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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라라랜드, 채찍질 뒤에 띄운 화사한 초대장  
제목 [트렌드] 라라랜드, 채찍질 뒤에 띄운 화사한 초대장   2016-12-14


채찍질 뒤에 띄운 화사한 초대장

다미엔 차젤레, <위플래시> 그리고 <라라랜드>

 

다미엔 차젤레의 연이은 영화 두 편을 살펴보기로 한다. 재즈 드러머를 소재로 한 <위플래시>는 굉장히 훌륭했지만 어쩐지 다시 보고 싶지는 않다. 최근 개봉한 아름다운 뮤지컬 <라라랜드>는 반대로 계속해서 더 보고 싶어진다. 굉장히 다른 영화지만 둘 다 음악을 중요하게 다룬다. 이는 감독 개인의 경험과 통찰로부터 나왔다.

 



6년짜리 프로젝트, <라라랜드>

 

다미엔 차젤레는 6년 전 <라라랜드> 초고를 썼다. 그러니까 <위플래시> 이전이다. 그가 원했던 그림이란 이런 것들이다. 현대사회를 배경으로 하되 전형적이고 고전적인 뮤지컬일 것, 거기에 재즈를 토대로 할 것, 그리고 미국과 꿈을 상징하는 LA를 배경으로 할 것. 이 모든 것은 할리우드라는 아득한 사다리를 오르기로 결심했던 감독 개인사와 연결된다. 로드아일랜드 주 출신으로 뉴저지에서 고교시절을 보내고 매사추세츠에서 대학을 다녔던 그는 2007년 영화를 목표로 LA로 이주했다. <가이 앤 매들린 온 어 파크 벤치>(2009)로 데뷔하긴 했지만 영화를 계속해도 되는지 스스로를 의심하던 무렵에 <라라랜드>를 쓰기 시작했다.


차젤레 자신의 꿈과 다름 없었던 영화 <라라랜드>는 마침내 현실이 되긴 했지만,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시나리오를 검토한 투자자들은 몇 가지 불편한 수정을 제안했다. 재즈 뮤지컬은 멸종된 장르나 다름없다는 판단하에 남자 주인공 세바스찬의 직업을 재즈 피아니스트에서 록 뮤지션으로, 사운드트랙은 재즈가 아닌 팝으로 바꿀 것을 권했고, 두 주인공 미아와 세바스찬이 만드는 결말은 보다 명쾌해지길 원했다. 차젤레가 내린 결정은 무한 보류다. 방향을 돌려 투자 리스크를 고려한, 상대적으로 팔기 쉬운 영화를 만들기로 한다. 그게 <위플래시>. 18분짜리 단편으로 제작해 선댄스에서 처음 공개했다가 심사위원상을 받아 장편영화로 확장하게 되는데, 전문가 평가뿐 아니라 실제 관객 반응 또한 예상을 뛰어넘었다. <위플래시>는 약 300만 달러로 만들어 약 5천만 달러 수익을 거둔 알짜 영화다.




<위플래시>의 성공 이후 그는 봉해둔 시나리오를 꺼냈다. 대본 수정 없이 엑스트라 1,600여 명과 93개 촬영지를 바탕으로, 투자금 3천만 달러와 함께 <라라랜드>를 완성했다. 배우들 또한 적극적으로 응했다.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 역을 맡은 라이언 고슬링은 피아노를 제대로 연마하겠다는 약속 끝에 대역 없이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엠마 스톤은 영화 속 배우 지망생 미아로부터 자신의 과거를 봤다.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열다섯 살에 엄마와 함께 LA로 왔지만 준비한 대사 한 줄이 끝나기가 무섭게 오디션장을 떠나야 했던 시절이다. 어린 날 발레를 배우고 치어리더 경험을 쌓았던 것도 캐릭터에 살을 붙이는 데 보탬이 됐다.

 


 

차젤레의 작가관 1

예술은 숭고한 것이다

 

<위플래쉬>는 말 그대로 채찍질 같은 영화다. <라라랜드>는 환상의 세계로 인도하는 초대장 같은 영화다. 각각의 작품 속 예술가 캐릭터들이 안고 있는 분노의 수위만 다를 뿐, 예술가 개인의 고민과 투쟁, 꿈과 인간성의 양립을 다룬다는 점에서 맥락은 같다고 차젤레는 이야기한다. 뿌리도 같다. 그는 경험과 철학을 바탕으로 두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차젤레는 고교 시절 재즈 드러머로 활동했다. 현재까지는 작가로서 가장 중요한 이력인데, 그 시절이 그리 행복하진 않았던 것 같다. 열정적으로 달려들었지만 결국 자신은 뮤지션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는 접었다. 공포를 느꼈다고 회고했을 만큼 자비를 모르는 스승을 만났고, 손바닥에서 피가 나도록 연주하곤 했을 만큼 경쟁은 당연했다. <위플래시>의 변태적인 지도교사 테렌스 플렛츠는 그가 직접 겪은 인간에 더러운 성깔로 유명했던 현실의 재즈 드러머 버디 리치를 엮은 캐릭터로, 실제로는 굉장히 온화하다며 그가 직접 해명하듯 인품을 극찬했던 배우 J.K. 시몬스에게 캐릭터를 설명한 뒤 주문했다. “나는 영화에서 흔히 접하는 인간을 또 볼 생각이 없습니다. 괴물을, 그리고 짐승을 원합니다.” 논란의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는 골든글로브 조연상을 가져갔다.


