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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기타리스트 제프 벡  
제목 [기획] 기타리스트 제프 벡   2017-01-09


영원히 멈추지 않는 혁신의 아이콘

기타리스트 제프 벡


황홀하다. 감상의 변은 의외로 단순하다. 제프 벡의 2016년 작품 [Loud Hailer]는 쉽게 잊히지 않을 감흥을 전달한다. 거장의 앨범에 클리셰처럼 따라붙는 ‘기계적인 찬사’가 아니다. 록 밴드 본즈(Bones)의 두 멤버 로시 본즈(Rosie Bones, 보컬)과 카르멘 반덴버그(Carmen Vandenberg, 기타)가 힘을 보탠 작품은 2016년을 기념할 만한 하드록/블루스록 앨범으로 새겨졌다. ‘The Revolution Will Be Televised’ ‘Live In The Dark’ ‘Scared For The Children’ 등 수록곡들이 증거다. 적절히 비장하고, 적절히 마음을 울린다. 서두르지 않고 잔잔하게 적신다. 그의 솔로는 여전히 간결하고 핵심을 찌른다. 옹골찬 음률이 고스란히 보존된 [Loud Hailer]는 [Jeff](2003), [Emotion & Commotion](2010)의 음악을 멋지게 배반하는 앨범이 되었다.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이 72세 노인의 기타 안에는 아직도 다 수색되지 않은 보물창고가 있는 것만 같다.




제프 벡이라는 역사


이미 그에겐 ‘제프 벡’이라 기록된 역사가 있다. 다른 기타리스트들이 테크닉에 집착하던 순간, 제프 벡은 장르를 가로질렀고 초월했으며, 새 시대와 적극적으로 화합하며 믿기지 않는 실험을 계속했다. 그 행보는 그야말로 '기타리스트계의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라 할 만하다. 끝없는 방랑. 그의 일대기를 짧게 요약하면 이렇다. 다른 슈퍼스타 기타리스트들 중 상당수가 성공에 도취되어 초창기의 생기를 놓친 반면, 제프 벡은 꾸준히 나아갔다. 수많은 평론가와 기타리스트들이 그의 연주 실력에만 감탄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평가하는 것은 나이를 먹고 관록이 붙을수록 ‘안주하지 않는 그의 태도’다. 그리고 그 작품들의 완성도다. ‘혁신’이라는 에너지를 바탕으로 그는 데뷔 후 내내 왕좌를 내놓지 않고 있다. 1964년 데뷔했으니, 무려 50년 이상 수성하고 있는 셈이다.


주지하다시피, 제프 벡이 처음 대중들에게 알려진 건 록 그룹 야드버즈(The Yardbirds) 시절부터다.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지미 페이지(Jimmy Page) 등 거장 기타리스트들이 거쳐 갔던 밴드에서 제프 벡은 특유의 주법을 선보이며 존재감을 확인시킨다. ‘I’m Not Talking’ ‘I Ain't Done Wrong’ 등의 곡은 제프 벡의 기타가 시동 걸린 곳을 정확히 짚어주고 있다. 정제되진 않았지만 신경질적이면서도 공격적인 톤은 60년대 하드록 미학의 한 경지를 선사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야드버즈 시절은 길지 않았고 그는 지미 페이지에게 밴드를 넘긴 채 팀을 떠난다. 이 시기 함장 시드 바렛(Syd Barrett)을 상실한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가 공석을 채우기 위해 그에게 가입을 권유하기도 한다. 하지만, 제프는 그 제안을 거절했고, 그 자리는 데이비드 길모어(David Gilmour)의 차지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양자 모두에게 이익이 된 선택이었다. 대신 제프 벡은 자신의 밴드 제프 벡 그룹(The Jeff Beck Group)을 결성한다. 제프 벡(기타), 로드 스튜어트(Rod Stewart, 보컬), 로니 우드(Ronnie Wood, 베이스), 미키 월러(Micky Waller, 드럼), 니키 홉킨스(Nicky Hopkins, 키보드)의 라인업(2집 때는 드러머가 토니 뉴먼(Tony Newman)으로 교체됨)으로 [Truth](1968), [Beck-Ola](1969)라는 블루스록/하드록의 도서관에 안치될 두 장의 명작을 쏘아 올린다. ‘Shape of Things’(야드버즈 시절의 바로 그 곡), ‘Blues Deluxe’ ‘All Shook Up’에서 그는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연주를 들려주었다.


