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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트럼프를 거부한 뮤지션  
제목 [트렌드] 트럼프를 거부한 뮤지션   2016-12-20


트럼프를 거부한 뮤지션


도널드 트럼프에게 크게 눈길을 줄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돌이켜보니 몹시 순진한 예상이었는데, 입만 열면 막말에 인권 감수성 바닥인 탐욕의 사업가를 당연히 미국이라는 사회가 지지할 리 없다고 확신해 마음을 놓고 있었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외신은 음악계 뉴스고, 뉴스에 오르내릴 법한 뮤지션 입에서 그를 옹호하는 말이 나온 경우 또한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최근에는 미국이라는 먼 사회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최순실-박근혜 정부를 둘러싸고 쏟아지는 썩은 뉴스를 따라가기도 벅찼다. 그러나 11월 9일, 믿고 싶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 트럼프의 당선이 확정되었다.


결과가 이리 나온 마당에 덧없는 일일까. 그렇지 않을 거라고 믿으면서 트럼프 당선을 둘러싼 견제를 살펴보기로 했다. 몹시 걱정스럽게도 트럼프에겐 보복의 블랙리스트가 있다. 선거 준비기간 심기를 건드린 기업, 언론, 그리고 성추행을 고발했던 여성 등이 대표적인 표적이다. 의료복지나 소수자 인권 등 그간 미국 사회에서 진전을 이뤄왔던 분야 역시도 앞으로 발생할 역행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백악관을 비롯한 다양한 기구가 브레이크를 모르는 미친 주행에 적절한 제동을 걸 수 있을 테지만, 그만한 정치적 결정권이 없는 사람이라 해도 불만과 우려를 꾸준히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럴 필요가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도, 혹은 이럴 때만큼은 당당히 우리라 말할 수 있는 예술계 종사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대선 전의 목소리들


지난 해 6월 트럼프는 대선 캠페인 테마곡으로 닐 영의 ‘Rockin' In The Free World’를 골랐다. 버니 샌더스를 지지하면서 올초 그를 위한 노래까지 발표했던 캐나다 국적자 닐 영은 왜 허락 없이 쓰느냐며 당장 그만두라 했다. 트럼프 캠페인단에 따르면 이미 저작권 단체와 계약서 두 장을 쓰고 진행했기에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그것 말고도 선택할 수 있는 노래는 지천이니 가수가 원하지 않는다면 쓰지 않겠다고 했다. 트럼프 쪽 말대로 절차상에는 문제가 없었을지 모른다. 사용허가를 논할 수 있는 대리기관이 여럿이니 가수 개인과 접촉할 필요가 없었을지 모른다.


닐 영은 지난 6월, 그러니까 노래를 둘러싼 다툼으로부터 1년이 지난 뒤 다소 아리송한 입장을 내놨다. 노래는 발표된 순간 누구나 각각의 목적으로 쓸 수 있고, 자신은 트럼프를 싫어하지 않으며, 다만 개인적인 허락을 구하지 않은 게 옳지 않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대선 캠페인 선곡을 둘러싼 첫 번째 공적인 논쟁은 이렇게 싱겁게 끝났고, 덕분에 위선자란 평가가 따라왔다. 참고로 트럼프는 닐 영의 오랜 팬으로, 꿈속에서 그의 노래를 듣고 캠페인에 사용하기로 했으며 닐 영으로부터 거부당했을지언정 여전히 그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짝사랑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일까. 혹은 샌더스 탈락 이후 자포자기한 것일까. 어쩌면 복잡한 문제에 더는 얽히고 싶지 않았던 걸 수도 있다. 1989년 발표한  ‘Rockin' In The Free World’는 수난이 많았던 노래다. 1990년대 부시 행정부가 공산주의 붕괴와 함께 미국의 자유를 상징한다고 판단해 정치적으로 이용한 바 있다. 그런 목적으로 쓰일 줄 몰랐겠지만 가사 가운데에는 총기를 부드럽게 묘사한 대목이 있다.


트럼프 캠페인은 그밖에도 많은 노래들을 사용했고 번번이 마찰을 겪었다. 올초에는 아델의 ‘Rolling In The Deep’과 ‘Skyfall’을 골랐고, 역시 절차를 지켰을 테지만 아델은 자기 노래가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허락한 적 없다며 당장 끄라 했다. ‘Start Me Up’ ‘You Can’t Always Get What You Want’ ‘Brown Sugar’까지 세 곡이나 쓰여 어리둥절했던 롤링 스톤스도 아델과 비슷한 이유로 그만두라는 입장을 내놨다. R.E.M.의 ‘It’s The End Of The World As We Know It’ 또한 트럼프 캠페인이 선택했는데, 홍보 담당자가 이토록 눈치가 없을 수 있나 싶어 좀 놀랍지만 논란을 만들기로 작정한 결과일 수도 있을 것 같다. R.E.M.은 데뷔 시절부터 꾸준하게 진보 성향을 드러내왔던 밴드로, 트럼프를 “오렌지 클라운(the Orange Clown)”이라 불러왔다. 대처도 가장 강경했다. 불쌍한 관심병 환자라 조롱하면서 이른바 ‘F워드’를 썼다.


