3)였다. 블루노트가 공식적으로 출범시킨 최초의 힙합 그룹이었다. 이들의 음악은 60년대 블루노트의 전통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블루노트의 힙합 그룹


90년대 초, 런던 출신의 프로듀서 제프 윌킨슨(Geoff Wilkinson)은 동료 음악가들과 이런저런 음악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임은 NW1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들은 두 곡을 발표했는데, 그중 대중들의 관심을 모았던 건 ‘The Band Played The Boogie’였다. 라디오로 방송이 된 덕에 많은 이가 이 곡을 접했다. 그러던 중 제프 윌킨슨은 EMI 측에서 만나자는 연락을 받는다. 제프 윌킨슨은 불안에 떨었다. 이 곡은 기타리스트 그랜트 그린(Grant Green)이 블루노트에서 발표한 ‘Sookie Sookie’의 테마를 그대로 샘플링한 곡이었다. 샘플링하는 데 필요한 저작권 해결 절차인 샘플 클리어런스(Sample Clearance)를 거치지 않은 이른바 ‘무단 샘플링’으로 완성한 터. 당시 블루노트는 EMI 산하 레이블이었고, 이를 문제 삼아 소송을 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EMI 측의 반응은 예상과는 달랐다. 그랜트 그린의 곡을 재해석한 ‘The Band Played The Boogie’가 마음에 들고, 공식적으로 계약을 체결해서 이러한 작업을 이어가 달라고 제안했다. 이어서 블루노트는 제프 윌킨슨에게 엄청난 특권을 제안했다. 바로 블루노트에서 발표한 모든 곡을 자유롭게 사용해도 된다는 권한. 세상에나. 블루노트가 어떤 레이블인가. 30년대에 설립되어 재즈의 황금기라 할 수 있는 모던 재즈 시대를 이끌어온 레이블이 아니던가. 수많은 명인들이 배출한 명곡과 명반, 그 방대한 카탈로그를 자유롭게 열람해서 사용하는 건 당시까지 그 누구도 누리지 못한 특권이었다. 샘플을 클리어할 돈이 없던 힙합 프로듀서들은 불법으로 사용하거나, 샘플을 잘게 조각낸 뒤 재조합하는 컷앤페이스트(Cut & Paste) 기법을 통해 원곡을 숨겨야 했다. 제프 윌킨슨은 그런 데서 비롯되는 찝찝함과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그 누구보다도 당당할 수 있었다. 당연히 원곡을 의도적으로 변형할 필요도 없었다. 원곡의 질감을 드러내 그 후광을 누릴 수 있는 건 어스쓰리에게만 주어진 특권 중의 특권이었다.


제프 윌킨슨은 그룹 이름을 어스쓰리로 바뀌었다. 블루노트에서 전성기를 보낸 피아니스트 호레이스 팔란(Horace Parlan)의 1960년 앨범 [Us Three]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엄청난 특권을 누린 어스쓰리가 리드 싱글로 발표한 곡은 ‘Cantaloop (Flip Fantasia)’였다.




60년대 허비 행콕을 소환하다


‘Cantaloop (Flip Fantasia)’의 도입부에는 “신사 숙녀 여러분, 아시다시피 오늘 버드랜드에서의 밤은 특별합니다. 블루노트 녹음을 진행합니다”란 목소리가 등장한다.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거친 질감은 우리를 블루노트의 전성시대였던 50년대와 60년대로 회귀시킨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당시 버드랜드 재즈클럽의 진행자로 유명했던 피 위 마켓(Pee Wee Marquette)이다. 해당 곡을 작업하면서 새롭게 녹음해 음색을 거칠게 편집한 게 아니라, 정말 당시의 녹음이란 이야기다. 이 목소리는 드러머 아트 블레이키(Art Blakey)가 1954년에 블루노트에서 발표한 라이브 앨범 [A Night At Birdland Vol.1]에 삽입됐던 목소리다.




소개 내레이션이 끝나기 무섭게 드러머의 큐 사인을 보내고, 곧 리드미컬한 피아노 연주가 엄습한다. 허비 행콕(Herbie Hancock)의 명곡 ‘Cantaloupe Island’의 테마다. 허비 행콕, 프레디 허버드(Freddie Hubbard), 론 카터(Ron Carter), 토니 윌리엄스(Tony Williams)로 구성된 드림팀이 만들어내는 리듬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토니 윌리엄스가 연주한 드럼 연주와 론 카터의 어쿠스틱 베이스 연주는 프로그래밍된 묵직한 소리를 덮는다. 이 곡에서 어스쓰리는 원곡의 섬세함보단 강한 박자감을 강조하는 데 더 집중하며 전체적인 템포를 올린다. 템포를 올린 이유는 전체적인 사운드의 질주감을 높이기 위함도 있지만, 원곡의 템포는 랩의 라임이라든지 특규의 리듬감을 살리기에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Cantaloop (Flip Fantasia)’에서 어스쓰리는 허비 행콕의 테마를 반복시킨다. 힙합 샘플링에서 몇 마디 정도의 샘플을 반복적으로 재생시키는 것을 루프(Loop)라고 하는데, 어스쓰리는 원곡의 제목 칸타루프(Cantaloupe)에 루프를 합성해 곡 제목을 ‘Cantaloop (Flip Fantasia)’라 지었다. 랩의 언어 유희적 특성을 곡 제목에도 적용한 것이다.