1류 밴드의 숙명처럼 제프 벡 그룹 1기는 해체한다. 그러나 집념을 버리지 않은 제프 벡은 자신의 그룹을 재건한다. 멤버는 그를 제외하면 바비 텐치(Bobby Tench, 보컬), 맥스 미들턴(Max Middleton, 키보드), 클라이브 차먼(Clive Chaman, 베이스), 코지 파웰(Cozy Powell, 드럼)로 이루어졌다. 제프 벡 그룹 2기의 음악은 1기의 음악과는 달랐다. 소울 창법으로 무장한 바비 텐치는 앨범의 색채를 유니크하게 물들였으며 맥스 미들턴의 물 흐르는 듯한 키보드 연주는 앨범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제프 벡 그룹 2기는 [Rough And Ready](1971), [Jeff Beck Group](1972)을 남기고 해산했다. 앞으로의 움직임을 예고한 시기였다. 솔로 활동을 하기 전 카마인 어피스(Carmine Appice, 드럼), 팀 보거트(Tim Bogert, 베이스)와 조직한 슈퍼 트리오 벡, 보거트 앤드 어피스(Beck, Bogert & Appice)는 하드록/블루스록 시기를 잠정적으로 마감하는 명연 중의 명연 [Beck, Bogert & Appice](1973)와 라이브 앨범 한 장을 팬들의 뇌리에 새겼다.




더 자유롭게, 더 변화무쌍하게


제프 벡의 기타는 더 자유로워졌다. 더 변화무쌍해졌다. 그가 애정을 쏟아부었던 재즈의 기운은 더 강해졌고, 특정한 장르에 감금되지 않으려는 의지도 강해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의 최고작으로 손꼽는 [Blow by Blow](1975)가 탄생한 시기였다. 비틀스(The Beatles)와 작업했던 조지 마틴(George Martin)이 프로듀서를 맡았고 제프 벡 그룹 시절의 동료, 맥스 미들턴(키보드)과 필 첸(Phil Chen, 베이스), 리처드 베일리(Richard Bailey, 드럼)가 연주자로 손을 잡았다. 재즈의 터치와 록의 터치가 만난 명화였다. 최초도 아니었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제프 벡만이 할 수 있었던 결합이었고, 제프 벡이기에 할 수 있었던 연주였다. 이후 화려했던 ‘재즈 퓨전 시기’가 열렸다. 또 하나의 수작 [Wired](1976), 여전히 탄탄한 사운드를 뽐내는 [There & Back](1980)이 전부 이 기간에 빛을 보게 된다. 음악적 동반자 얀 하머(Jan Hammer, 키보드)와의 협연 [Jeff Beck With The Jan Hammer Group Live](1977)는 필히 챙겨야 할 실황 앨범.


1980년대는 많은 음악인들이 주류를 강타하고 있던 팝 음악의 흐름을 자신의 구역 안으로 끌어들인 시기였다. 핑크 플로이드가 그랬고, 제프 벡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지미 홀(Jimmy Hall), 옛 동료 로드 스튜어트, 카렌 로렌스(Karen Lawrence) 등을 보컬리스트로 기용한 앨범 [Flash](1985)는 그가 발표했던 앨범 중 가장 노골적으로 상업성을 부각한 앨범이었다. 허리를 관통하는 팝록/AOR(성인 지향의 록 음악)은 취향을 타지만, 커티스 메이필드(Curtis Mayfield)의 고전을 리메이크한 ‘People Get Ready’만큼은 귀를 잡아당기는 곡이었다. 그렇게 시류를 포착한 후 그의 기타는 이곳저곳으로 날아다니기 시작한다. [Jeff Beck's Guitar Shop](1989)에서는 테리 보지오(Terry Bozzio, 드럼), 토니 하이마스(Tony Hymas, 키보드)와 함께 블루스, 헤비록, 재즈의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다. 그때까지 여정을 집대성한다는 의미에서 이 앨범은 중요하다. [Frankie’s House](1992)로 사운드트랙을 시도해보더니 [Crazy Legs](1993)에선 서던록이라는 카드를 들고 나왔다.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변혁기.


