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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아이돌이 곡을 쓴다는 것  
제목 [트렌드] 아이돌이 곡을 쓴다는 것   2016-07-26


아이돌이 곡을 쓴다는 것


아이돌도 곡을 쓴다. 수년 전만 해도 한 손에 겨우 꼽을 정도의 희귀종이거나 전문 작곡가의 이름 옆 구색 맞추기용으로 슬쩍 끼워 넣은 것 아니냐는 오해가 난무하던 이 명제는, 이제는 별다르거나 특별할 것도 없는 무척이나 평범한 문장이 되었다. 이제 결코 적지 않은 숫자의 아이돌 가수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어 부르며, 따라서 곡을 쓴다는 사실만으로 주목받던 다소 촌스러운 시절은 이미 한참이나 지났다. 노래하고 춤추고 정성 들여 무대 연기를 펼치는 걸 멈추지 않았던 소년과 소녀들은 이제 스스로의 이야기를 시와 노래에 담아 대중에게 전달하기 시작했다.


당장 이러한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면 지금 당장 포털 사이트로 달려가 아이돌과 자작곡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종현, 남우현, 티파니, 제시카, 루나 등의 이름이 쏟아진다. 성별도 연차도 소속사도 개성도 다르다. 게다가 이것은 단지 5월 한 달 사이 벌어진 일이다. 아마도 눈치가 조금 빠른 이라면 이즈음에서 무언가 눈치챘을 테다. 그렇다. 아이돌과 자작곡이라는 두 단어로 묶인 이들 가운데 대부분은 그룹에서 솔로로 새로운 도약을 시도한 인물들이다. 첫 솔로 정규앨범 전곡을 자작곡으로 채우고 셀프 프로듀싱까지 거뜬히 해낸 샤이니의 종현, 그룹 탈퇴 이후 처음으로 솔직한 자신의 속내를 담담한 노랫말로 풀어낸 소녀시대 제시카, 자신만이 지닌 90년대 발라드 감성을 아낌없이 펼쳐낸 인피니트 남우현까지. 색깔도 장르도 천차만별인 이들의 조심스러운 도전은 대중들에게 모 그룹의 연장 선상이 아닌 지금껏 세상에 없던 아티스트를 새롭게 만나는 듯한 신선함을 전달하며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그렇다면 왜 아이돌 자작곡은 하필 솔로 활동과 이토록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을까. 꽤나 복잡해 보이는 질문이지만 결론은 바보스러울 정도로 간단하다. 그건 바로 이것이 ‘솔로’ 활동이기 때문이다. 그간 타 멤버나 그룹 활동에 가려져 있던 자기 자신을 비로소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절체절명의 기회, 그리고 그 흔치 않은 행운 속 스스로 쓴 ‘자작곡’이 자신을 가장 효율적으로 대변할 것이라는 믿음이 탄생시킨 현상이 바로 지금의 이 솔로와 자작곡 러시다. 지난 10여 년간 세계적인 인기를 등에 업고 끊임없이 성장해 온 케이팝 시장도 이 찰떡궁합을 뒷받침하는 큰 자양분이다. 국내외 음악 시장의 아이돌팝 강세로 수명이 연장된 아이돌 그룹 구성원들의 마음속, 시간과 피로와 동시에 ‘나만의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는 욕구가 자연스레 쌓여왔기 때문이다. 이미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해도, 그 사랑의 근원은 오로지 자신만의 것이 아니다. 철저한 계산하에 완벽한 분업의 세계. 한 치의 오차와 실수도 허용되지 않은 철통 같은 꿈과 환상의 세계 속, 진짜 자신을 보여주고 싶다는 인간 본연의 욕구가 가 닿은 곳이 바로 솔로, 그리고 자작곡인 것이다. 그룹이 해체하지 않는 한 개인 활동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었던 1세대와는 달리 그룹과 솔로 활동을 병행할 수 있게 변형된 최근 아이돌씬의 분위기도 한 몫 단단히 했다.


