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Article

재즈피플에서 소개하는 주요 기사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낯선 청춘의 스탠더드] 'Autumn Leaves'  
제목 [낯선 청춘의 스탠더드] 'Autumn Leaves'   2016-11-14


가을의 우수를 담은 프랑스산 스탠더드

'Autumn Leaves' (Les Feuilles Mortes)

 

11월이다. 바람이 제법 차졌다. 이 차가운 바람에 나뭇잎은 생기를 잃고 땅에 떨어질 것이다. 이미 이 도시의 거리엔 노란 은행잎을 시작으로 나뭇잎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뭇잎은 떨어지기 직전 노랗고 빨갛게 변한다. 그 모습은 꽃처럼 아름답다. 하지만 사실 이 화려함은 숨이 막히고 목이 마른 끝에 땅에 떨어지기 직전에 보내는 마지막 유언 같은 것이다. 이제 불모의 시간이 오리라는 유언.

 

그래서인지 나뭇잎이 지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알 수 없는 허무함, 쓸쓸함에 빠진다. 그래서 절로 지난날을 돌아보고 아쉬워하곤 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이 무렵이 되면 나는 괜한 불안을 느낀다. 10대 소년의 감상이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니다. 특히 이유가 확실한 것 같다. 특별히 해 놓은 것이 없다는 것이 시간이 너무나 빨리 흘렀다는 느낌을 들게 했고 그것이 불안으로 이어진 것 같다. 실제 업무에 있어서 올해 성과가 그리 좋지 않다. 내일로 일을 미룬 것도 아닌데 말이다. 게다가 더 답답한 것은 남은 2개월간 그 부족함이 만회될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이렇게 나뭇잎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습관적으로 'Autumn Leaves'를 듣곤 한다. 나뿐만 아니라 재즈 애호가들 대부분이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곡 제목 때문이다. 영어 곡 제목은 그냥 '가을의 나뭇잎'이지만 이 곡의 원곡인 프랑스어 제목 'Les Feuilles Mortes' '죽어버린 나뭇잎'을 의미한다. 배호나 패티 김 같은 우리 가수들이 이 곡을 번안해 노래할 때의 제목도 '고엽(枯葉)'이었다.

 

 


프랑스 샹송의 고전 'Les Feuilles Mortes'

 

프랑스 샹송으로 우리에게 먼저 알려진 'Les Feuilles Mortes' 1945년 헝가리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조셉 코스마(Joseph Kosma)에 의해 작곡되었다. 그런데 당시 그는 지금 우리에게 알려진 대중음악의 형태로 곡을 쓰지 않았다. 프랑스 현대 발레의 거장인 롤랑 프티의 발레 <만남>(Le Rendez-Vous)을 위한 음악의 일부로 썼던 것. 실제 발레 음악을 들어보면 이 곡이 주요 테마로 등장하기는 하지만 클래식처럼 더 복잡한 형태의 긴 곡의 일부로 나온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온전한 형태의 'Les Feuilles Mortes'가 된 것은 이듬해 제작된 마르셀 카르네(Marcel Carne) 감독의 영화 <밤의 문>(Les Portes De La Nuit)에 사용되면서였다. 여기에는 가사를 쓴 시인 자끄 프레베르(Jacques Prevert)의 역할이 컸다. 이 시인은 발레 <만남>의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인을 만난 남자의 슬픈 운명을 내용으로 하는 기본 줄거리를 만들었다. 이를 기반으로 대사 없이 무용으로 이루어진 발레가 완성된 것인데 이 발레의 내용에 마르셀 카르네 감독이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시인에게 시나리오를 의뢰해 영화 <밤의 문>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감독은 조셉 코스마에게 발레에 이어 영화의 음악을 의뢰했다. 그리고 주제곡을 발레 음악에서 가져올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영화의 특성상 있는 그대로 음악을 가져오기에는 곤란했다. 그 결과 발레 음악의 주제 부분에 시인이 가사를 붙여 주제곡이 완성되었다.

