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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관행과 갑질, 한국재즈가 마주한 현실  
제목 [대담] 관행과 갑질, 한국재즈가 마주한 현실   2016-07-26


관행과 갑질, 한국재즈가 마주한 현실

#관행 #갑질 #열정페이 #재능기부


최근 예술계와 스포츠계에선 여러 문제가 터져 나왔다. 업계 종사자들은 그게 ‘관행’이라며 논란을 일축하려 했다. 관행이란 무엇일까? 관행이라는 껍질 아래에는 열정페이, 재능기부 등과 관련된 갑질의 여러 형태가 존재한다. 모두가 힘을 합쳐 힘든 환경을 헤쳐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한국재즈도 예외는 아니다.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재즈계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네 명의 뮤지션 오종대, 원영조, 전용준, 한웅원을 만나 보았다.


진행 | 류희성

사진 | 안재경




다들 귀중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재즈계에 만연한 여러 병폐에 관해 이야기해볼 생각입니다. 첫 주제는 가장 큰 화두이자 큰 주제인 공연료 미지급입니다. 연주자들은 이 문제를 어떤 식으로 마주하게 되나요?


오: 자주 있는 일이에요. 그런데 말이죠, 사전에 지급을 못 한다고 말을 해주면 차라리 괜찮아요. 그런데 그런 내용이 없이 미지급하게 되면 문제가 되는 거예요. 미지급을 사전에 이야기를 하고 못 받는 거와 그냥 못 받는 것은 다르거든요. 제가 보는 시각은 이래요. 첫 번째는 문화적인 건데, '선비 정신'이에요. (전원 웃음) 우리가 자본주의의 시대를 살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중 하나가 돈이에요. 이건 대단히 중요해요. 돈이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 대한민국에는 아직도 19세기 선비 정신이 남아 있어요. 그래서 돈에 관해 말하는 게 명예롭지 않다고 여기거나, 특히, 아티스트가 돈에 대해 말하는 걸 불편하게 여기는 게 있어요. 더 나아가 이야기하면, 그런 불편함을 이용, 악용하는 기획자들이 존재하고 있어요. 그런 문화가 만연하고 있어요.


사실, 공연에 대한 조건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이야기해야 하는 게 '개런티'(출연료)예요. 이건 상식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우 출연료에 대한 이야기를 기획자와 연주자 모두가 기피해요. 여기서 말하는 많은 경우는 아마 2/3 정도, 반 이상일 거예요.


전: 진짜로 그런 얘기를 하면 속물처럼 느껴지는, 그런 게 있어요.




연주자도 그런다는 건가요?


오: 네. 연주자들도 그런 선비 정신이 있어서 꺼리죠. 이건 경험에서 비롯되는 거예요. 저도 과거에 개런티에 관해서 이야기했다가 "아티스트가 뭔 돈을 그리 밝혀?"란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요. 그런 분위기 때문에 아티스트가 개런티에 대해 물어보기 힘든 그런 분위기가 있어요. 암묵적이죠. 그런 상황이라면 당연히 기획자 측에서 먼저 얘기를 해줘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얘기를 안 해요.




출연료를 못 받을 수도 있겠네요.


오: 그냥 이용만 하는 거예요. 그리고 말을 했을 때 불리해지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있어요. 물론 저처럼 음악 생활을 오래 한 중견 연주자인 경우에는 기획자 측에서 개런티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경우가 그보단 많아요. 그리고 말 하지 않는 경우에는 제가 먼저 물어보죠. 욕먹어도 "당연한 걸?"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냥 '안 하면 그만이다'란 식으로.