몇 년 뒤 차젤레는 영화사 고위 관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라라랜드>를 설명했다. “세바스찬과 미아의 데이트를 보고도 재즈를 안 좋아할 수가 있을까요?” 재능 없는 드러머는 록 밴드로 간다고 <위플래시>는 주장했지만, 그러나 그는 학대나 조롱 같은 부정적인 키워드 없이도, 즉 몹시 정상적인 캐릭터를 세우고도 예술과 진정성을 논할 수 있는 연출가였다. 유치한 십대용 드라마 오디션에 일희일비하는 미아를 구출한 것은 순수 예술이었고, 그 전환에 기여한 것은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의 뜨거운 예술관이다. 세바스찬은 그럼 케니 지는?” 하고 묻는 미아에게 재즈의 본질을 설명하기 위해 상당한 공을 들였던 인물이다.

 

 


차젤레의 작가관 2

예술가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차젤레는 고통의 밴드를 일찍 경험하고는 좌절한 뒤 꿈을 버리고, 이제는 지나간 시절을 재산 삼아 예술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예술에 대한 맹목적인 추앙이 반대로 얼마나 위험하고 무모한가를 동시에 이야기하려 한다. 소수 팬들로부터 사랑받는 음악을 한다는 건 꽤나 낭만적인 일이지만, 그런 위대한 아이디어는 금방 고갈되며 자아를 억누른다고 그는 설명한다. “20대 때만 해도 그런 게 엄청 의미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만둔다. 신념에 대한 확신은 나이들수록 허약해진다.”


<위플래시>에서도 비슷한 고민이 있었다. 앤드류는 과연 한계란 무엇인가를 설파하는 영화의 주인공답게 극단적인 방식으로 재즈를 버린다. 사람답게 살고자 내린 어려운 결정이다. 음악에 미쳐 연애할 때도 몹시 멍청했던 앤드류가 실은 이런 사람이었어야 했다고 뒤늦게 부연하는 것처럼, <라라랜드> 속 세바스찬에겐 확실한 재즈가 있었지만 중요한 관계를 형성한 뒤 현실 문제를 고민한다. 키이스 역할을 맡은 뜬금없는 존 레전드는 꽤 과장된 연출로 대중성에 따르는 화끈한 보상을 보여준다. <위플래시>에서 재즈를 규정한 J.K. 시몬스는 재즈를 거부하는 인간으로 돌변해 <라라랜드>를 깜짝 방문한다.


두 영화 이전에 차젤레는 젊은 재즈 뮤지션을 다룬 <가이 앤 매들린 온 어 파크 벤치>를 찍었다. 그가 관찰한 젊은 뮤지션들은 전 세대에 비해 예술가연하지 않았고, 거기서 매력을 봤으며 그들이 겪는 생계 문제와 자조적인 해소에 집중했다. 그에 따르면 동시대 젊은 재즈 뮤지션들은 농담을 섞어 이렇게들 한탄하면서 산다. “록 뮤지션은 음 세 개를 연주하는 것으로 백만 달러를 번다. 재즈 뮤지션은 백만 음을 연주하는 것으로 3달러를 번다.”

 

 


차젤레의 작가관 3

분야가 변해도 결벽은 같다

 

<위플래시>는 자동차 사고를 겪고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공연장으로 달려가는 미친 앤드류를 보여준다. 그건 차젤레의 실제 경험과 통하는데, 19일간의 촬영 계획을 잡고 <위플래시>를 찍다가 막판에 심각한 교통사고를 입어 뇌진탕 진단을 받았지만 촬영장으로 직행해 영화를 마무리했다. 차젤레가 이런 괴물이라는 걸 일찍부터 알고 있던 동반자가 있다. 영화음악가로 이력을 쌓고 있는 저스틴 휴위츠다.


차젤레는 하버드대 출신으로, 새내기 시절 동기들과 인디 성향 록밴드 체스터 프렌치를 결성했고 거기서 저스틴 휴위츠를 만났다. 청년시절 음악을 나눴던 둘은 영화로 방향을 돌려 2007LA로 함께 이주했고, <가이 앤드 메들린 온 어 파크 벤치>로 같이 데뷔했다. 록 밴드에서 만났지만 재즈 해석에도 해박했던 까닭에 차젤레는 그에게 <위플래시><라라랜드>의 음악도 믿고 맡길 수 있었다.


차젤레가 <라라랜드>의 대본을 쓰는 동안 허위츠는 계속해서 멜로디를 썼다. 작업을 마치는 대로 차젤레에게 보냈는데, 그가 가장 많이 들었던 대답은 다시였다고 말한다. 어떤 곡은 25-30회까지 창작과 수정을 거듭했다. 우정에 금이 갈 법도 한데 허위츠는 기다림이 필요했던 작업이라 인정한다. 그는 피아노로 연주한 미아와 세바스찬의 테마곡에 특히 애썼다. 첫눈에 반하는 순간을 제대로 묘사하는 것이야말로 영화의 핵심이라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은 행복한 연출가

 

결국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차젤레는 꽤나 행복한 사람인 것 같다. 일은 엄청 터프하게 하지만 꽤 진실한 영화를 찍어왔으며 각 영화의 핵심 요소인 음악을 그만큼 집요하게 파고드는 확실한 파트너가 있다. 그릇이 바뀌었을지언정 몰입감 상당한 영화가 계속해서 나와 사랑받고 있다. 그는 당분간 제작사로부터 휘둘릴 일 없을 것 같다. 1211일 기준 미국 박스 오피스에 따르면 <라라랜드>는 다섯 개의 개봉관으로 시작해 2천 개로 확대됐고, 한국에서는 50만 이상 관객을 동원한 상태다.



 

이민희 | 대중음악평론가

온오프라인 매체에 음악 관련 글을 쓰고 있다.

듣는 건 여전히 즐거운데 쓰는 건 여전히 고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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