당연히 여기서 머뭇거릴 제프 벡이 아니었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을 변신. [Who Else!](1999)와 [You Had It Coming](2001)을 통해 그는 일렉트로니카에 경도된 사운드를 주조해냈다. 파격이었다. 도전이었다. 미니멀한 어프로치. 군더더기를 배제한 완전무결함. 그래미를 수상한 건 부차적인 이야기에 불과했다. 일련의 앨범들은 제프 벡이 시대를 잘 읽고 있다는 걸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고집 센 뒷방 늙은이가 아니라, 항상 틈새를 열어두고 있는 진보적인 기타리스트라는 걸 입증한 사건이었다. 이후에도 그는 [Jeff](2003)로 무드를 연결시켰고, 다시 물살을 튼 [Emotion & Commotion](2010)에선 팝록/블루스록의 전형을 마름질했다. 정규작 인터벌도 6년에서 7년. 급할 것이 없었다. 모든 음악을 횡단했고, 탐사해 보았기 때문이었다. 팬들 역시 여유롭게 그의 다음 행마를 기다렸다. 그 기다림은 [Loud  Hailer]로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




기타의 마에스트로, 내한하다


‘기타의 마에스트로’ 제프 벡이 세 번째 내한을 목전에 두고 있다. 요즘의 세트리스트를 보면 [Lou Hailer]의 수록곡들이 중핵을 이루는 가운데 ‘Cause We’ve Ended As Lovers’ ‘Freeway Jam’ 등 검증된 명곡들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이번 공연도 그와 비슷한 포맷으로 열리리라 생각한다. 때문에 그의 내한을 본 사람에게도, 그를 처음 보게 되는 사람에게도 짜릿한 공연이 되리라 믿는다. 제프 벡의 이번 내한은 솔로 활동 50주년을 기념하는 투어의 일환이라고 하며, 그는 서울 공연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등에서 일정을 이어간다고 한다. 날짜와 장소는 2017년 1월 22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 두근두근 설렌다. 누군가의 음악을 떠올리며 설렐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흐뭇한 일인가.  




제프 벡 필청 앨범


 

[Truth]

Epic / 1968

기타리스트 제프 벡이 자신의 이름을 전면에 내건 제프 벡 그룹의 첫 번째 결실. 세상 무서울 것 없던 시절의 로드 스튜어트와 당대 최정상급의 연주자 로니 우드, 미키 월러가 제프 벡과 합을 맞췄다. 크림[Cream],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Jimi Hendrix Experience]의 작품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하드록/블루스록의 걸작 앨범. 지금 들어도 녹슬지 않은 헤비 리프와 치밀한 연주가 앨범의 격을 격상시키고 있다. 추천곡은 ‘Shape Of Things’ ‘Let Me Love You’ ‘Beck’s Bolero’ ‘I Ain’t Superstitious’. 애니멀스(The Animals)와 일했던 미키 모스트(Mickey Most)가 앨범의 프로듀싱을 담당했다.





[Blow By Blow]

Epic / 1975

기타 인스트루멘틀의 교과서. 숱한 기타리스트들에게 영감과 좌절을 동시에 안긴 바로 그 작품. 제프 벡의 관심사가 재즈와 록의 교배에 있었음을 고백하는 앨범이다. 그뿐인가 ‘You Know What I Mean’에서 드러나는 훵크도 있고, 블루스라는 구름은 전편을 부드럽게 감싼다. 무엇보다 곡들이 기막히다. 어떤 곡을 꼽아도 좋다. 토크박스를 절묘하게 이용한 ‘She’s a Woman’, 블렌딩의 1인자임을 선포하는 듯한 ‘Air Blower’, 숭고한 마지막 페이지 ‘Diamond Dust’ 등 쉬어갈 구간이 없다. 국내 팬들은 절절함의 극치인 ‘Cause We’ve Ended As Lovers’를 잊을 수 없다.