하지만 젊은 연주자나 이제 씬에 데뷔한 연주자의 경우에는 선비 정신에 열정페이가 더해져요. '이제 시작한 사람이 좋은 음악을 만들어야지, 돈부터 밝혀?'라는 식의 분위기, 그리고 그런 것을 이용하는 분위기 때문에 애초에 물어볼 수가 없는 거예요. 심지어 돈을 물어봐도, 얼버무리거나 '이건 당신의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좋은 기회야'라는 식으로 얘기하는 경우도 많아요.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그런 식의 인식과 분위기가 존재해요. 어찌 되었건 저는 이걸 물어보지 않는 게 첫 번째 문제라고 생각해요.


두 번째 문제는, 계약서를 써야 한다는 거예요. 상식적인 거예요. 큰 공연이든 작은 공연이든 계약서는 써야 해요. 서로 간의 약속인 거죠. 요즘에는 부모와 자식 간에 돈 빌려줘도 차용증서 쓴다고 하는데 말이에요. 내가 가지고 있는 무형의 가치를 제공하고, 그것에 대한 대가를 받기로 약속을 하는 거예요. 하다못해, 우리가 카페에서 커피를 마셔도 영수증을 주잖아요. 얼마 안 되는 가격이라도 영수증을 발급하고, "버려 드릴까요?"라고 물어라도 보잖아요. 그런데 이 커피보다 더 가치 있고, 더 중요하고, 아티스트들이 평생을 걸쳐 쌓아온 것을 제공하는 데도 불구하고 영수증 하나조차 줄 생각을 안 한다는 거예요. 계약서, 이게 두 번째 문제예요.




그럼 세 번째 문제는 뭔가요?


오: 세 번째 문제는 보통 계약을 하게 되면, 표준적인 계약을 하게 되면, 사전에 계약금을 주게 되어있어요. 이게 상식적으로 맞는 거예요. 물건을 살 때, 물건 다 써보고 마음에 들면 돈을 내나요? 아니잖아요. 저는 재즈피플 구독할 때 2년 치를 선입금했어요. 제가 2년 치를 다 보고, "기사가 괜찮네. 나중에 돈 드릴게요", 이렇게 안 한단 말이죠. 무엇보다도 상품을 다 써보고 나서 돈을 주려고 하면 쉽지가 않아요. 상품을 원하면 미리 돈을 내고 받아보는 거죠. 현실적으로 그게 어렵다면 계약금을 주면 돼요. 하다못해 우리가 원룸을 계약해도 계약금을 내잖아요. 공연도 그래야 해요. 계약금이란 게, 약속을 못 지키게 되면 이만큼은 내가 포기하겠다는 거란 말이죠. 사실, 그렇게 되면 기획자도 그 계약금이 아까워서라도 그 공연을 무산시키지 않을 거란 말이죠. 공연 티켓이 안 팔려서 수지가 안 맞거나 안 될 것 같아서 기획자가 공연을 엎어버리면 연주자는 어떻게 되나요? 그날 공연을 위해 스케줄을 비워놨던 연주자는, 쉽게 말하자면 상품을 못 팔고 재고가 쌓여버리는 거예요.


공연이 끝나고 나면, 입장이 바뀌어요. 공연 전에는 굉장히 매너 좋게 대해주시다가, 공연이 끝나고 나면 연락 자체가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연결이 닿아도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잊혀지는 경우가 많아요. 여기서 선비 정신이 한 번 더 나오는데. (웃음) 뮤지션들이 돈을 안 주면 전화를 해야 하는데, 그걸 못 하는 거예요. 물론, 이거는 최악의 케이스를 말씀드리는 거예요. 요즘에는 잘 챙겨주시는 분들이 많고, 전화하면 바로 입금해주시는 분들도 있어요.




계약서를 쓴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한: 계약서를 써주고, 계약금을 주시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이 경우에는 기획자들이 공연 후에 잠적해버리는 버리는 일이 많아요. 그래서 계약금만 받고 끝나는 경우가 꽤 있어요.


전: 전 계약금 받아본 적이 없어요.


