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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베스트 재즈 앨범 20
제목 2020 베스트 재즈 앨범 20 2021-01-02

다사다난했던 2020년이 막을 내렸다. 전 세계적인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모든 활동이 얼어붙었다. 재즈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뮤지션들의 발목이 묶이자, 자연스럽게 앨범 발매량도 큰 폭을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아주 훌륭한 앨범들이 발매됐다. 국내와 해외 재즈 앨범 10장씩, 총 20장을 선정해 리뷰를 덧붙였다.


* 2019년 12월 1일부터 2020년 11월 30일까지 발매된 작품을 대상으로 했으며, 작품은 편집 앨범과 싱글을 제외한 정규 앨범과 라이브 앨범, EP로 한정했다. 

* 선정에 참여해주신 분들: 김광현, 김민주, 김성희, 김현준, 낯선 청춘, 박준우, 신샘이, 안민용, 이상희, 장건우, 정병욱, 조원용, 최승인, 허재훈



2020 국내 재즈 앨범 베스트 10

* 순위 없이 가나다 순이다.




고희안 트리오 [Live At Jazz First]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국내외 대부분의 왕래가 단절된 2020년. 음악과 재즈가 시간과 장소를 거스르고, 언어 장벽마저 거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반기게 한 앨범이다. [Live At Jazz First]는 고희안 트리오의 다섯 번째 정규작이자 세 번째 라이브 앨범. 좋은 라이브 앨범이란 결국 청자에게 음원을 듣는 것만으로 현장에 동참하게 하고, 동참하고 싶게 만드는 것이라 볼 때 본작은 분명 올해 첫손에 꼽을 만한 라이브 앨범이다. 팬데믹 이전인 2019년 6월 30일, 일본 구마모토현 야츠시로시 재즈 퍼스트 클럽에서 펼쳐진 이 공연 실황은 꽉 찬 에너지와 자작곡만으로 구성한 잘 짜인 세트리스트를 통해 피아노 트리오 연주와 라이브 앨범의 미덕을 두루 만족시킨다. 다양한 시도로 세상과 활발히 소통하는 프렐류드와 재즈 전통에 좀 더 치중한 트리오, 클래식 명곡을 재즈로 치환하는 듀오 활동 등 다채로운 경험이 그에게 보다 유연한 균형 감각을 부여했을까? 10년 가까이 된 트리오 호흡을 통해 그와 그룹의 연주가 좀 더 유창하게 여물었을까? 빠르고 역동적인 곡과 상대적으로 차분하고 서정적인 곡을 효과 있게 교차 배치한 서사의 완급 조절은 물론, 어렵지도, 한순간 지루하지도 않게 긴장감을 유지하는 팽팽한 근력도 탁월해 마치 공연을 실제 완주하듯 진한 몰입감과 여운을 선사한다. _정병욱





말로 [송창식 송북]

이 앨범의 가치와 이야깃거리는 눈앞에 드러난 정보만으로도 넘쳐난다. 그것이 한국 대중음악사 위상이나 영향력을 새삼 언급할 필요 없는 ‘거인’ ‘송창식’의 노래를 다루기 때문이고, 그것을 부른 이 역시 스스로 뛰어난 불세출의 보컬리스트이자 K-스탠더드의 기수나 다름없는 ‘말로’인 까닭이다. 진작 나왔어야 할 송창식 헌정 앨범이 다행히 그의 생전 최초로 나왔다는 점, ‘송북’이라는 제목을 통해 위대한 ‘퍼포머’로서만이 아닌 독보적인 ‘송라이터’로서의 송창식을 조명했다는 점 또한 [송창식 송북]을 돋보이게 했다. 첫 트랙 ‘가나다라’부터 송창식의 다채로운 레퍼토리를 관통하는 진한 페이소스가 이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당당히 자기 목소리로 풀어낸 말로의 편곡 및 보컬과 만나 짜릿한 스파크를 일으킨다. 뒤를 이어 송창식이 두 번째 코러스에 합류해 감동을 더하는 ‘우리는’이나 원곡의 의연한 비장미를 여유와 그늘이 공존하는 비탄으로 뒤바꾼 ‘피리 부는 사나이’는 가요의 범주를 늘 아득히 벗어나 있던 송창식의 악곡과 ‘한국적 재즈’라는 수식을 항상 따라붙던 말로의 교감이 어떤 시너지를 발휘하는지 증명한다. 그렇게 누구에게나 잘 알려진 곡부터 알려지지 않은 노래까지 무려 스물두 곡이 이어지며 송창식을 향한, 본 작업에 대한 반가움과 존경을 더욱더 깊게 한다. _정병욱





