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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겟 아웃> 의미와 기발함, 그리고 불편함의 전복  
제목 [트렌드] <겟 아웃> 의미와 기발함, 그리고 불편함의 전복   2017-05-29


* 본문에는 아주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겟 아웃>이 개봉 전부터 연일 화제다. SNS상에서의 뜨거운 반응과 '로튼 토마토' 지수 99%(로튼 토마토는 온라인 영화 평가 사이트이며, 99%는 만점에 가깝다는 이야기다)가 겹치며 개봉 요청이 실제로 많았던 덕에 개봉하게 되었다는 과정은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여기에 작품을 둘러싼 많은 홍보와 소문이 겹치며 영화는 그야말로 하입(Hype)을, 그러니까 대중과 미디어의 큰 관심으로 높은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이 글은 개봉 전에 쓰는 글이지만, <겟 아웃>에 관한 관객의 반응은 대부분 좋으리라 생각한다. 결코 지금의 관심을 과대평가라고는 할 수 없을 만큼 작품은 화려하지 않아도 뛰어난 면모를 지니고 있고, 다양한 장르의 문법을 적재적소에 써가며 인상 깊은 전개를 선보인다. 특히 각 장르의 문법마다 그 문법에 충실한 화면과 연출까지 선보이기 때문에, 이것이 조던 필(Jordan Peele)의 데뷔작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그는 매끄러운 작품을 만들었다.


조던 필은 이미 작품 발표 이전 <겟 아웃>의 감독이 아닌, 코미디언으로서의 커리어로 명성을 얻었다. 특히 <키 앤 필 쇼>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재임 시절, 백악관 만찬 중 대통령의 분노 통역사로 연기했던 키건 마이클 키(Keagan-Michael Key)와 조던 필이 함께 진행한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탄탄한 커리어를 지니고 있던 조던 필이 자신의 각본으로 감독 데뷔를 한다고 했을 때, 그 자체로도 미국에서는 많은 이슈가 되었다. 그는 결국 미국에서 저예산 영화로 크게 버는 데 성공한 첫 번째 흑인 작가-감독이 되었다. 작품을 보며 조던 필이 영화라는 '매체'에도 얼마나 영민한 감각을 지니고 있는지, 그리고 영화라는 '오락'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조던 필은 이 작품을 '코미디-호러'라고 칭했으며, 또한 앞으로 네 개의 '소셜 스릴러'를 더 제작할 계획이라고 한다. 몇 가지 키워드나 인터뷰만을 보면, 아직 발표한 것은 이 작품 하나뿐이지만, 조던 필의 역량이 어느 정도까지인지 어느 정도는 엿볼 수 있다. 코미디언 커리어를 통해 이미 증명한 능력도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감독 조던 필에 관한 이야기를 잠깐 했지만, 그가 선보였던 코미디 중 인종차별에 관한 이야기는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첫 작품 <겟 아웃> 역시 인종차별에 관한 뒤틀린 이야기다. 영화 내용을 모두 얘기할 수는 없지만, 이미 소개된 정도만 이야기를 꺼내자면 주인공은 흑인이며, 백인 여자친구 집에 가서 인사를 한다. 이것이 이야기의 시작이자,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 발단이다. 그리고 집에 찾아간 이후 백인 가족이 가진 굉장히 이상한 실체가 드러나고 주인공은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영화는 '코미디'라는 단어가 붙는 만큼 이따금 유머를 선보이는 것을 까먹지 않으며, 그러면서도 시종일관 긴장을 쌓는다. 하지만 크게 피로한 느낌은 들지 않을 것이다. 산뜻한(?) 결말이 극의 후반부에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 중반부는 끊임없이 긴장을 쌓고, 묘한 분위기를 끊임없이 조성하며 불편함을 만든다. 이 구간은 영화를 좀 더 극에 몰두하게 만드는 구간이며, 굳이 말하자면 오락 영화의 면모보다는 작품성을 드러내는 구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물론 그러한 경계를 나누는 것이 나쁘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극에 몰입을 유도하면서 전반적인 완성도를 높이는 구간이다. 이 부분이 불편한 것은 극 중 인물들 간의 긴장이나 독특한 분위기의 배경이 이유인 것도 있지만, 결국 인종차별이라는 불편함을 의도적으로 더욱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인종차별은 불편한 것이지만, 동시에 여전히 현실 사회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편함은 극 전반을 끌고 나가는 기제이며, 그 불편함을 후반부에 들어설수록 잘 이용한다.


