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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 아이유
제목 스물다섯, 아이유 2017-05-29


스물다섯, 아이유


아이유. 스물다섯. 가수. 재미있는 일이다. 누군가에게는 아무런 가치판단 없이 소구되는 이 객관적 사실의 나열이 어떤 여성 가수에게는 그토록 오랫동안 깨지고 부딪쳐 얻어내야 했던 가치라는 것 말이다. 2008년 미니 앨범 [Lost And Found]로 데뷔해 올해로 9년 차,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대중가수이자 유명인으로서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산전수전공중전을 겪은 인물. 그리고 이제는 단지 그 모든 소란을 견딜 뿐만이 아닌 스스로의 무대와 삶까지 여유롭게 연출할 수 있게 된 한 사람의 여성 음악가. 이 모두가, 아이유다.  


곱씹을수록 어쩐지 동경과 연민이 엉망진창 뒤섞여 조금은 복잡한 마음으로 그의 네 번째 앨범 [Palette]를 들었다. 걱정도 팔자였다. 무슨 청승을 그렇게 떠냐는 듯, 여느 때와 다름없는 밝고 명랑한 아이유의 목소리가 '이건 비밀이야' 속삭이며 우리를 반긴다. 한 소절만 들어도 안다. 새 앨범의 첫 문을 여는 열쇠인 이 '비밀'이 지금껏 아이유가 애교 어린 표정으로 새끼손가락을 수줍게 내밀던 그런 유의 비밀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아이유는 이제 더 이상 삼단고음으로 '오빠가 좋은 걸' 소리치게 만드는 '오빠'나 '지금은 안 되는' 따라서 언젠가는 가능성이 있는 '너랑 나' 사이 오가는 비밀을 노래하지 않는다. 지금 아이유, 아니 스물다섯 이지은이 우리와 함께 나누고 싶어하는 비밀은 갖은 불합리와 불확실, 미세먼지를 견디며 살아내고 있는 우리의 현실과 한층 가까워진 곳에 위치한 것들이다.


전에 없이 가까운 서로 간의 이 거리감은 물오를 대로 오른 아이유의 작사 감각에 많은 부분 빚을 지고 있다. 지난 미니 앨범 [CHAT-SHIRE](2015)부터 본격적으로 앨범 전곡의 작사를 담당하게 된 그의 가사는 자신의 목소리와 입말이 가장 예쁘게 들릴 때를 아는 사람만이 써낼 수 있는 섬세함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앨범 정식 발매에 앞서 한 달여 일찍 공개된 노래 '밤편지'가 대표적이다. 큰 감정의 고조 없이 차분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십분 살린 어쿠스틱한 편곡 위에 사르르 녹아 나는 고운 노랫말과 아이유의 목소리는 노랫말 그대로 사랑한다는 말 대신 당신 창가에 띄운 반딧불의 반짝임이다. 별다른 수식과 꾸밈 없이도 곡의 심상과 진심을 그대로 털어놓는 재주가 놀랍다.


가사는 거들 뿐, 사실 앨범 [Palette]는 이외에도 수없이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꾸준히 호흡을 맞춰온 이종훈, 김제휘 등의 작곡가들은 물론 손성제, 선우정아, 심지어는 듀오 어떤날 출신의 기타리스트이자 영화음악감독 이병우까지 참여한 든든한 뱃심을 자랑하는 앨범에서 아이유는 당당하게 총감독의 역할을 자처하며 두려움 없이 모든 곡들 앞에 선다. 그의 거침 없는 진두지휘 아래 나란히 헤쳐 모인 트랙들은 하나같이 제 색 그대로 솔직하게 반짝인다. 요즘 유행이라는 힙합도, EDM도, 하다못해 화려한 피처링 군단의 집중 지원도 없지만 꼭꼭 눌러 채운 열 곡의 노래들은 곧 데뷔 10년 차를 맞이하는 대중가수의 노련함과 막 생의 가장 눈부신 구간을 지나고 있는 스물다섯 여자아이의 속 깊은 이야기 모두를 만나게 해 준다. [Palette]는 한 마디로 흠 잡을 데 없이 매끈하게 완성된 팝 앨범이자 가수 아이유와 인간 이지은의 결코 짧지 않았던 인정투쟁의 역사다.