서보경 [내면의 영화]

[내면의 영화]는 색소포니스트 서보경을 중심으로 한 쿼텟이 함께 완성한 작품이다. 리더 서보경은 내면에 담긴 감정을 음으로 표현하는 재주가 남다른 인물로 클라리넷을 연상하게 만드는 연주의 톤이 매력적인 뮤지션이다. 고등학교 시절에 음악을 시작했던 만큼 서보경은 음을 전개하는 방식의 고저가 강렬한 편이며, 보컬을 전공했던 이력에서 나타나듯 색소폰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방법 역시 남다른 장점을 지녔다. 앨범 [내면의 영화]는 ‘내면에 담긴 아름다운 색채’를 연상하게 만드는 제목처럼 영화(英華)스러운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앨범은 일상 속에서 일어나고 경험할 수 있는 몇 개의 상황을 제목으로 설정한 정겨움이 돋보인다. 6개의 트랙 가운데 피아노와 색소폰이 대화하듯 펼쳐지는 ‘부모, 어른, 아이([P],[A],[C])’와 삶에 대한 온유한 의식을 표현해낸 ‘나의 꽃(My Flower)’은 인상적이다. 서보경의 나지막하고 미세한 연주의 색감은 ‘미로(Maze)’에서 점정을 이룬다. 또한 이한얼의 피아노와 김종현의 드럼으로 연결되는 후반부의 프레이즈 전개는 연주의 생생함을 안정되게 전달하는 묘미를 지니고 있다. 물론 역동적인 서정을 지닌 ‘늘어나는 나무(Decalcomanie)’ 역시 놓칠 수 없는 연주를 담고 있다. _고종석





서수진 [Colorist]

서수진은 앨범을 발매할 때마다 정점을 갱신하는 연주자이다. 데뷔 앨범부터 특유의 진지한 음악성을 보여주었던 그녀는 앨범마다 이슈를 만들어내며 어느덧 한국 재즈계의 중요한 연주자로 자리 잡았다. 직전 앨범에서 ‘코드리스 쿼텟’이라는 화성 악기가 배제된 형태의 음악을 들려주더니 이번 앨범에서는 ‘컬러리스 트리오’라는 과감하고도 표현주의적인 음악을 들려준다. 모티브가 주어지고 그것을 함께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 가운데서 이들이 보여주는 인터플레이는 날 선 표현을 거침없이 하면서도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게 한다. 전반적으로는 아방가르드한 느낌이 강하지만 전통적인 트리오 구성이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형식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도록 하는 것이 이들 트리오의 특징이다. ‘색채를 입히는 사람’이라는 뜻의 앨범 제목처럼 음이 만들어내는 시각적 이미지의 강렬함을 통해 음의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한 이 앨범은 서수진의 음악성이 한층 더 단단해지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과감한 색채를 사용하면서도 형태를 무너뜨리지 않고 그대로 살린 그림이 그려진 앨범 표지는 서수진의 현재 음악적 관심사와 앞으로의 방향을 가늠해볼 수 있는 힌트로 보인다. _이상희





윱 반 라인 [Blow Out]