오: 그렇지. 내가 20년 하면서 계약금 받아본 게 열 손가락에 꼽으니까, 네가 아직 못 받아봤을 수도 있어. (전원 웃음)




결제를 미루다가 잊히면 끝 아닌가요?


오: 제 과거 경험 하나 얘기 드릴게요. 아마 기자님도 잘 아실 유명 음반 제작자 얘기예요. 음반 녹음이 끝나고서 약속됐던 페이를 요청했어요. 실은 얼마 안 되는 금액이었어요. 당시에 저는 선비 정신으로 '주시겠지, 주시겠지...' 하면서 1년 가까이 기다리다가 지쳐서 말한 거였거든요. 이런저런 얘기를 하시다가 '벌 만큼 벌고, 음악 하는 사람이 무슨 돈을 갖고 그러냐'며 오히려 면박을 주더라고요. 저 그 돈이 없어도 살 수 있어요. 문제는 상처를 크게 받은 거예요. 자존심의 문제인 거죠.




음반이 잘 안 팔려서, 공연이 잘 안 돼서 줄 수 없는 상황도 있을 것 같아요.


오: 못 받은 경우도 있고, 나중에 받아도 잘 안 됐다며 금액의 일부만 주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 지급이 지체되면, 자본주의 상도덕 질서에 의해 늦어진 것에 대해서는 연체료를 지급해야 해요. 연체료는커녕 오히려 금액이 깎여서 들어온다는 거죠.




공연비 자체가 없이 진행되는 경우도 있는 건가요?


원: 그렇긴 해요. 여기서 알아야 할 건, 공연료를 지급하는 공연과 그렇지 않은 공연은 큰 차이가 있다는 거예요. 우선 공연료를 지급하지 못하는 공연의 경우에는 기획자가 굉장히 정중히 대해줘요. 우리도 마찬가지로 정중하게 대하죠. 나중에 가서 돈을 못 줄 바에는 차라리 이게 낫다고 생각해요. 대가를 받지 못할 거라면 존중이라도 받고 싶어요. "저희가 공연료를 드리지 못하지만, 식사라도 대접하겠습니다"라고 하면서 하다못해 대기실에 과자라도 준비해주는 식이 되든 간에요. 돈이 아니라, 존중의 문제예요.


오: 혼동하면 안 되는 게 뭐냐 하면, 저희는 (기획자나 여러) 상황에 따라 돈을 안 받거나 적게 받을 수도 있어요. 재즈씬이 쉽지 않고 기획자들도 어렵고, 여기서 돈 버는 사람 없는 거 저희도 알아요. 클럽 오너나 선배 연주자들도 돈 없는 거 다 알죠. 그런 상황에서 우리한테 돈을 많이 달라는 게 아니고, 돈을 주지 못하면 미리 말을 해주고 미리 합의를 해두자는 거예요. 이번에는 페이가 없다거나 들어오는 수익의 몇 퍼센트를 주겠다는 식으로 말을 하고, '그런데도 할 수 있겠어?'라고 물어보는 절차가 필요한 거예요. 거기서 연주자가 일정이나 여건이 되면 하고, 안 맞으면 못하는 것, 그게 다예요. 그렇다고 많이 받는 것도 아니고, 많이 받지도 못해요. 그 금액이 적다고 해서 그걸 생략해 버리고 연주자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건 문제가 된다는 거죠.


한: 뮤지션들은 음악을 늘 삶의 곁에 두고 사는 사람들이다 보니까, 굉장히 감성적인 사람들이에요. 기획자가 힘들다고 말해주거나, 재정 상태에 관한 설명을 잘 해주고, 뮤지션의 자존심을 잘 세워주신다면 저희도 기분 좋게 할 수 있어요. 그 행사에서 돈을 못 받는다고 해서 저희가 못 먹고 사는 건 아니거든요. 돈을 안 주면서 뮤지션을 하대하거나 '무대에 서는 게 감사한 거 아니냐'는 식으로 나오면 뮤지션 입장에서는 연주를 할 이유 자체가 없어지는 거죠.