이 곡에 사용된 샘플은 두 개뿐이 아니다. 곡 곳곳에서 “예!”하는 음성과 “왓츠 댓?”하는 음성이 등장하는데, 이건 루 도널드슨(Lou Donaldson)의 ‘Everything I Do Gonna Be Funky (From Now On)’에서 따온 보컬 샘플이다. 비슷한 구간에서 등장하는 기타 연주는 도널드 버드(Donald Byrd)의 ‘Places And Spaces’에서 따온 것이며, 첫 번째 랩 벌스 끝 무렵에 등장하는 퍼커션 소리는 에스터 윌리엄스(Ester Williams)의 ‘It Feels Real Good’에서 샘플링한 것이다(이 곡에 사용된 샘플 중 유일하게 출처가 블루노트 음원이 아닌 곡이다).


이런 파편적으로 사용되는 샘플들을 개별적으로 찾아내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가감을 통한 미세한 변화는 하나의 테마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곡이 지루하지 않게 이어지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무튼, ‘Cantaloop (Flip Fantasia)’은 팝 차트에서 무려 9위에 오르는 메가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싱글이 이 정도 성과를 거두면 해당 싱글이 수록된 앨범은 주목을 받는 게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하지만 100만 장이나 팔릴 거라고 예상은 했을까? 미국에서만의 판매량이 이 정도였다. [Hand On The Torch]는 RIAA로부터 플래티넘 레코드 등급을 부여받았다. 그때까지 블루노트의 앨범 중 가장 빨리 플래티넘 레코드를 달성한 앨범이 아니었을까.




소울 재즈의 재발견


‘Cantaloop (Flip Fantasia)’에서 엿볼 수 있듯, 어스쓰리가 주로 관심을 보였던 건 60년대의 소울 재즈였다. 50년대의 델로니어스 몽크(Thelonious Monk), 아트 블레이키의 곡이 사용되기도 했지만, 대체로 루 도널드슨, 도널드 버드(Donald Byrd), 호레이스 실버(Horace Silver)로 대변되는 60년대 블루노트의 소울 재즈가 무게감 있게 샘플링됐다. 특별하게 삼을 일은 아닌 게, 소울 재즈는 힙합에서 제법 인기 있는 샘플 대상이다. 테마 멜로디가 깔끔하게 떨어지기 때문에, 그 테마를 루프로 돌리기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Hand On The Torch]의 수록곡 ‘Eleven Long Years’을 예로 들기에 적절할 듯하다. 호레이스 실버의 대표곡 ‘Song For My Father’의 테마를 루프로 돌린다. 호레이스 실버와 베이시스트 테디 스미스(Teddy Smith)가 리듬 반주를 핵심적으로 사용하고, 트럼페터 카멜 존스(Carmell Jones)와 색소포니스트 조 헨더슨(Joe Henderson)이 주도하는 테마를 뽕삘(?)나게 살려 레게곡으로 재탄생시켰다.


원곡이 너무나 유명한 덕분에 ‘Cantaloop (Flip Fantasia)’과 마찬가지로 명곡의 재발견이란 쾌감을 느낄 수 있다. 이건 재즈 연주자가 스탠더드곡을 해석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스탠더드곡을 연주한다는 것은 곡을 자신의 영역에 끌어오는 것이지만, 샘플링으로 새롭게 재구성하는 건 원곡이 지닌 지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즐거움은 [Hand On The Torch]에 수록된 모든 곡에서 드러난다. 그 모든 곡이 50년대에서 70년대 사이에 블루노트에서 발표된 여러 명곡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재즈의 세계


어스쓰리의 음악은 재즈 랩으로 분류됐다. 재즈 랩이라는 건 이전부터 사용되어 온 용어였다. 이전 글에서 살펴봤듯, ATCQ가 재즈 샘플링한 비트 프로덕션 위에 랩을 했고, 구루는 랩과 연주를 동시에 진행하는 혁신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들이 대중들의 가시권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ATCQ는 재즈 랩을 표방했지만, 대중들이 해당 곡이 재즈곡을 샘플링했는지, 소울곡을 샘플링했는지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였으며, 구루의 실험적인 접목은 불특정 다수의 영역에 다가갈 만큼의 대중성을 지니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어스쓰리의 음악은 대중들이 ‘실질적으로’ 처음 만난 재즈 랩이나 다름없었다.


비슷한 시기에 영국 출신의 밴드들이 인기를 얻었다. 브랜드 뉴 헤비스(Brand New Heavies)와 자미로콰이(Jamiroquai)가 대표적이다. 영국의 음악가들은 미국에서 유행한 음악 장르나 사조, 스타일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개척하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는데, 이들도 이 경우에 속한다. 이들은 ‘애시드 재즈’라는 새로운 장르로 묶였다. 이러한 훵키하고 팝적인 재즈 밴드는 ‘진짜 재즈가 아니다’란 비난을 받았지만, 그러한 비난을 기꺼이 감수할 정도의 인기를 누렸다.


정통 재즈에 대한 검증을 뒤로한다면, 어스쓰리는 90년대 가장 인기 있었던 재즈 밴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행보는 계속됐다. 1994년에는 힙합 뮤지션과 재즈 뮤지션이 대거 참여한 프로젝트 앨범 [Stolen Moments: Red Hot + Cool]에 테너 색소포니스트 조슈아 레드맨(Joshua Redman)과 합작을 펼치기도 했다. 1997년에는 전작의 기운을 이어간 [Broadway & 52nd]을 발표했지만, 데뷔 앨범만큼의 신선함이나 쾌감을 선사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어스쓰리는 여전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주류에서의 관심은 받지 못하지만, 꾸준한 앨범 발매를 통해 재즈와 힙합을 접목하려는 노력을 증명하고 있다. 어스쓰리의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의 수는 전성기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어스쓰리에게 여전히 기대를 하는 건 90년대 초에 느꼈던 감동이 여전히 전해지고 있어서가 아닐까. 오늘도 어스쓰리의 도전은 계속된다.  




류희성 | 월간 재즈피플 기자

여러 매체에서 음악과 관련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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