유럽의 여러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펼치던 윱 반 라인(Joep Van Rhijn)은 2013년 이후 울산재즈페스티벌과 자라섬재즈페스티벌 등에서 공연을 진행했다. 한국에 안착한 그는 국내 재즈 씬에서 레코딩과 라이브 세션으로 왕성한 기록을 보이고 있다. 그의 연주는 블루지하면서도 펑키하며 그루브한 감각이 매력적인 연주가 특징이며 결이 깊은 트럼펫 사운드의 또 다른 영역을 확장하려는 스타일까지 지니고 있다. 그는 2016년 전용준(피아노), 송인섭(베이스)과 함께 윱 반 라인 트리오를 결성해서 [Paper Planes], [Trust]를 차례로 발표했다. [Blow Out]은 샤프하고 강렬했던 기존 앨범들과 달리 우아한 트럼펫 음색과 서정적이고 청량한 연주를 표방하려는 윱 반 라인의 세 번째 작품이다. 앨범에는 전위적인 듯 정교하며, 전통적이면서도 강렬한 임팩트를 지닌 음악들로 채워져 있다. 특히 이번 음반에서 욥 반 라인의 연주는 찰리 헤이든이 1983년에 발표한 [The Ballad Of The Fallen]에서의 마이클 맨틀러를 연상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붓으로 채색하듯 유려함이 빛나는 9개의 수록곡은 전통과 프리, 아방가르드, 애시드 재즈의 정취를 다채롭게 연결해서 완성되었다. 이는 타이틀곡 ‘Blow Out’과 ‘Empathy’, ‘Splish Splash’ 등의 트랙에서 분명하게 확인된다. 2020년을 빛낸 작품임과 동시에 향후에도 기억될 수작이다. _고종석





이선재, 김은영, 석다연 [Pulse Theory]

지난 2020년 재즈계의 앨범 발매량은 코로나19 대유행의 영향으로 줄었다. 한국 재즈계는 전년 대비 50% 수준으로 줄었다. 그런 중에도 아방가르드/프리 재즈 계열의 앨범의 비중이 높은 것은 기이한 일이다. 국내 재즈 애호가들이 적은 만큼 폭넓은 감상자를 지향하기보다는 연주자 자신에 충실한 앨범을 만드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일까? 그 가운데 이선재는 여러 연주자와의 만남에서 오는 순간적인 충돌, 조화에 집중한 자유로운 연주로 프리 재즈의 참맛을 느끼게 해주었다. 앨범 [Pulse Theory]는 피아니스트 김은영, 드러머 석다연과 게토 얼라이브에서 펼친 50여 분간의 연주를 담고 있다. 여기서 세 연주자는 프리 재즈 연주임에도 매우 조화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무런 약속도 없었기에 서로를 더 면밀히 관찰하며 연주했다고 할까? 그래서 이 앨범은 각 연주자의 솔로만큼이나 배려가 돋보인다. 한 악기가 전면에 나설 때 다른 두 악기가 그에 맞추어 움직이는데 그 중심의 변화와 관계의 지속이 긴장 가득한 연주를 끝까지 감상하게 만들었다. 보통 프리 재즈 하면 어지러운 연주를 떠오르게 하는데 이 세 연주자의 호흡은 자유와 무질서는 분명 다른 것임을 생각하게 했다. _낯선 청춘





정수민 [통감]

정수민은 꾸준히 세상과 이야기하고, 또 세상과 이야기한다. 첫 정규 앨범 [Neoliberalism]이 이번 앨범에 비해 좀 더 직접적으로 아픈 곳을 얘기했다면, 두 번째 앨범 [통감]은 그렇게 아픈 세상을 끌어안고 함께 그 자리에서 감정을 나누는 듯하다. 민중가요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듯한 ‘동지가’가 앨범의 첫 문을 열고, 이후 바로 지난 앨범 수록곡 ‘강남 478’을 김오키새턴발라드와 함께 긴 호흡의 ‘강남 478 (225-8)’로 선보인다. 강남 478은 강남구 양재대로 478, 구룡마을로 불리는 판자촌의 주소다. 누군가에게 서울은 발전하고 아름다워지는 곳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하루가 멀다고 추억의 장소는 물론 삶의 터전까지 잃는 곳이다. 그는 단순히 이러한 현상을 음악으로 풀어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직접 발로 뛰고, 그곳에서 연주한다. 그러한 정신이 깃든 음악은 고스란히 표현으로 이어진다. 정수민의 앨범에는 단순히 메시지만 있지 않다. 전자음악의 요소가 결합한 ‘살아가다’도 있지만, 긴 호흡의 곡이 지닌 전개에는 긴장과 애환이, 우리가 처한 문제에 관하여 고민할 여지가 가득 담겨 있다. _박준우