[Wired]

Epic / 1976

만일 [Blow By Blow]가 없었다면 제프 벡의 커리어 베스트는 [Wired]였을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연주의 퀄리티에 있어서만큼 [Wired]는 한 봉우리를 형성한다. 제프 벡의 ‘퓨전 실험’은 맥스 미들턴, 얀 하머, 나라다 마이클 월든(Narada Michael Walden, 드럼)과 더불어 또 한 번 만개한다. 서정과 낭만의 시 ‘Led Boots’, 쫄깃한 그루브의 향연 ‘Come Dancing’, 찰스 밍거스(Charles Mingus)의 곡 ‘Pork Pie Hat’, 쿨하고 날렵한 연주의 모범을 제시하는 ‘Play with Me’ 등 골고루 호평받았다. 허나 작품의 수록곡 중 단 한 곡도 직접 쓰지 않았다는 점에서 조금은 마이너스 요소도 있다.





[You Had It Coming]

Epic / 2001

전작 [Who Else!]에서 살포시 손에 쥐여줬던 일렉트로니카를 본격적으로 확장한 앨범. 당시 내 주변 제프 벡 팬들조차 충격으로 어안이 벙벙했다고 한다. 프로그래밍된 드럼 사운드, 노래라기보다는 교성에 가까운 보컬, 갑작스레 전경을 바꿔버리는 느릿한 슬라이드 기타와 조응하는 댄스 비트. 이래저래 숨겨놓았던 욕망을 대폭 표출한 앨범 같지만 제프 벡은 제프 벡. 불필요한 지점을 찾기 힘들다. 절제와 중용이 뭔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작품. 저 보수적인 매체 <롤링 스톤>은 이 앨범에 60점을 주며 “마치 1990년대로부터 낙오한 케미컬 브라더스(Chemical Brothers) 같다”는 혹평을 퍼붓기도 했다.





[Loud Hailer]

ATCO / 2016

블루스록/하드록에서 출발한 제프 벡의 긴 여로는 처음으로 돌아간다. 물론 초창기 했던 음악과 결은 살짝 다르지만 말이다. 한동안 강렬한 음악에 애착이 없는 듯 싶던 이 은자는 본즈의 멤버들과 눅진한 소울 필을 안고 록을 향해 돌진한다. 70대라는 물리적인 나이는 록에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려는 듯하다. 앨범 제목처럼 최근 그가 냈던 몇 장 중에선 가장 ‘시끄러운 외침’을 담고 있다. 앨범은 제프 벡은 살아있다는 걸, 그가 현재진행형이라는 걸, 결코 ‘죽어버린 전설’ 따위가 아니라는 걸 강하게 어필한다.  




제프 벡 인터뷰


인터뷰를 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올해 발표한 음반 [Loud Hailer]에선 멤버가 대거 바뀐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새 멤버들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주시죠.


런던 출신의 맹렬한 두 여성, 보컬리스트 로지 본지와 기타리스트 카르멘 반덴버그를 영입했습니다. 카르멘을 만난 건 작년 퀸(Queen)의 드러머 로저 테일러(Roger Taylor)의 생일 파티였어요. 결국 함께 작업할 기회를 갖게 되었죠.




로지 본지와 카르멘 반덴버그는 록 밴드 본즈의 멤버들입니다. 그들의 음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요.


카르멘이 초대해서 그들의 공연을 본 적이 있어요. 난 완전 넋이 나갔죠. 독창성 있는 엄청난 사운드, 묵직한 드럼. 로지는 에너지로 충만한 친구였어요. 로지는 모든 걸 잘하는 뮤지션이에요. 내가 그들에게 말했죠. 둘 다 이리 오라고. 우린 저녁을 함께했고, 이후 곡 작업도 같이하게 되었어요.