첫째로, 백인이 흑인을 조종하는 방식 그 자체다. 최면, 혹은 세뇌라는 방식을 골상학이나 사회진화론과 같은 유사과학의 존재까지 끌고 간다 해도 그것을 무조건 비약이라고 하긴 힘들 것이다. 백인이 흑인을 조종한다는 전제, 그리고 그 방식은 지금까지 인류가 만들어 왔던 인종차별의 방식과 꽤 닮았다. 두 번째로, 백인이 흑인을 원하는 방식이 타자화된 몸으로서의 흑인을 이야기하는 좋은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백인이 과거 흑인을 볼 때부터 흑인은 신기한, 혹은 야만의 존재였다. 동시에 거대한 성기나 엉덩이를 동경하는 등 끊임없이 흑인의 몸은 파편화되고 분절되었다. 이렇게 타자화된 몸으로, 신체 일부로 누군가를 대하는 것은 지금도 여전히 많은 미디어나 문화가 흑인이나 여성을 소비하는 방식이다. 예쁜 눈을 가졌다고 하여 그 사람이 눈 그 자체는 아니며, 매력적인 허벅지를 가졌다고 하여 그 사람이 허벅지 그 자체가 아니듯 말이다.


세 번째로, 극 후반 전개 방식이다. 결말을 이야기해서 미안하지만, 영화는 흑인이 백인을 살해하고 끝난다. 호러 무비 스타일로 급작스럽게 극단으로 치닫는 전개지만, 앞서 만들어 놓았던 장치와 이야기 덕분에 그러한 구간도 좋은 설득력을 지닌다. 심지어 굉장히 깔끔하고(?) 임팩트 있는 결말이라는 느낌마저 든다. 백인 사회를 탈출하여 다시 자신의 커뮤니티로 돌아간다는 내용은 인상 깊은 결말인데, 그 자체가 상징하는 바는 무엇일지 여러 차례 생각해볼 수 있다. '탈출'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백인이 흑인을 살해한다는 것도 상징적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살해한다'는 행위 그 자체도 상징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의 마지막 관문은 이렇게 나름대로 근사한, 화려하면서도 자극적인 장치를 통해 보는 이의 불편하고 무거운 마음을 '걱정하지 마, 이건 영화야'라고 말하는 듯 달래준다.


작품은 미국의 주류 블랙 버디 무비가 가질 법한 유머 코드를 잃지 않으면서도 할 말은 다 한다. 나는 그래서 이 작품이 백인의 비중을 크게 지닐지언정 블랙 필름이라고 생각한다. 미국 사회에 인종의 벽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그 인종의 벽이 계급이 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인지했다. 하지만 유색인의 관점에서 황인이 등장하는 모습은 크게 반갑지는 않았으며, 그들에게 황인은 어떤 존재일까 하는 다소 찝찝한 고민을 안게 되었다. 어쩌면 황인은 백인의 모습을 좇으면서 그들에게 이용당하는 존재가 아닐까 싶다. 영화는 은근히 많은 코드를 지니고 있지만 꽤나 직선적인 전개를 지니고 있다. 작품에 심어 놓은 코드를 찾는 것은 관객 각자의 몫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이며 얼마나 편안한 마음으로 재미있게 볼 수 있을지는 조금 의문이 든다. <겟 아웃>은 그래서 매력적이다. 매끈하게 잘 만들어졌고, 그렇기에 작품 자체로 할 수 있는 이야기도 많다. 그러면서도 유쾌함과 의미를 잃지 않았으니 많은 이들의 호평을 얻을 수밖에.  




박준우 | 음악평론가

프리랜서로서 힙합엘이라는 온라인 매거진을

운영하고 여러 매체에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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