제희 [On The Wind (Ethnic Project_Europe)]

민속음악은 구전(舊傳)이며, 동시에 구전(口傳)이다. 이 얘기는 민속음악이 그것의 발화자에 따른 변주와 변용을 넉넉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인데, 이번 앨범은 그 지점을 완전하게 장악했다. 구전되어온 민속 자장가(‘Greek Lullaby’, ‘French Lullaby’)를 편곡하여 앨범 중간에 나란히 배치한 점이 놀라운 것은 이 두 곡 외 나머지 곡들이 제희의 자작곡이며, 전체적인 흐름에서 덜컹거리거나 결락된 요소를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침엽수림이 형성되어 있는 독일의 슈바르츠발트(‘Black Forest’)와 과거 헝가리 시절부터 현재 루마니아까지의 시기쇼아라(‘Sighișoara’), 비가(悲歌, ‘Elegia’)와 ‘Podróż’로 내면과 인생의 행방을 여로에 빗댄 우직한 기행을 끝으로 집에 돌아가기(‘Coming Home’)까지. 2020년에 제희의 음악을 만나 갇힌 시간과 공간 속에 있다는 답답함을 잠시나마 덜어냈다. 지구적 아픔을 공유하는 시대에, 어쩌면 이 음악을 통해 우리는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자유롭게 호흡할 수 있는 공간에 우리를 위치시킨다는, 지금 우리에게 가장 반가운 위로의 다른 말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_조원용





찰리정 [Sein’s Blues]

기타 한 대로 이렇게 말을 걸 수 있다면 다른 악기와의 화합마저 일견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이미 자신의 기타와 두 손으로 모든 말을 할 수 있으니 그 외의 것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연주자 자신이 그렇게 생각할 수는 있지만, 음악을 듣는 사람까지 솔로 기타의 언어에서 완결성을 체감하게 만드는 것은 다른 차원의 얘기다. 찰리정은 그걸 해낸다. 개인사를 담은 블루스곡 ‘Sein’s Blues’에는 아이의 생동감을 그의 언어로 표현했고 ‘Sein’s Walk’ 역시 마찬가지다. 작은 생명이 탄생하는 기쁨 뒤에 어떤 종류의 애잔함이 있고, 블루스가 가진 뉘앙스는 이 미묘한 경계에서 흘러나온다. ‘Someone To Watch Over Me’ 같은 스탠더드곡에서 과장되지 않는 톤의 편안함은 가장 탁월한 형태로 귓속을 파고든다. 레코딩 역시 기타의 질감을 자연스럽고 뚜렷하게 살렸다. 솔로 앨범 자체가 귀한 한국 재즈 씬에서, 그 의미보다 귀한 연주가 이 앨범에 있다. 바깥의 이름을 빌려와 설명할 필요가 없는 수준이기에 더욱 가치 있다. 그냥 그는 찰리정이고, 찰리정의 음악을 한다. 앞으로 그의 솔로 연작들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이유 역시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얘기를 자기 목소리로 들려주기 때문이다. _조원용




하인애 [In My Window]

하인애라는 음악가가 이 앨범을 통해 전달하는 것이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뚜렷하게 드러나는 정서이며 다른 하나는 곡을 쓰고 연주를, 앨범 전체를 조율하는 작곡가와 프로듀서로서의 역량이다. 보컬리스트라는 정체성을 뒤로하고 대신 회화와 표현에 집중한 결과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여기에 (상대적으로) 추상적이지만 메시지도 더했으며, 동시대를 사는 음악가 자기 세대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자신의 정규 2집에서 자신 대신 음악을 채웠고, 음악 자체도 욕심 대신 덜어내는 작업을 택한 듯하다. 자신의 눈으로 밖을 바라본 시선은 물론 각박하고 고단한, 어둡고 우울한 정서를 표현하는 과정에서도 가득 담아내는 대신 차분하게, 꾹꾹 누르며 진행하는 형식을 택하며 미적인 부분에서도 완성도를 갖출 수 있었다. 하인애 본인이 전면에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외라면 의외지만 뛰어난 음악가들을 자신의 의도에 맞게 조율한 것도 능력이다. 회화와 함께 한 장의 정규 앨범 이상으로 더 큰 것을 그려내고 구현하는 데 성공한 그의 작품은 자신의 서사에서 시작해 세상을 이야기했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물론 부족한 점도 보이지만, 큰 작품의 규모가 지니는 힘이 자연스럽게 그러한 부분을 완충한다. _박준우





2020 해외 해외 앨범 베스트 10

* 순위 없이 ABC 순이다.