 

영화는 기대한 만큼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남녀 주인공 디에고와 말루를 연기한 이브 몽탕과 나탈리 나티에-실제는 이렌 조아킴이 대신 노래했다-에 의해 노래된 주제곡은 인기를 얻었다. 그래서 여러 가수가 이 곡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에는 영화에서 노래했던 이브 몽탕도 있었다. 그의 노래는 이 곡의 모범이 되어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55, 'Autumn Leaves'미국에서 인기를 얻다

 

미국에서는 1949년 자니 머서가 영어 가사를 쓰고 이에 맞추어 조 스태포드가 처음으로 노래하면서 알려졌다. 아울러 이듬해 영화가 미국에서 개봉한 것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 (프랑스에서보다 흥행 성적이 좋았다) 앞서 말했듯이 이 곡의 프랑스어 제목은 '죽어버린 나뭇잎'이다. 그래서 자니 머서도 영어 가사를 쓰며 제목을 'The Dead Leaves'로 할까 잠시 고민했다고 하는데 정서적인 측면을 고려해 지금의 'Autumn Leaves'로 정하게 된다.

 

그런데 자니 머서의 영어 가사를 통해 미국 팝 음악에 편입되기는 했지만 이 곡의 인기는 대중음악의 가장 기본적인 코드 진행이라 할 수 있는 투파이브원 진행을 바탕으로 한 우수 어린 멜로디 때문인지 연주곡이 큰 인기를 얻었다. 특히 1955년은 'Autumn Leaves'의 해라고 할 만했다. 피아니스트 로저 윌리엄스의 연주가 연주곡으로서는 드물게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를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고 이 외에도 미치 밀러, 재키 글리슨, 스티브 앨런 등의 오케스트라 버전이 등장해 인기를 얻었으니 말이다. 로큰롤이 지배하던 시기에 이들 성인 취향 연주곡의 인기는 매우 이례적이었다. 

 


 

낭만적이지만 슬프지 않은 가을 풍경의 연주

 

같은 해 재즈 쪽에서도 인상적인 버전이 나왔다. 역시 연주곡이었다. 피아니스트 에롤 가너는 1955 9 19일 캘리포니아의 카멜바이더시에 위치한 선셋 학교 강당-지금은 선셋 아트 센터라 불리는-에서 이 곡을 연주했다. 이것은 공연이 있고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발매된 앨범 [Concert By The Sea]에서 확인할 수 있다. (원래는 계획이 없었는데 이 피아니스트의 팬이었던 한 방송국 엔지니어가 공연을 혼자 들을 요량으로 녹음한 것이 피아니스트의 매니저에 의해 발견되어 앨범 발매로 이어졌다.)  

 

에롤 가너는 어떤 곡이건 자신만의 화려한 스타일로 바꾸어 연주할 줄 알았다. 게다가 그의 연주는 어두움보다는 밝은 면이 더 많았고 그것이 매력이었다. 이 곡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우수 어린 선율을 유지하면서도 솔로에서는 전반적으로 밝은 느낌을 표현했다. 그런데 그 우수 속에 드러나는 미소의 느낌이 곡을 더 낭만적이게 만들었다. 여러 장식을 사용하고 강약으로 조절로 극적인 면을 강조한 것도 매력적이었다. 정말 관객을 압도하는 공연 연주란 어떤 것인지 확인하게 해주는 연주였다.

 

피아니스트 아마드 자말도 1955년에 이 곡을 녹음했다. 앨범 [The Ahmad Jamal Trio]을 위한 녹음으로 그 시기가 에롤 가너의 [Concert By The Sea] 발매된 직후인 10 25일에 녹음되었다. 그는 앞서 언급한 에롤 가너나 오스카 피터슨처럼 화려한 연주를 펼치면서도 델로니어스 몽크처럼 필요에 따라 생략과 절제를 활용할 줄 아는, 뜨거운 동시에 쿨한 연주를 펼쳤던 연주자였다. 감칠맛이 강한 연주자라고나 할까?

 

냇 킹 콜이 자주 사용했던 피아노-기타-베이스로 이루어진 트리오 편성으로 연주된 이 곡도 그랬다. 에롤 가너보다 훨씬 더 밝은 분위기로 연주하면서 그는 테마의 멜로디를 적절히 생략하고 그 자리에 멜로디에서 그리 멀리 나가지 않은 솔로를 넣어 화려함과 생략의 맛 모두를 느끼게 했다. 그 결과 에롤 가너처럼 낭만적이지만 슬프지 않은 가을 풍경을 상상하게 했다. 그래서 3분도 되지 않는 짧은 연주시간을 아쉽게 만든다. 