인정투쟁이라니 뭐 그렇게까지 정색할 거 있느냐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가 지금과 같은 한결 편안한 표정을 짓기까지 얼마나 많은 길을 거쳐왔는지를 떠올려보면 좀처럼 쉽게 웃어넘기기가 힘들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성숙한 옷을 입고 데뷔곡 '미아'를 열창하던 열다섯 중학생에서 소속사 로엔의 기업가치를 쥐락펴락하는 큰손으로 성장하기까지, 아이유가 걸어온 길은 말 그대로 한국에서 어린 여성이 부당하게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사례를 투명하게 모은 교본과도 같았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볼까. 만만치 않은 기타 연주 실력에 맑은 목소리, 2집 [Last Fantasy]의 '너랑 나’가 거둔 공전의 히트로 본격적인 '국민 여동생' 자리에 올랐던 2012년, 문제는 SNS를 통해 발생했다. 늦은 새벽 수 십만 명의 팔로워가 딸린 아이유의 트위터 계정에 누가 봐도 개인적인 사진이 업로드되었다. 사진은 몇 분 지나지 않아 금세 삭제되었고 가수와 소속사는 실수였다고 공식입장을 밝혔지만 소문은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사진을 함께 찍은 주인공이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남성 아이돌 그룹의 멤버였고 사진의 분위기가 세간의 기준상 꽤나 야릇해 보였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인공적인 곳에서 가장 무해한 방식으로 아이유를 사랑, 이라 쓰고 소비하던 대중은 딱 그만큼의 온도로 그를 흘겨보기 시작했다. 3집 [Modern Times](2013)와 '분홍신', 싱글 '봄 사랑 벚꽃 말고'(2014)와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2014), 서태지와 함께 호흡을 맞춘 '소격동'(2014)까지 주목할만한 활동과 그에 따른 준수한 결과물이 연이어 발표되었지만 아이유를 언급하는 사람들의 입에서는 언제나 '영악함'이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았다. 보기보다 되바라진,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순진하지 않은 여자아이.


어떤 활동과 소식을 전해도 집요하고 끈질기게 달라붙던 이 시선에 아이유는 [CHAT-SHIR](2015)로 정면 승부를 던졌다. 처음으로 타이틀 곡의 작사를 맡게 된 그가 스스로 붙인 노래 제목은 '스물 셋'. 그의 나이였다. 다소 흥분된 퍼레이드 느낌이 나는 아이유 특유의 시그니처 사운드는 그대로였지만 가사가 상당했다. 여전히 사람들이 불러준 이름과 입혀준 옷에 둘러싸인 아이유는 노래 내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리에게 되묻는다. '난 영원히 아이로 남고 싶어요 / 아니, 아니 물기 있는 여자가 될래요 / 아 정했어요 난 죽은 듯이 살래요 / 아냐, 다 뒤집어 볼래 / 맞혀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사람들에게 아이유는 쉼 없이 다음 카드를 던진다. '얼굴만 보면 몰라 / 속마음과 다른 표정을 짓는 일 / 아주 간단하거든 / 어느 쪽이게? /사실은 나도 몰라 / 애초에 나는 단 한 줄의 /거짓말도 쓴 적이 없거든'. 수록곡 'zeze'와 모티브가 된 작품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그에 따른 소아성애 논란으로 소모되기엔 너무나 이야깃거리가 많은 아쉬운 앨범과 활동이었다.


다행인건 그 후 2년 뒤 발매된 새 앨범 [Palette]가 그 연장선이자 완성형의 앨범이라는 사실이다. 고진감래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세상과의 거리 두기와 자기 객관화를 보다 단단히 체득한 아이유는 이제 재능에 강단을 더한, 지금보다 미래가 좀 더 기대되는 젊은 음악가로 거듭났다. 컴백 이후 첫 무대를 꾸린 모 음악 방송에서 그는 빅뱅의 지드래곤이 피처링 한 타이틀곡 '팔레트'의 랩 파트를 이렇게 바꿔 불렀다. '지은아 뛰어야 돼 / 시간이 안 기다려 준대 / 치열하게 일하되 / 틈틈이 행복도 해야 돼 / 언제라고 좋기만 한 적이 있었나 / 씩씩하게 일어서 기지개 활짝 켜서 / 영원히 살고 싶은 나이 Now'. 자신과 자신의 지금을 긍정하는 매력 넘치는 이 스물다섯의 내일을 응원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김윤하 | 음악평론가

취향과 애정에 기반한 글쓰기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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