Ambrose Akinmusire [On The Tender Spot Of Every Calloused Moment]

반년 만에 다시 듣는 앰브로스 아킨무시리의 앨범에서 가장 먼저 떠올린 말은 ‘집중력’이었다. 연주하는 이들의 그것과, 그로 인해 듣는 이들까지 깊은 몰입의 시간을 체험하게 한다는 면에서 이 작품은 성과가 크다. 새 앨범을 발표할 때마다 다양한 주제의식으로 이슈메이커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던 그가 오랜만에 시도한 트럼펫 쿼텟 중심의 연주. 전통과 실험 사이에서 벌인 줄타기가 옹골찬 사운드로 치환됐다. 인종차별에 관련된 미국의 상황이 배경으로 작용했지만, 지난 반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갈등의 면면을 떠올리며 들어보니 적잖은 공감의 메커니즘이 진행된다. 앨범에 드리운 암울함과 분노, 여기에 일말의 위로까지. 다들 그랬겠지만 지난여름에만 해도 우리는 희망을 놓지 않고 있었다. 위기는 지나갔으려니 했다. 꼭 코로나19 얘기만 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지금은 겨울을 보내는 게 벅차 보인다. 이 고비를 넘긴다 해도 다가올 새봄이 연분홍 꽃망울로 가득하리라 기대하긴 쉽지 않다. 내년 봄에 다시 들어보면 이 앨범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앰브로스 아킨무시리가 블루노트에서 발표한 첫 앨범의 재킷 디자인과 이 앨범의 그것은 유사하면서도 다르다. 한번 찾아보시라. _김현준





Brad Mehldau [Suite: April 2020]

시간이 흐른 뒤 2020년을 회상한다면, 브래드 멜다우의 [Suite: April 2020]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뉴욕과 암스테르담을 오가며 ‘눈코 뜰 새 없이’ 생활하던 브래드 멜다우는 코로나19로 몇 달간 암스테르담에 머물게 된다.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이 멈췄고, 4월은 그의 마음처럼 스산하고 우울하다. 브래드 멜다우는 아침에 일어나 사람들과 거리를 둔 채 밖을 거닐고, 멈추고, 기억을 회상하고, 기다리고, 그리워하며 하루를 보낸다. 정지, 불확실성, 갈망, 기다림 같은 단어가 일상을 파고든다. 12개의 모음곡에 이어지는 커버곡 ‘Don't Let It Bring You Down’, ‘New York State Of Mind’, ‘Look For The Silver Lining’은 이질적으로 보이지만, 이 곡들까지 들어야 앨범이 완성된다.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기 때문이다. 영화 〈기생충〉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문장을 빌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수상소감을 밝혔다. 브래드 멜다우 자신의 이야기에서 시작된 [Suite: April 2020] 역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며, 가장 보편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들려준다. _안민용





Charles Lloyd [8: Kindred Spirits]