프로듀서 또한 필리포 시마티(Filippo Cimatti)로 바뀌었습니다. 그와 함께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로지와 카르멘을 통해 필리포를 만났어요. 그게 계기였습니다.




2010년 작품 [Emotion & Commotion]과도 사뭇 색채가 다릅니다. 전작은 어느 정도 팝 터치가 강했다고 봅니다. 반면 이번 음반은 찐득하고 출력이 센 블루스록, 하드록, 훵크가 주를 이룹니다. 다시 이런 스타일을 해보고 싶었는지요.


너무 편안하다 보면, 문제가 생기게 되죠. 이번엔 좀 불편한 사운드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팬들이 내 최신작 [Loud Hailer]에 담긴 시도를 즐거워해주면 좋겠군요. 내게 이 음반을 작업하는 과정은 일종의 ‘창의적인 충격’이었어요. 커리어의 어떤 시점에서 딱 원했던 바죠.




[Loud Hailer]는 전반적으로 거친 터치와 연주가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Pull It’ 같은 곡이 대표적이죠. 일부러 그런 맛을 내고자 한 건가요? 또 이번 음반 제목 [Loud Hailer]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Loud Hailer’란 확성기를 가리키는 말이에요.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자고 작정한 음반에 더없이 적절한 이름이지요. 요새 세상에서 벌어지는 더러운 일들을 보면서 꼭 한마디 하고 싶었어요. 이 시끄러운 물건을 들고 집회에 참가해 내 생각을 크게 외치겠다는 아이디어에 만족하게 된 겁니다.




앨범의 녹음 과정은 어땠는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로지와 카르멘, 나는 작업을 위해 올해 1월에 모였어요. 내가 주제에 관해 설명을 했죠. 프로세코 와인 한 짝을 놓고 난롯가에 앉아선 곧바로 작업에 착수했어요. 곡들은 아주 빨리 나왔어요. 3일 만에 5곡을 썼을 정도였으니까요.




베이시스트 지오바니 팔로티(Giovanni Pallotti)와 드러머 다비데 솔라치(Davide Sollazzi)의 탄탄한 리듬 파트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들과는 어떻게 연이 닿게 되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다비데와 지오바니 모두 필리포가 구인했어요.




당신의 1976년 작품 [Wired]를 너무 사랑합니다. 올해로 40주년을 맞았군요. 이 음반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를 듣고 싶습니다.


[Blow By Blow]가 거둔 큰 성공은 나를 더 힘들게 만들었어요. 그때 이렇게 자문해봤죠.  “그래, [Blow By Blow]는 이제 끝난 음반이야. 내가 그런 앨범을 또 낼 수 있겠어?” 결과적으로 [Wired]는 전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음반이 되었죠. 나 자신에 대해 엄청나게 반성해본 작품이었으니까요.




블루스록, 하드록, 퓨전 재즈을 거쳐 어덜트 컨템포러리와 전자음악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음악을 연주해 왔습니다. 장르를 넘나드는 왕성한 창작력의 비결은 무엇인지요.


나이든 로큰롤을 연주하는 일에 물려 버린 탓이었죠. 전엔 들어보지 못한 뭔가를 해봐야 할 타이밍이었어요. 그때 전과는 완연하게 다른 리프를 연구하기 시작하게 된 거죠. 난 솔로 기타리스트이자, 보컬리스트를 두지 않은 연주자였고, 혼자 더 많은 일들을 해야만 했어요. 앞서 언급했지만, 너무 편안하게 있으면, 문제가 생기는 법이니까요.




이곳의 많은 기타리스트와 기타리스트 지망생들이 당신을 최고의 기타리스트라 부르며 존경합니다. 그들에게 조언을 해 준다면요.


와, 그거 멋지군요. 정말 기쁩니다. 뭔가 특별한 존재가 되길 바란다면,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여유를 가지세요. 토니 하이마스의 말처럼 주어진 코스도 다 밟지 않았는데 정상에 설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이경준 | 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이고 음악웹진 <이명>의 편집장이다.

<지미 헨드릭스: 록스타의 삶>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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