여기서 가장 재미있는 건, 그렇듯 ‘진짜’ 자신을 세상에 외칠 수 있는 방법으로 모든 이들이 한결같이 꺼내 든 것이 ‘자작곡’ 카드라는 사실이다. 물론 ‘아이돌 자작곡’이라는 단어가 불러오는 홍보 효과와 긍정적 영향은 여전히 큰 편이다. 곡 좀 쓴다고 알려진 이들은 ‘역시’, 전혀 알려진 바 없던 이들은 ‘의외’라는 단어를 앞머리에 붙인 채 ‘실력파’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결과물이나 근거야 어쨌든 일종의 음악적 가치를 인정받는 듯한 제스처를 취할 수 있는 이 행위는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머릿속에도 분명 존재하고 있을 ‘곡을 쓴다 (고로) 실력이 있다 (고로) 아이돌은 실력이 없다 (고로) 아이돌은 곡을 쓰지 못한다’는 견고한 변증법으로 화려하게 치장된 고정관념을 가장 쉽게 타파할 수 있는 마법의 가루다.


이 에누리 없이 깔끔하고 일견 동물적인 결론은 대중음악 역사 속 뿌리 깊게 자리한 싱어송라이터 신화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곡을 쓰고 부르기까지 하는 사람은 단지 부르기만 하는 사람보다 몇 단계 높은 레벨에 위치해 있다는 상대적 우위의 무용한 점거. 직접 쓴 곡을 직접 불러야만 음악에 대한 진정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싱어송라이터 만능주의의 질긴 생명력은 태평양과 밀레니엄을 돌고 돌아 결국 21세기 케이팝씬에게까지 영향력을 미친 셈이 되었다. 각자의 이유로 훌륭한 아이돌은 참으로 많고 많지만, 결국 마지막에 남는 건 직접 쓴 곡들로 대중과 평단의 주목을 동시에 받은 빅뱅의 지드래곤, 블락비 지코 등의 이름이다. 곡을 쓰지 못하면 그저 흔한 반도의 아이돌일 뿐이지만, 곡을 쓸 수 있다면 섣불리 무시하거나 외면할 수 없는 ‘진정한’ 아이돌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거라는 믿음. 웬만한 종교도 이보다 깊은 믿음을 요구할 수 없을 것이다.


이토록 안팎으로 왜곡된 현실 안에서도 한 줄기 희망이 있다면, 역시 그 모든 편견과 고정관념을 뛰어넘은 ‘잘하는’ 이들의 존재다. 곡을 쓸 수 있는 건 그저 쓸 수 있다는 사실의 재확인 그 이상이 아니다. 단순하고 객관적인 행동 묘사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건, 바로 ‘잘하는’ 것이다. 타고난 센스와 스타성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팝 아이콘 지드래곤, 아이돌과 힙합 사이의 지난한 싸움을 자신의 이름 두 글자로 종식시켜버린 지코, 꾸준히 성장하는 싱어송라이터의 전형과도 같은 아이유와 씨앤블루의 정용화, 몸 담고 있는 그룹의 히트곡은 물론 맑은 소녀 감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묘사할 줄 아는 작곡가로 성큼 자라난 B1A4의 진영까지. 현재 아이돌씬에는 단지 음표를 나열하는 것 이상의 다양한 연출이 가능한 실로 다채로운 싱어송라이터들이 활약 중이다. 특히 R&B와 트렌디한 사운드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의 솔로 작업은 물론 모 그룹 샤이니의 앨범 수록곡, 아이유, 이하이, 손담비 등 동료 가수들에게까지 곡을 제공한 종현은 그야말로 모범적으로 진화하고 있는 단단한 싱어송라이터라 해도 좋다. 파트너 계범주와 함께하는 환상의 호흡으로 현재 아이돌씬에서 가장 힘차고 청량한 보이팝을 만들어내고 있는 그룹 세븐틴의 멤버 우지 역시 자작곡 만능주의와 상관없이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자신 있게 펼쳐나가고 있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곡을 쓰는 아이돌. 이제와 새삼스러울 건 없지만 다른 의미로 점차 새삼스러워질 이들의 성장에 주목할 이유가 이토록 넘쳐난다. 오해, 고정관념, 인정욕구. 시작이 무엇이었든 상관없다. 그 모든 에너지를 동력으로 삼아 아이돌이라는 단어에 덧씌워진 투명하지만 견고한 막이 아침 안개처럼 걷혀 나갈 때, 한국 대중음악의 몸집 역시 조금씩 바뀌어 나갈 것이다.    




김윤하 | 대중음악평론가

취향과 애정에 기반한 글쓰기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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