반드시 페이가 없더라도 존중이 있다면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거네요.


오: 맞아요. 여기서 두 가지를 말씀드릴게요. 첫 번째는, 음악가가 존재해야 업계가 존재할 수 있어요. 음악가가 존재하지 않으면, 음반을 제작하는 분들이나 업계에 계신 분들 모두 실업자예요. 죄송하지만 재즈 연주자가 없으면 재즈피플이란 잡지사가 없어지겠죠. 자기가 무대를 만들어준 것처럼 기획자들이 큰소리를 치는데, 사실 무대를 만들어줘서 저희가 올라가는 게 아니라, 우리가 있기 때문에 무대가 생긴 거예요.


두 번째는 많은 제작자가 공연을 기획하면서 예산을 짤 때 공연장 대관 계약서를 안 쓰는 경우는 없을 거예요. '공연하고 나서 돈 남으면 입금해줄게', 이런 건 없어요. 음향업체도 마찬가지예요. 물론, 음향업체 중에서도 연주자들처럼 기획자들에게 당하는 데가 있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연주자들보단 나아요. 그래도 그 사람들은 돈은 받아요. 열에 아홉, 우리 연주자들이 기획자들에게 듣는 말이 "이번 공연에는 예산이 없으니까, 이번에 잘 도와주시면 다음 번에 좋은 기회 만들어보겠습니다"예요. 물론, 예산이 타이트하겠죠. 그렇다고 연주자 공연 페이 대려고 공연장 대관료를 깎는 걸 본 적이 없어요. 공연 스탭이나 직원들에게서 조금씩 자르겠죠. 그래도 가장 많이 잘리는 건 연주자 페이예요. 연주자 중에서도 스타가 있으면 또 달라요. 스타는 돈 안 받으면 무대에 안 서고, 그러면 공연 자체가 성립될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공연은 스타만으로 되는 게 아니에요. 그런 의미에서 연주자들에 대한 존중이 더 필요해요.




적은 페이나 페이 미지급에도 무대에 서려는 연주자가 있으니까 기획자들의 인식도 그렇게 된 게 아닐까요?


전: 그런 것 같아요. “너 아니어도 설 애들 많다”라는 식으로.


원: 그렇게 말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인가요?


한: 한편으론 연주자들이 치밀하지 못한 부분도 있어요. 그걸 악용할 수가 있거든요. 사실, 되게 오랫동안 안 주면, 연주자들은 잊어버려요. (전원 웃음) 시간이 좀 오래 지나면,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가물가물해지거든요. 그렇게 되면 못 받고 넘어가게 되는 거죠.


전: 저도 그러다가 못 받은 게 좀 있는 것 같아요. (웃음)





소위 말하는 열정페이와도 엮인 문제군요.


오: 맞아요. 일을 배우고 일을 하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의 열정과 마음을 이용해서 노동력을 착취하는 게 열정페이거든요. 뮤지션들은 이 일 자체가 좋아해서 하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에요. 그 무대에 서는 것 자체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연주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주지 않으려 한다거나 피해 가려 하는 건 정당하지 못한 거죠.


원: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24시간 음악 생각을 해요. 윈턴 마살리스는 하루종일 음악을 한다고 하잖아요. 자면서도 음악 생각을 하고, 화장실에서도 음악을 하고요. 기획자들과는 달리 뮤지션들은 책상에 앉아서 비즈니스에 관한 생각을 할 시간이 없어요. 그런 상황에서 기획자들이 뮤지션들에게 비즈니스적으로 이용하려고 하면 당할 수밖에 없는 거죠.




갑질에 의한 전공생들의 열정페이는 어떤 것이 있나요?