은혜롭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찰스 로이드의 생일날 기록. 그는 여든 번째 생일에 색소폰을 든 채 여전히 무대를 누빈다. 고향 산타 바바라, 로베로 극장에서 열린 파티엔 재즈계 화려한 게스트들이 모였다. 재즈 씬의 미래 줄리안 라지, 제럴드 클레이튼, 에릭 할랜드, 루벤 로저스가 2018년 3월 15일, 이 날만을 위해 합을 맞췄고, 때론 블루노트의 수장 돈 워스가 베이스를, 부커 티 존스가 오르간을 연주했다. 이런 호사스러운 라이브 실황을 들을 수 있는 건 우리 몫의 은혜다. 세트리스트는 4곡. 간결하지만 긴 역사의 알맹이만 추렸다. 첫 곡으로는 ‘Dream Weaver’(1966)가 그 뒤를 ‘Requiem’(1992), ‘La Llorona’(2016), ‘Part 5, Ruminations’(2017)가 잇는다. 찰스 로이드 디스코그래피에 있어 주요한 지점에 있는 곡들이다. 당시 키스 재럿이 피아노를 연주했던 ‘Dream Weaver’를 줄리안 라지가 어떻게 해석하는지, 또는 온화해진 구석이 있는 찰스 로이드의 색소폰 연주에 귀 기울여본다. 새삼 귀중하다. 찰스 로이드란 거장의 변천사를 계속해서 들을 수 있음이. _신샘이





Jeff Parker & The New Breed [Suite For Max Brown]

2016년 [The New Breed]의 성공에 이은 두 번째 프로젝트로 자신의 어머니인 맥스 브라운에게 헌정하는 작품이다. 자신의 리더작보다는 세션에 치중했던 1967년생 기타리스트, 이제 50세를 훌쩍 넘겨 더는 새로울 게 없을 것 같은 중년의 뮤지션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이유를 본인의 경험과 노력이 뒤늦게 빛을 발했다는 진부한 스토리로 포장하고 싶지는 않다. 그보단 이제야 그의 스타일과 철학이 시카고 등을 중심으로 활발히 벌어지고 있는 뉴 재즈의 움직임과 만나 진정한 ‘합’을 이루었다는 표현이 더 적확할 것이다. 본작은 자신의 자작곡에 여러 악기를 직접 연주한 뒤 멜로디를 만들고 여기에 다른 뮤지션들의 연주를 얹는 과정을 거쳤는데, “나는 재즈 연주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제프 파커의 고백처럼 앨범의 편집과 제작의 방식은 재즈보다는 힙합이나 일렉트로닉스에 가까우며, 결과물의 스펙트럼 역시 록, 소울, 펑크(funk), 아메리칸 에스닉 등에 유기적으로 펼쳐져 있다. 재즈를 넘어 흑인음악 전반을 아우르며 또 다른 정반합을 완성해 가려는 미국 재즈판의 새로운 모색 중에 만난 또 하나의 문제작으로, 재즈를 기반으로 한 음악 듣기를 시도하는 나와 〈재즈피플〉의 청자들에게 깊은 고민과 성찰을 안겨주는 지점이기도 하다. _허재훈





Jimmy Heath [Love Letter]

사망 소식을 접하고 나서야 존재가 커지는 연주자들이 있다. 리스트에는 있지만 순위에 밀려 듣지 못하다가, 뒤늦게 그가 남긴 성실하고 훌륭한 음악에 감탄하는 것이다. 내게는 2020년 1월 사망한 지미 히스가 그런 경우였다. 히스 브라더스의 둘째, ‘리틀 버드’라는 별명, 작곡가로서의 능력은 지나치기 쉽지만 그것이 신뢰와 안정감이라는 그의 가장 큰 재능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Love Letter]는 지미 히스가 남긴 마지막 앨범이다. 첫 곡 ‘Ballad From Upper Neighbors Suite’부터 지미 히스는 약간은 힘에 부치지만 노련한 색소폰 연주로 리드하고 피아니스트 캐니 배런, 기타리스트 러셀 말론, 비브라포니스트 몬테 크로포트, 베이시스트 데이비드 웡, 드러머 루이스 내시가 믿음직스럽게 서포트한다. 피처링으로 참여한 세실 맥로린 살반트, 윈튼 마살리스, 그레고리 포터는 적절한 시점에 따뜻한 색감을 더했다. 사실 앨범은 밋밋하다. 귀에 걸리는 것도 거슬리는 것도 없이 한 시간 남짓이 흘러간다. 모든 이들이 지미 히스의 연주를 따라가는 것도 못내 아쉽다. 시간이 흘러 이 앨범이 지미 히스의 대표작이 되거나 명반으로 기억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노장이 온 힘을 다해 건네는 위로가 음악 이상의 감동으로 다가온다. _안민용




