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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산이의 기만은 어디를 향하는가  
제목 [트렌드] 산이의 기만은 어디를 향하는가   2017-03-16


산이의 기만은 어디를 향하는가


씨잼(C Jamm)은 <쇼미더머니 5>에서 “불만만 많은 래퍼들 랩이나 잘하라”고 외쳤다. 래퍼는 랩을 하는 사람이기에 언뜻 쉽게 동의할 수 있는 전제로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기술적 역량 이외의 항목을 배제하는 위험한 경향이 있다. 래퍼에게 랩을 잘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항목 중 하나다. 다만, 힙합은 단지 기술적 우위만을 논하는 장이 아닌 음악의 한 종류다. 다시 말해 힙합을 이야기할 때도 음악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어쨌든 씨잼이 제시한 기준은 그가 선보인 화려한 랩 퍼포먼스와 함께 대중들을 어느 정도 설득했다. 아이러니한 건 그의 발언이 탈정치적인 기술이라는 아젠다가 곧 래퍼들의 실력을 판가름하는 정치적인 척도임을 표면적으로 공표했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5년간 한국힙합 씬을 뒤흔든 <쇼미더머니>의 거대한 중심축이기도 하다. 이렇듯 옳고 그른지를 떠나 인간은 자신이 어떤 입장을 취하든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위치에 놓인다.


지난 1월, 새 앨범 [Season of Suffering (고난의 시기)]을 발표한 산이는 이 문제에서 늘 자유롭지 못했다. 이번 앨범만이 아니다. 그의 음악적 노선은 지나온 시간 내내 끊임없이 논쟁거리였다. 오버클래스(Overclass)와 JYP 엔터테인먼트(JYP Entertainment)를 거쳐 2013년에는 브랜뉴뮤직(Brand New Music)으로 적을 옮겨 점차 대중적인 노선을 지향했었다. 소위 랩발라드라 불리는 ‘아는사람 얘기’는 일종의 반환점이었고, 각각 EP와 첫 정규작의 타이틀곡이었던 ‘이별식탁’과 ‘Me You’도 노선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데뷔 초창기, ‘랩 지니어스’로 불리며 많은 힙합 팬의 신뢰를 얻었던 터라 이 과정에서 ‘배신자’ ‘변절자’ 타이틀을 얻게 된다.


갑론을박이 벌어졌던 건 산이의 태도 때문이었다. MBC 다큐 <랩스타의 탄생>에서 산이는 힙합과 가요 둘 다 추구하고 싶을 뿐이라고 항변했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길 원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쇼미더머니>에 심사위원으로 출연하며 대외적인 이미지를 힙합적으로 가져가면서도 음원 차트에서 크게 성공을 거둔 노래들은 모두 앞서 언급한 가요적 전형을 답습하는 랩발라드곡이었다는 점은 다분히 이율배반적이다. 그만큼 힙합 씬이라는 체계 내에서 자신을 합리적으로 보이게끔 입장 표명을 해야 했다. 그때마다 산이가 선택한 논리는 오직 자신의 성향과 방향이었다. 그러한 탈정치적 요소를 무기로 삼았지만, 장르적 쾌감을 중요시하는 힙합 팬들은 크게 설득되지 않았다.


산이의 개인적인 명분은 [양치기 소년]의 마지막 트랙 ‘성공하고 싶었어’에서 더욱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유년 시절의 서사를 끌어와 자신이 성공하고 싶었던 이유로 내세운다. [Season of Suffering (고난의 시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정신적 불안 상태에서 오는 심리적 압박감을 묘사하고(‘카운셀러’), 자신의 성공이 타인에게는 쉬워 보이고 싫어 보일 거라며 자조한다(‘Lost In Myself'). 또, 음악 안에서는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고 싶은 거니까 분위기 깨지 말라고 한다('I Am Me' 'Ready-Made'). 하지만 누구도 산이가 지금까지의 음악으로 성공했다는 것 자체를 부정하진 않았다. 상업적인 성공을 거뒀다는 결과 자체가 아닌 어떤 음악으로 그 성공을 끌어냈는지, 즉 수단과 과정을 문제 삼았을 뿐이다.