원: 예전에 음악을 하던 사람들은 힘들었던 게 사실이에요. 70년대, 80년대에는 상황도 어려웠고, 기획자를 포함해서 모두가 무식했어요. 정말 힘들었죠. 연주할 곳도 없었고, 돈 1, 2 만 원에 목숨을 걸어야 했으니까요. 그때는 이해해요. 하지만 세월이 흘러서 자리가 잡혔는데, 그럼에도 관행은 그대로 그 시대에 머무르고 있는 거예요. 학생들 세워놓고 표 팔라고 시켜서 교수들이 가져가는 건 일제강점기 클래식 교수들이 하던 거예요. 거긴 지금도 그렇게 해요. 그런 병폐가 너무 싫었어요. 제가 미국으로 갔던 가장 큰 이유가 그거예요. 그리고 나서 돌아왔는데, 여전히 그대로인 거예요. 위 세대 연주자들은 환경 때문에 그렇게 했다 하더라도 내 아래 세대 연주자들이 왜 똑같이 그렇게 하고 있는지를 모르겠어요. 페이스북을 하다가 어느 30대 연주자가 자기 '제자 연주회'를 한다고 하는 거예요. 페이스북 친구 관계를 바로 끊어버렸어요. 비슷한 걸 작년 겨울에도 봤었죠.




말씀하신 제자 연주회라는 게 정확히 뭔가요?


전: 원래는 클래식계에서 하는 거잖아요. 제자 연주회, 제자 캠프라는 식으로 많이 하죠.


원: 그렇지. 자기 이름을 거는 연주횐데, 자기가 아닌 제자들이 연주하는 거예요. 심지어 그쪽에선 교수들이 제자한테 표를 다 나눠주고 사라고 해서 그 돈을 교수가 다 가져가요. 그건 일제강점기의 잔재인데, 그걸 왜 우리가 하고 있나요?




교수들 입장에선 학생들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원: 기회를 주는 건 괜찮아요. 문제는 그 의도가 순수하지 않다는 거죠.


오: 말씀하신 것처럼 무대에 설 기회를 주는 건 좋아요. 그런 건 저도 해요. 다만, 그 이면에 다른 경제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게 있다면 그걸 경계해야 한다는 거예요.


원: 음반의 경우에는 더 심해요. 학생을 참여시키고 크레딧에는 포함 안 시키는 경우도 있고요.


오: 연주를 하거나 편곡을 하면 그 친구의 이름을 크레딧에 올려줘야죠. 페이가 없는 무대라면 모르지만, 페이가 있다면 그만큼을 나눠주고 해야죠. 그게 안 되면 밥이라도 함께하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 대부분은 학생들이 모든 노동을 하고 학생들이 가져가는 게 없는 게 문제예요.


전: 전 학생 때 교수님 교제 하나에 녹음을 통으로 한 적이 있어요. “너한테도 좋은 커리어고, 선배들도 그렇게 했어. 너 바쁜 거 아니까 수업 안 나와도 A+ 줄게”라고 하시고 녹음을 시키신 교수님이 계셨어요. 녹음을 했는데, 한 푼도 받지 못했죠.




과거의 연주자분들도 그랬나요?


오: 오히려 그분들은 그런 걸 시키진 않았어요.


원: 맞아요. 연주자가 워낙 없기도 했지만, 그런 건 없었어요. 그런데 요즘엔 그런다는 거죠. 요즘 올댓재즈 가보면 테크니션들이 악기를 들고 와요. 그러면서 연주자는 '너희들, 선생님 연주 보니까 영광인 줄 알아'라는 식으로 대하는 거예요. 70, 80년대 연주자들은 팀에 테크니션을 포함시켰어요. 테크니션은 월급을 받는 직업이었어요. 저도 테크니션이었고요. 그런데 요즘 악기 들고 오는 애들 얼굴을 보면 표정이 안 좋아요. 왜? 이런 일을 하는 게 한두 번이 아닐 테니까요. 들고 오는 게 보통 일인가요? 연주가 끝나면 그 연주자는 그냥 나가버려요. 그러면 학생들은 그 악기를 챙겨서 따라 나가는 거예요. 한 번은 기타 앰프를 가져오더라고요. 그 기타 앰프 무게가 장난이 아닌데, 그걸 짊어지고 오더라고요.


