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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선의 아무말] 별 셋과 별 넷이 무성한 별 밭에서 길을 잃다  
제목 [김학선의 아무말] 별 셋과 별 넷이 무성한 별 밭에서 길을 잃다   2017-02-10


별 셋과 별 넷이 무성한 별 밭에서 길을 잃다


박평식. 한국의 영화평론가다. 1988년 <스포츠서울> 신춘문예에서 영화평론으로 등단했다 하니 거의 30년 경력을 갖고 있는 중견 평론가다. 하지만 그의 이름이 유명해진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정성일이나 허문영처럼 장문의 비평으로 이름을 알린 것도 아니다. 오직 <씨네21>의 별점과 20자평으로 박평식이란 이름은 영화애호가를 넘어 일반 대중에게까지 알려졌다. 반쯤은 농담으로 반쯤은 진담으로 사람들은 박평식이란 이름을 꺼내 놓는다.


별점과 20자평을 내는 영화평론가 가운데 박평식만이 유명해진 건 전적으로 그의 짠 별점 때문이다. 그에건 소금왕, 소금쟁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닌다. 모두가 별 다섯 혹은 별 넷 반을 주며 명작이라 극찬할 때도 그는 쉽게 별 넷을 넘지 않는다. 그래서 그에게 만점은 별 네 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영화 커뮤니티에선 그의 별점에 대한 논의가 오가기도 하고, 영화감독 조원희는 아예 <한겨레> 지면을 빌려 그의 별점에 대해 글을 쓴 적도 있다.


그의 짠 별점만큼이나 중요한 건 기준이 매우 명확하다는 것이다. 기준을 주관으로 바꿔 써도 큰 차이는 없다. 별점이 짠 만큼 못 만든 영화에 대한 그의 시선은 가차 없다. 별 두 개 이하를 주는 건 드문 일이 아니고 가끔은 별 반 개를 던질 때도 있다. 그런 확고한 주관 아래서 드물게 받는 별 네 개짜리 영화는 더 빛난다. 많은 이들이 별 셋 반을 평작 정도로 오해하는 시대에 그가 내미는 별 셋 반짜리 영화는 더 가치 있게 된다. 박평식이란 이름 옆에 ★★★☆이 붙어 있을 때 영화애호가들은 그의 짠 별점을 믿고 극장에 간다.


월간 <재즈피플> 1월호 앨범 리뷰를 본다. 총 16장의 재즈 앨범이 소개됐다. 16장의 앨범 가운데 별 세 개 미만을 받은 앨범은 딱 2장뿐이다. 별 셋 반 이상을 받은 앨범이 10장, 절반을 훌쩍 넘는다. 이웃 재즈잡지인 <엠엠재즈> 역시 별점으로 표기하지 않을 뿐이지 결과로 보면 많은 앨범에 별 셋 반 이상의 후한 평가가 내려진다. 물론 이는 재즈뿐만이 아니다. 대중음악을 다루는 잡지나 웹진을 봐도 가장 흔한 게 별 셋에서 별 넷 사이다. 따져보면 별 넷, 즉 80점 이상은 굉장히 높은 점수지만 무색하게도 어디에서나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당장 <재즈피플> 1월호에만 16장 가운데 5장이 80점 이상을 받았다. 지금 우리는 이렇게 훌륭한 음악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일까.


물론 창작자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을 별점이나 20자평으로 쉽게 얘기하듯 하는 행위에 기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필요악일지 모른다. 더 이상 긴 글을 읽지 않는 시대에 대중의 눈길을 끌기 위한 자극적인 수단일 수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재즈피플>을 비롯한 대부분의 음악매체는 '독자'를 대상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음악가에겐 상처가 될 수 있겠지만 못 들어본 음악에 관심을 갖고 새 앨범을 살 독자에겐 더 변별력 있는 평가가 필요하다. 박평식의 별 넷과 <재즈피플>의 별 넷이 주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별 셋반 사이에 있는 별 넷과 별 둘 사이에 있는 별 넷은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다.


앞서 언급한 <한겨레> 칼럼에서 영화감독 조원희는 '당하는' 입장에서도 박평식에게 호의적인 평가를 내린다. 인상적인 구절 하나를 옮겨본다. “박평식이 놀라운 건 많은 평론가들이나 기자들이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서 만든다는 이유로 암묵적인 보너스 점수를 주는 독립영화나 저예산 영화에도 매서운 칼날을 휘두른다는 점이다.” 이 지적에서 나 역시도 온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는 그동안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별 셋과 별 넷 사이의 숲에서 헤매고 있던 게 아닐까. 이런저런 눈치와 사정과 배려의 속사정이 펼쳐지는 동안 평단은 변별력 없는 별 밭에 빠지게 된 게 아닐까. 별 넷의 앨범들을 보고도 별다른 호기심이 일지 않는 지금, 우리에겐 더 많은 박평식이 필요하다.  


김학선 | 대중음악평론가

음악을 듣는 사람.

음악을 모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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