Joshua Redman, Brad Mehldau, Christian McBride, Brian Blade [RoundAgain]

지인과 이런 얘길 나눴다. “이처럼 좋은 곡들이면 스타일이 새롭지 않아도 지지하겠다.” 돌이켜보니 나는 그 말 한마디로 이 앨범에 대한 생각을 모두 집약했다. 꿈같은 청년기를 함께한 오랜 벗들이 중년이 돼 다시 조우한 것도 화제였으며, 무엇보다 앨범의 주인공인 네 사람이 파트별로 지난 십수 년간 우리 시대의 재즈를 이끌어온 대표적인 기득권의 스타들이란 사실은 호사가들의 수다를 끌어내기에 적합했다. 이 앨범은 그동안 많은 재즈 팬들이 이들에게 선사했던 ‘무책임할 정도로 맹목적인’ 지지가 (다행스럽게도) 충분히 설득력 있는 것이었음을 입증해냈다. 버릴 곡 하나 없이, 모든 솔로가 있어야 할 곳에 정확히 위치한, 자신들의 이름을 누가 왜 기억하고 있는지 알고 있음을 과시한, 공동리더작으로서의 미덕까지 겸비한, 10년쯤 지나 다시 들어도 꽤 좋다고 느낄 법한, 아주 정갈한 앨범이다. 독자들을 위한 권언 하나. 지난 한 해 〈재즈피플〉에 게재된 많은 리뷰 중에서 눈에 띄는 아주 좋은 글이 하나 있었다. 10월호에 실려 있던, 바로 이 앨범에 대한 정병욱 필자의 글이었다. 객관의 힘과 주관의 소중함을 모두 일깨운 그 리뷰가 〈재즈피플〉의 존재가치를 확인시켰다. _김현준





Keith Jarrett [Budapest Concert]

키스 재럿의 솔로 콘서트 앨범은 언제나 경이롭다. 인간이 짧은 찰나에 얼마나 큰 꿈을 꿀 수 있는지 확인하게 한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선보인 솔로 콘서트 앨범에 담긴 연주들은 여전히 놀라웠지만 신선도가 다소 떨어졌다. 연주는 새롭지만 유사한 재료로 비슷한 요리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사실 2016년 부다페스트 공연을 담은 이 앨범도 그랬다. 특히나 같은 해 있었던 뮌헨 공연 연주와 유사한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설령 같은 곡이라도 매번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이 재즈인 것처럼 이번 앨범의 연주는 익숙함을 뒤로하고 황홀경으로 감상자를 이끌기에 충분했다. 위태로운 긴장과 불현듯 반짝이는 멜로디가 교차하는 연주는 순간의 발화가 아닌 하나의 여정에 가까웠다. 계속 땅을 파 내려가 결국엔 황금을 발견하는 광부의 힘든 과정과도 같았다. 안타까운 점은 과거에는 몇 미터만 파도 금이 나왔지만 이제는 더욱 깊이 파야 한다는 것이었다. 막연함에 익숙하다지만 이것은 그로서도 부담이 되는 일일 것이다. 마침 앨범 발매에 즈음해 그가 2018년 뇌졸중으로 인해 왼팔이 마비되어 연주를 못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따라서 어쩌면 이번 앨범은 광부 키스 재럿이 캐낸 마지막 황금을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_낯선 청춘





Maria Schneider Orchestra [Data Lords]