전: 테크니션이라면서 제자가 의자를 들고 오는 경우도 있어요.


오: 의자? 나는 아직도 나 혼자 드럼세트 옮기는데. (전원 웃음) 영조 형은 요즘에 건반 네 개씩 들고 다니잖아. (웃음)


원: 제가 하는 더블유(The W)라는 밴드에는 장비가 한 열 개쯤 있어요. 처음엔 제가 다 들고 다녔는데, 어느 날부터는 허리가 아프더라고. 안 되겠다 싶어서 학생 하나를 데려다가 같이 하자고 했어요. 저는 허리가 안 좋으니까 그 친구가 다 옮겨서 세팅까지 해줘요. 시간 당 만 원을 주겠다고 했어요. 일반 아르바이트보다 나은 거잖아요. 클럽 페이가 5만 원인데, 그 친구는 세 시간 일하니까 3만 원 가져가고 전 2만 원을 가져가요. 그러면 돼요. 테크니션 친구가 하는 일이 제가 하는 일보다 훨씬 힘든 일이니까.


한: 저도 드럼세트를 들고 다니다가 올해부터 테크니션 친구를 하나 구해서 같이 다니고 있어요. 공연을 보여주는 대가로 일을 시킨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돼요. 그 친구가 악기를 나르는 모습을 보면 너무 미안해요. 그래서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페이를 줄 수밖에 없지 않나요? 저는 돈을 덜 벌면 되니까, 그냥 돈을 주거든요.


원: 맞아. 우리가 덜 벌면 돼. 솔직히 말해서, 우리처럼 어느 정도 된 사람은 그 돈 5만 원을 받든, 그게 깎여서 2만 원이 되든 큰 데미지가 없어요. 그런데 그 악기를 옮겨주는 친구는 공연 보는 것도 한두 번이죠. 악기 날라주고 세 시간을 기다렸다가 또 가야 해요. 귀가할 때 타는 택시 비용이 만만치 않을 수도 있단 말이에요. 그러니깐 돈을 지급하는 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요. 근데 누구는 그걸 보고 관행이라고 해요. 그런데 그런 관행은 없어요. 제 위에 아무도 그렇게 안 했어요. 제자를 그렇게 대하는 연주자의 미래는 뻔해요. 20년 뒤에 그 제자들이 자신들을 밟고 올라설 때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을 거예요. 실력으로 올라서는 건 당연한 이치죠. 그런데 그게 존중이 따르는 것이냐, 짓밟히느냐에 차이가 있겠죠.


오: 진짜 무서운 말이다. (전용준, 한웅원 에게) 잘 부탁해. 괜찮아. 내가 뭐라고 안 그러잖아. (전원 웃음)




클럽에서 받는 연주료도 적기는 마찬가지인데요. 그럼에도 꾸준히 클럽 무대에 서고 계시죠.


오: 연주자가 무대에 오르는 데는 보통 세 가지 이유가 있어요. 1번, 연주에 대한 정당한 대가. 2번, 음악적인 재미. 충분히 가능해요. 돈이 없어도 할 수 있어요. 3번, 보람이나 의미. 제가 이걸 해서 뿌듯함을 느끼거나 사회에 보탬이 된다면 할 수 있죠. 이 셋 중에 하나예요.