 

 


캐논볼 애덜리와 마일스 데이비스의 연주

 

한편 이 곡의 편곡은 재즈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Autumn Leaves'의 탄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공식적인 지표는 없지만 많은 감상자와 평론가는 가장 아름다운 'Autumn Leaves'로 캐논볼 애덜리와 마일스 데이비스가 1958년 앨범 [Somethin’ Else]에서 연주한 버전을 꼽는다. 아마드 자말의 버전과 달리 11분 가량 되는 긴 시간 동안 펼쳐지는 이 연주는 낭만을 머금은 가을의 낭만을 제대로 맛보게 해준다. 그런데 확실히 피아노로 시작하는 인트로 부분과 흐름에 잠시 단절을 주는 총주 부분은 3년 전 아마드 자말의 곡의 인트로와 중간 부분의 편곡과 많이 유사하다. 실제 마일스 데이비스는 아마드 자말의 연주를 듣고 이 곡의 편곡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캐넌볼 애덜리의 이름으로 발매되기는 했지만 [Somethin’ Else]는 전반적으로 마일스 데이비스의 앨범에 가까웠다. 당시 캐넌볼 애덜리가 마일스 데이비스 그룹의 일원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연주 자체가 마일스 데이비스 중심이었다. 그래서 콜럼비아 레코드와 계약 중이었던 마일스 데비이스는 블루노트 레이블에서 앨범을 녹음하기 위해 캐논볼 애덜리를 앞세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가운데 'Autumn Leaves'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리더로서 존재감이 가장 잘 드러난다. 아마드 자말에게서 가져온 긴 인트로에 이어 테마를 연주하는 그의 트럼펫 연주는 혼자지만 외롭지 않게, 아니 혼자임을 즐기며 떨어진 나뭇잎을 밟으며 천천히 걸어가는 남자를 연상시킨다. 트럼펫과 대비 효과를 이루는 색소폰 솔로 연주나 행크 존스의 피아노 솔로도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 기조를 따라간다. 그래서 나는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나뭇잎 가득한 거리를 걷는 상상에서 나아가 직접 길을 걷고 싶은 마음을 먹곤 한다. 그래서 실제 파리와 서울의 낙엽 가득한 거리를 이 곡과 함께 걸어보기도 했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이후 멤버의 변화 속에서도 이 곡을 꾸준히 연주했다. 하지만 1958년도 녹음만큼 인상적이지는 못했다. 라이브 연주들이었기 때문인지 1958년의 편안하고 낭만적인 분위기보다는 하드밥의 뜨거움을 더 많이 강조되었다. 이전과 다른 새로움을 추구하면서 그런 결과가 나왔으리라.

 

그러나 1960 10 11일 프랑스 파리의 올랭피아홀에서의 공연은 달랐다. 그해 이 트럼페터는 3월과 10월 파리에서 공연을 펼쳤다. 3월에는 색소포니스트 존 콜트레인이 함께했고 10월에는 소니 스팃이 함께 했다. 그 가운데 앨범 [Olympia 11 Octobre 1960]로 발매된 10월 공연에서 이 곡이 연주되었는데 다른 연주들과는 다른, 1958년도 연주를 어느 정도 고려한 듯한 연주가 또 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유명한 인트로 없이 곧바로 테마 연주를 시작하고 연주의 온도도 1958년도보다는 뜨겁지만, 그래도 나뭇잎이 떨어지는 가을의 낭만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아마도 당시가 10월이었고 장소가 이 곡의 고향인 파리였기에 그랬던 것 같다.

 


 

프랑스적인 풍경을 그리게 하는 연주

 

그렇다면 프랑스 연주자들은 이 곡을 어떻게 연주했을까? 오르가니스트 에디 루이스와 피아니스트 미셀 페트루치아니 듀오를 비롯해 기타리스트 비렐리 라그렌, 재키 테라슨 등이 이 곡을 연주했는데 생각보다 낭만적인 측면을 강조하지 않았다. 경쾌한 스탠더드곡으로 연주했다. 그래도 재즈 피아니스트로 출발해 영화 음악의 거장이 된 미셀 르그랑과 바이올리니스트 스테판 그라펠리가 1992년에 녹음한 앨범 [Grappelli/ Legrand]에 담긴 연주는 프랑스적인 가을을 제대로 느끼게 해준다. 보컬 코러스가 곁들여진 스트링 오케스트라가 나뭇잎을 떨어뜨리는 바람처럼 배경에 자리 잡고 그 위로 바람을 타고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스테판 그라펠리의 바이올린 연주가 흐르는데 그 안에서 죽어가는 것에 대한 따스한 시선이 느껴진다.