더 나아가 'I Can Go All Day'에서는 일관된 소신을 지켜왔다고 규정한 JJK와 이센스(E-Sens)를 제외한 나머지 아티스트들은 조용히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로써 산이는 힙합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상업적 성과와 음악적 성취를 이루고자 했던 이들을 어차피 돈을 원하는 건 다 똑같다며 열화시킨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에 입각한 정당화와 일반화다. 만약 그가 자신의 탈정치성을 일리 있게 입증하고 싶었다면 힙합 씬이라는 곳과 자신을 아예 분리했어야 했다. 아니면 그 자신만이 아니라 타인까지 설득할 수 있는 좀 더 튼튼하고 명백한 근거와 주장을 제시했어야 했다. 지금의 산이는 그러지 못하고 상대적으로 방어선이 헐거워 보이는 모순적인 위치에 놓이게 됐다.




[Season of Suffering (고난의 시기)]은 힙합 씬에 국한된 이야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산이는 지난해 발표한 '나쁜X (BAD YEAR)'를 통해 씬 밖의 세계로부터 받았던 여성혐오적 혐의에 대한 대답을 내놓기도 했다. 'I Am Me'에는 “여혐 남혐 일베 메갈 여당 야당”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이윽고 시끄럽다는 말과 함께 자신을 둘러싼 모든 논쟁을 불식시키고자 한다. 시끌벅적하다고 여긴 이들을 잠재우는 말은 이번에도 ‘난 나야’다. 남 눈치 보느라 시간 낭비하는 게 싫고, 아무리 왈가왈부해도 모두가 제멋대로 판단하려 들기에 자신은 변하지 않을 거라고 한다. 정확히 힙합 씬을 향해 내세웠던 주장과 결이 일치한다.


'나쁜X (BAD YEAR)‘은 대통령에게 공공적 책임을 묻는 지금의 시국에서 멸칭으로 쓰이는 ‘년’이라는 성별적 요소를 부각해 만들어졌기에 여성비하적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장애인을 비하하는 ‘병신’이란 어휘도 쓰였다). 특히나 젠더적 이슈에 민감한 의제로 떠오른 현재 시점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이러한 상황적 맥락을 파악하지 못한 채로 자신이 자신다울 때 가장 아름답고, 논쟁을 불필요하다며 셧아웃시키려고만 드는 건 사회적 문제를 축소하고 가리는 기계적 중립에 지나지 않는다. 꼭 민주주의 같은 큰 규모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이면서도 사회적 합의점을 도출하기 위한 사람들의 의견을 무력화시키고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말하는 건 어쨌든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보일만 한 고무적인 태도는 아니다. 오히려 자신에게 씌운 혐의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보다 더 좋지 못하다. 결국, 산이는 힙합 씬을 향해서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탈정치적 성향을 내세운 바람에 오히려 정치적으로 지탄을 받는 대상이 됐다.


그 어떤 누구에게도 산이를 힐난할 수 있는 권리는 없다. 반대로 산이에게는 어떤 말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 와중에도 기억해야 할 건 있다. ‘표현의 자유’라는 워딩이 본질 없이 둥둥 떠다니는 시대지만, 그가 뱉은 말에 대한 개인의 책임은 있다. 그 책임을 물을지 아닐지는 힙합 팬을 포함한 대중들, 그리고 산이 자신이 결정하게 될 것이다. 이번 앨범에 어느 정도의 성공을 기대했을진 모르겠으나, [Season of Suffering (고난의 시기)]가 큰 반향을 모으지 못한 건 이에 대한 일차적인 반응이다. 그것을 어떤 식으로 용인할지는 이제 산이에게 달렸다. 다만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보았을 때 그는 여전히 변하지 않을 것을 천명하지 않을까. 그래도 크게 달라질 건 없다. 다만, 대중들의 반응은 더 냉담해질지도 모른다.  




김정원 | 힙합엘이 에디터

<힙합엘이> <트웬티스 타임라인> <쇼프> <음악취향 y>

에디터/ 컨트리뷰터. 음악에 관해 글과 인터뷰를 기획하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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