그렇다면 재즈클럽에서 연주하는 페이는 무슨 의미일까요? 일단 1번인 정당한 대가는 아니에요. 우리나라 클럽 오너들은 돈을 못 벌고 있는 상황이에요. 그분들도 사명감을 가지고 힘겹게 운영하시는 분들이에요. 그러니 1번은 아니에요. 그럼 2번, 재미? 맞아요. 정말 재미있어요. 관객들도 재미있겠지만, 뮤지션에게도 재미가 있어요. 우리의 음악을 만들어가는 쾌감을 느끼는 공간이에요. 이걸로 우리나라 재즈를 버텨나간다는 3번의 의미도 있고요. 2번과 3번의 의미 때문에 말도 안 되는 금액에 우리는 클럽 무대에 서요. 20년 전에 5만 원인데, 아직도 5만 원이에요. 화폐 가치의 변화를 생각해보면 오히려 큰 폭으로 줄어든 거예요. 제 또래 연주자들은 이제 안 하는 사람도 많지만 영조 형과 저는 아직도 그 무대에 서요. 왜? 재미도 있고, 우리가 재즈 뮤지션으로서 재즈클럽을 외면하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요.


원: 그게 재즈 뮤지션으로서 살아 있다는 증거잖아.


오: 그렇죠. 미국에서 피터 번스타인을 만나 이야기했는데, 아직도 50달러 받는 스몰스 클럽 연주를 위해 직접 앰프를 싣고 택시를 타고 간대요. 택시비로 30달러를 지불하면서까지요. 테크니션 안 쓰고. (전원 웃음) 뉴욕 거기에서는 주차하기가 힘드니까, 카트로 끌고 택시에 싣고 간다는 거예요. 피터 번스타인이 스몰스에선 50달러를 받지만 제대로 된 공연장에선 5만 달러를 줘도 안 서는 사람이에요. 왜? 그 2번과 3번 때문에. 그런데 페스티벌은 2번이나 3번 같은 의미가 없어요. 그런데도 기획자들에게 재즈 뮤지션들은 클럽 페이 5만 원 수준만 맞춰주면 연주하는 존재라는 인식이 있는 거예요. 심각한 문제예요. 만약 우리에게 노동조합 같은 게 있다면, 이런 건 하지 말자고 얘기하고 싶어요.




유행하는 말 중에 재능기부라는 말이 있잖아요.


원: 저는 재능기부라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오: 제가 재능기부 한 번에 정리해드릴게요. (전원 웃음) 우선, 기부가 뭔가요? 기부란 거는 어떤 계층, 사람, 단체를 돕기 위해 재화 또는 능력을 대가 없이 주는 거예요. 재능 기부라는 건 돈이 아닌 재능을 주는 게 재능기부예요. 이제 예를 들어볼게요. 제가 만약 식사를 못하시는 노인분들을 위해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해볼게요. 그런 분들을 위해 식당에 천만 원을 주고 식사를 제공하거나, 식당 측에서 자신들의 음식을 제공하는 게 기부예요. 그런데 기부를 한다면서 누군가에게 가서 '이 분들께 밥을 제공해'라고 요구하면 그건 기부가 아니죠. 애초에 말도 안 되는 일이고요. 그걸 똑같이 뮤지션들에게 재능기부라는 말을 앞세워서 요구하는 거예요. '좋은 의도로 하는 거니까, 너희들이 연주를 해라'고 말하는 사람한테 '그럼 너는 뭘 하는데?'라고 말하면 이 일을 주관한다고 해요.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물론, 식당이 장사가 잘 돼서 주인이 무료로 제공한다고 하면 그건 자발적인 의지로 인한 기부예요. 하지만 남이 와서 강요를 하면 그게 어떻게 기부가 되나요? 그리고 제가 알기로 한국 재즈 뮤지션들 중에 저렇게 장사 잘 되는 수준으로 돈 잘 버는 사람 몇 명 없어요. 문화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싶으면 그걸 우리에게 강요할 게 아니라, 우리에게 정당한 대가를 주고 제공하게 해야 하는 거가 맞는 거죠.


원: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의의 강요 의해서 하는 건 기부가 아니죠.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들이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재즈계는 위기를 마주한 것 같아요.