 

스트링 오케스트라가 가세한 다른 연주 중에는 폴 데스몬드가 1962년에 녹음한 연주를 꼽을 수 있다. 앨범 [Desmond Blue] 1987년에 보너스 트랙을 추가해 [Late Lament]란 앨범으로 재발매되었을 때 그 추가된 곡의 하나로 실린 이 곡은 마치 첩보 영화를 연상시키는 긴장 가득한 인트로가 감상자를 당황하게 만든 뒤 안개를 헤치고 튀어나온 듯한 폴 데스몬드의 맑은 색소폰 연주가 흐르는데 그것이 참 낭만적이다. 느긋한 템포만큼이나 느슨하게 흐르는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가을의 정경을 제대로 상상하게 한다.

 

피아니스트 빈스 과랄디의 트리오 연주도 매우 낭만적이다. 우리에게는 애니메이션 <찰리 브라운>이나 마르셀 카뮈 감독의 영화 <흑인 오르페>의 사운드트랙을 담당한 인물로 알려진 이 피아니스트는 스탠더드곡의 연주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 1957년도 앨범 [A Flower Is A Lovesome Thing]에서 연주한 'Autumn Leaves'도 그렇다. 그의 연주에는 원곡에 담겨 있던 떨어지는 나뭇잎에 대한 슬픔이 담겨 있다. 그렇다고 소리 내어 우는 슬픔은 아니다. 눈물을 닦지 않은 채 슬픔을 참는 것에 더 가깝다. 그래서 담담한 느낌까지 난다.

 

한편 2009년에 발매된 베스트 앨범 [The Definitive Vince Guaraldi]에는 이전에 공개된 적이 없는 연주로 이 곡에 대한 1964년도 연주가 담겨 있다. 1957년의 연주와 전반적으로는 비슷하지만 10분이 넘는 연주가 훨씬 더 극적인 맛을 준다.

 

빈스 과랄디의 연주에 이어서는 스탄 겟츠가 1952년 앨범 [Chamber Music]에서 펼친 연주가 어울린다. 이 색소포니스트는 여러 차례 이 곡을 연주했다. 그래도 이 첫 번째 연주가 제일 좋은 것 같다. 빈스 과랄디처럼 슬픔과 이에 대한 담담함이 어우러진 연주가 원곡의 정서를 제대로 느끼게 한다.

 

 


파트리시아 바버와 듀크 엘링턴

 

확실히 이 곡은 연주곡들이 좋다. 보컬곡들은 기본 이상을 넘어 특별한 느낌을 주는 것들이 드물다. 그래도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파트리시아 바버가 2000년도에 발표한 앨범 [Nightclub]에서 부른 노래는 다른 보컬리스트들과는 구분되는 독특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마크 존슨의 베이스만을 배경으로 어둡고 눅눅한 분위기로 노래한 뒤 시정(詩情) 가득한 트리오 연주를 펼치는데 그것이 무척 매혹적이다.

 

한편 원곡의 정서를 잘 반영한 보컬곡은 뜻밖에도 1957년에 녹음된 듀크 엘링턴의 앨범 [Ellington Indigos]에 담겨 있다. 이 앨범에서 듀크 엘링턴은 빅밴드 편성을 사용했으면서도 솔로 연주를 강조하고 총주를 뒤로 물러서게 해 소규모 콤보 연주와도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 가운데 'Autumn Leaves'에서는 남성 보컬리스트 오지 베일리와 바이올리니스트 레이 낸스를 앞세웠다. 특히 오지 베일리는 전반부에는 프랑스어로 노래해 원곡의 우수를 제대로 표현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비가 내려도 풍경에 변화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의 비는 많은 나뭇잎을 떨어뜨릴 것 같다. 내일 아침 거리에 나서면 나뭇가지 사이로 하늘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한 번 더 'Autumn Leaves'를 들어보리라. 그래서 가을의 우수를 낭만으로 바꾸어 보리라. 이를 위해 잠들기 전 음악을 미리 준비해야겠다.  

 



최규용 | 재즈 칼럼니스트

라디오 키스 재즈 담당 PD이다.

저서로는 [재즈], [재즈와 살다]가 있다.




11월호 목차 보기

 정기구독 신청

첨부파일 가을 (2).jpg
비밀번호 삭제하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목록

삭제 수정 답변

댓글 수정

비밀번호

수정 취소

/ byte

댓글 입력

이름 비밀번호 관리자답변보기

확인

/ byte


*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대소문자구분)

회원에게만 댓글 작성 권한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