듣는 순간, 상상력 세포가 몸을 푼다. [Data Lords]는 음악을 통한 상상의 즐거움을 안긴다. ‘월광 소나타’를 듣고 달빛이 비치는 물결을 떠올리던 경험과 비슷하다. ‘잃어버린 세상’, ‘인공위성’, ‘돌의 노래’, ‘파랑새’ 등. 곡 제목은 상상의 이정표로 작동하며 듣는 이가 길을 잃지 않게 한다. 마리아 슈나이더는 세상을 둘로 나눈다. 첫 번째 디스크에선 데이터 조작과 감시가 이뤄지는 디지털 세상을 폭로한다. 두 번째 장에선 그가 긍정하는 세상, 자연에서 찾은 즐거움을 다룬다. 사운드만으로 무한한 상상을 가능케 하는 것. 마리아 슈나이더가 일궈온 성취 중 하나다. 섬세하게 표현된 대상의 성격이나 질감, 메시지, 이야기를 하나하나 느끼다 보면 두 장짜리 디스크가 끝날 때까지 온몸의 감각은 최대치로 유지된다. 가장 흥미로웠던 건 ‘CQ CQ, Is Anybody There?’의 소리. 플루트, 트럼펫 그리고 프로그래밍한 소리로 아마추어 라디오가 보내는 모스 부호와 AI가 교신하는 이야기를 풀어간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앨범의 주제의식이 앨범 발매 형태에도 영향을 미친 점이다. 짜릿한 경험을 선사할 이 앨범은 디지털 스트리밍 불가. _신샘이





Pat Metheny [From This Place]

최근의 오케스트레이션 프로젝트와 유니티 밴드, 그리고 기타 솔로 작품들을 지나 새롭게 만나본 팻 메시니의 이번 작품은 밀도감 높게 전개되는 멜로디와 현악 오케스트라를 활용한 웅장한 사운드스케이프, 그리고 이를 통해 큰 울림과 서사구조를 완성한 것이 특징으로, 1990년대 게펜 시절의 팻 메시니 그룹(PMG)이나 [Secret Story]를 연상시키는 기시감과 낯익은 어법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작품은 내가 평생 기다려온 기록 중 하나다. 그간 내가 관심을 가져왔던 다양한 표현을 반영하는 일종의 음악적 절정이며, 밴드 스탠드에서 수백 밤을 함께 보낸 뮤지션들과 함께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이다”라는 팻 메시니의 고백처럼 그의 40여 년 음악 인생에서 얻은 다양한 음악적 통찰력을 집약한 거대한 서사시이며 동시에 자서전과 같은 작품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이전의 오케스트레이션 프로젝트가 주는 ‘와우’ 대신 진지한 세계관과 완성도로 또 한 번 우리에게 잔잔한 충격을 안긴다. 엄밀히 팻 메시니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감과 기대를 생각하면 이전의 작품들보다 뛰어난가에 대해선 찬반 여론이 갈릴 것이다. 한편으론 더 이상 그에게서 새로움을 기대할 수 있을까? 아니 환갑을 훌쩍 넘긴 그에게 과연 그런 기대를 하는 게 맞을까? 그에게 깊은 경외감을 지닌 팬들일수록 이런 질문을 해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으리라 예상한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평가는 좀 쉬울 것이다. 이 작품이 팻 메시니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산물이었다면 올해를 대표하는 앨범의 첫 손에 꼽기에 부족함은 없다. 여전히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고 있는 노장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_허재훈




Ron Miles [Rainbow Sign]

지난 앨범부터 분위기가 좋았다. 전작 [I Am A Man]은 론 마일스와 오랜 시간 함께해 온 빌 프리셀, 브라이언 블레이드를 비롯해 진취적인 피아니스트 제이슨 모란, 그리고 최근 빌 프리셀과 깊은 음악적 교감을 나누고 있는 베이시스트 토마스 모건이 앙상블을 이루었다. 이들의 연주는 화려하진 않지만 따스함과 진중함이 공존하는 묘한 매력을 지녔다. 그 멤버 그대로 함께한 [Rainbow Sign]은 [I Am A Man]의 후속작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비슷한 톤의 음악을 유지한다. 론 마일스는 이 앨범의 리더라기보다 한 명의 사이드맨으로 보일 정도로 자신에게 주어진 분량만을 소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론 마일스가 앨범의 리더라 말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작곡 덕분이다. 작곡을 통해 함께한 연주자들이 역량을 맘껏 펼칠 수 있는 장을 만들어냈다. 그는 의무적으로 연주의 선두에 서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연주하지 않는 순간에는 동료들의 연주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들이 풀어나가는 이야기를 듣는 재미에 푹 빠져 있는 사람처럼 말이다. 이러한 미덕은 듣는 이에게도 론 마일스의 자리에서 연주의 현장에 함께하는 듯한 울림을 선사한다. _이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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