한: 이제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재즈 뮤지션으로서 즐겁게 음악을 하고 보람을 느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가 된 것 같아요.


전: 예전에는 잼세션이 꽤 많았거든요. 말하자면, 저도 그걸로 데뷔를 한 셈이고요. 이제는 그런 자리도 많이 없어졌다고 해요. 그렇기에 어린 연주자들이 설 자리도 없지만, 하려고 하지도 않고요. 왜냐하면 재즈를 열심히 해도 먹고 살기 힘들고, 인기도 없는 게 사실이니까요.


원: 재즈가 위기를 맞았다는 건 심각한 문제예요. 단순히 재즈계만의 문제는 아니죠. 가령, 천 년 가까이 이어져 온 클래식 음악이 없어진다고 하면 그 위에서 새로운 걸 창조할 수 없어요. 마찬가지로 재즈가 없다면? 재즈는 지금 음악의 원류가 되는 거기 때문에 그 위에 쌓는 거예요. 가령, 스웨덴을 봐요. 세계의 음악에서 엄청난 지분을 차지하고 있고, 지금 케이팝 음악도 그곳 작곡가들이 써요. 거기에 대단한 실용음악과가 있나요? 아니에요. 거기에 있는 왕립음악학교에서 배출해낸 거예요. 기본이 존재해야 하는 거예요.


오: 음악만의 이야기도 아니에요. 인문학과 기초예술 같이 당장 취업에 도움이 안 되고, 돈이 안 되는 것에 대해서 등한시하는 시각과 정책에서 기인한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에요.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연주자들과 업계 종사자들이 취해야 할 자세는 어떤 걸까요?


원: 그 시작은 저 자신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그렇게 안 하다 보면, 주변인들도 안 할 거고, 그렇게 변화할 거라고 생각해요.


전: 웅원이 형과 제가 속한 세대가 움직여야 할 것 같아요.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 30대 연주자들이 전면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봐요. 공개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단체를 만든다거나요.


한: 많이 애매해진 상황인 게, 이제 씬에 데뷔하려는 사람들에겐 두려움이 있어요. 이런 일에 대해 공개적으로 발언이나 보이콧을 했을 때 얼마 되지도 않는 영역을 잃을까 두려워해요. 그래서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 빚어져요. 그렇기 때문에 방금 말한 단체가 필요한 거고요.


오: 세상이 변하려면 정치적인 접근과 운동적인 접근이 필요해요. 정치적인 건 뭣이냐 하면, 아까도 말한 조합이 필요해요.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협회 같은 게 아니라, 뮤지션들의 권리를 보장해줄 수 있는 단체 말이죠. 쉽지 않겠지만, 뮤지션들이 모두 모여서 그것들에 대한 한목소리를 내고 우리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정치적인 활동이 필요하단 거죠. 뮤지션들이 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게 정치적인 목적이 아닌 순수한 목적을 위해서 이끌어줄 사람도 필요하고요.


두 번째로는 운동이에요. 조금 전에 원영조 형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인 ‘나부터 바뀌는’ 게 필요해요. 그건 정말 중요해요. 이미 활동을 하고 있는 연주자들이 나서고, 이런 기획 기사를 통해 운동을 전파하는 거예요. 이런 기사들이 계속 나오고, 뮤지션들이 술자리에서 이런 논의들을 하면서 변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선배 연주자들은 자기부터 바뀔 것을 이야기하고 후배들에게도 앞으로 그러지 않아야 한다고 말해주는 것이 중요해요. 아까 말한 정치적인 접근과 내가 실천해서 조금씩 변화하는 운동이 동반되어야 변화할 수 있어요. 이런 과정을 거쳐야 오늘 이야기한 열정페이, 재능기부, 관행, 갑질 같은 것들을 모두 근절할 수 있을 겁니다.  




류희성 | 월간 재즈피플 기자

여러 매체에서 음악과 관련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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