히스패닉계 뮤지션도 말을 보냈다. 리키 마틴은 트럼프를 지지하는 한 저널리스트에게 분노의 트위터를 썼다. 트럼프를 두고 근거 없이 라틴 커뮤니티를 비열하게 공격하는 사람이라며, 거기에 피가 끓는다고 말하다가 140자를 넘겼다. 38만 팔로워를 두고 있는 샤키라 또한 트럼프의 연설을 두고 혐오스러우며 인종차별적이라 비난했다. 평화적인 대응을 택한 뮤지션도 있다. 에밀리오 에스테반은 “우리는 모두 멕시칸”이라는 선언으로 지지를 얻었고, 베키 지는 멕시코 출신 이민자를 비하하는 트럼프 발언 직후 새 싱글 ‘We Are Mexico’를 발표했다. 좀 다르고 넓은 관점에서 후보를 공격한 사례들도 많다. 프랭크 오션은 이런 후보가 나올 수 있는 배경을 두고 총기 소지가 가능하기 때문이라 했고, 포크 밴드 마운틴 고츠는 트럼프를 파시트스라 규정하면서 덧붙였다. “그의 정치를 설명할 때 올바른 용어를 쓰는 것은 중요하다. 그는 파시즘의 정치를 한다.”




대선 이후의 멘붕들


올해 레이디 가가의 눈물을 두 번이나 보고 있다. 먼저 올 6월 올랜도 게이 클럽 ‘펄스’에서 일어난 끔찍한 테러 이후 뜨거운 눈물을 안고 추모식에 찾아왔다. 선거 당일 힐러리 지지연설에 참여했던 레이디 가가는 다음날 새벽부터 도시 한복판으로 나갔다. 트럼프는 미국의 혼란을 야기한 주범이고, 그러므로 끝까지 저항하겠다고 밝히고는 뉴욕의 트럼프 타워 앞에서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시작하며 눈물을 흘렸다. 레이디 가가는 대선 전부터 성소수자를 비난하고 표현의 자유를 침범하는 트럼프를 견딜 수 없다고 여러 채널을 통해 늘 강조해왔다. 트럼프의 아내 멜라니아 트럼프가 사이버 불링 운운하며 왕따 척결 운동에 앞장서겠다고 말했을 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며 가장 악명 높은 왕따 가해자는 트럼프라 받아치기도 했다.


소수자를 대변하는 입장에서 레이디 가가가 트럼프를 반대했다면, 선배 마돈나는 페미니스트 관점을 취했다. 투표가 곧 여성 혐오와 여성에 대한 편견을 일소할 것이라 주장해왔던 그녀는 선거 이후 “새로운 불이 타올랐다. 우리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트럼프의 미국에 굴복하지 않는다”고 트위터에 적고는 거리 공연을 나갔다. 참고로 트럼프는 1992년 <섹스북>이 출간됐을 당시 TV쇼에 나와 책과 함께 마돈나의 여성성을 품평한 바 있다. “그리 훌륭하지 않다. 인상적이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마돈나가 내 눈 앞에 있다면(이 스튜디오 안에 있다면) 최소한 매력적인 여자로 보일 수는 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뒤 트럼프는 또 마돈나를 모욕적으로 언급했다. “마돈나가 오바마에 투표하라고 권한 순간 많은 사람들이 마돈나 콘서트에 가기를 포기했다.”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젠더는 마돈나의 오래된 화두다. 성적 대상화된 여성부터 스웨거 쩌는 승리의 여성까지 다양한 관점에서 이를 다뤄왔다. 앞으로 발표할 마돈나의 노래를, 그리고 가사를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그밖에도 힐러리를 지지했던 여성 뮤지션들이 대선 이후 겪은 반응을 살펴보면 좀 섬뜩하다. 올 봄 울면서 트럼프가 당선되면 미국을 떠나겠다고 말했던 마일리 사이러스는 엄청난 공격을 받고 있다. 빨리 안 떠나고 뭐하냐는 메시지로 개인 계정이 도배됐다. 케이티 페리, 비욘세 같은 뮤지션 또한 유사한 비아냥으로 각각의 SNS가 너덜너덜해진 상태다. 당선 이후 기다렸다는 듯이 유색인종, 무슬림, 성소수자에 쏟아진 현실의 끔찍한 테러와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정말 이래도 되는 것일까.


멘붕을 다스리는 가장 쉬운 방법은 처지가 같은 사람들과 한탄하는 일일 것이다. 서로가 처한 최악의 상황을 나누다보면 자연스럽게 위로가 된다. 브렉시트를 겪은 영국인도 제법 잘 할 테지만 더 잘하는 사람들은 여깄다.  




이민희 | 대중음악평론가

온오프라인 매체에 음악 관련 글을 쓰고 있다.

듣는 건 여전히 즐거운데 쓰는 건 여전히 고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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