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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론 마일스 [Rainbow Sign]
제목 [리뷰] 론 마일스 [Rainbow Sign] 2020-12-21

   

글 김현준

   

험한 세상 속에서 짐 진 모든 이들, 이 안에서 휴식하라

★★★★

   

콜로라도에서 지역 재즈계를 이끌고 있는 중진급 코네티스트 론 마일스. 3년 만에 발표된 그의 새 앨범을 들으며 나는 또 한 번 연주자란 존재들이 참 부러워졌다. 짧은 시간이었겠지만 스튜디오 안에서나마 얼마나 행복했을까. 물론 모든 음악인이 이런 기회를 얻지는 못한다. 그 짜릿함을 제대로 맛보지도 못한 채 재즈를 떠나는 연주자들이 훨씬 더 많다는 걸 잘 안다.

   

빌 프리셀, 제이슨 모란, 토마스 모건, 그리고 브라이언 블레이드. 같은 멤버로 녹음한 론 마일스의 전작 [I Am A Man](2017)은 그해 발표된 최고작 중 하나였다. 사실 론 마일스의 음악 스타일은 1990년대 말에 이미 완성됐다. 다작은 아니지만 꾸준히 녹음에 임했고, 적잖은 선후배들이 그의 진가를 알아봤다. 예컨대 빌 프리셀은 20여 년간 그에게 곁을 준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그럼에도 론 마일스의 음악은 분명 과소평가됐다. 처음 블루노트의 로고를 달게 된 이번과 달리 그의 작품들이 주로 마이너 레이블에서 발표됐던 탓인지도 모른다.

   

더없이 따스하다. 이번 작품은 지금껏 론 마일스가 세상에 내놓은 결과물 중 가장 인간적이고 서정적이다. 물론 그의 음악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기대했을 쿨한 느낌의 시니컬한 위트가 이번에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키득거리며 미소 지을 대목이 여럿이다. 사운드도 예전과 같다. 전작이 과시했던 다섯 연주자의 조화와 시너지는 이 앨범에서도 워낙 탁월해, 그것만으로도 한참 동안 얘기할 미학적 이슈가 된다. 이 모든 성과 위에 더해진 결정적 플러스 요인, 듣는 이의 마음을 시도 때도 없이 헤집어놓는 뭉클한 감성의 경이로운 작곡이다.

   


이런 비유에 공감할지 모르지만, 만약 내가 팝 음악 분야의 작곡가였다면 이 앨범에 실린 여러 곡을 표절하고 싶은 유혹에 빠졌을 것이다. 사실 작곡이야말로 론 마일스가 지닌 최고의 강점이다. 반면 동시대를 풍미한 다른 트럼페터들에 비해 다소 내성적인 연주 스타일이 그의 존재를 덜 부각시킨 원인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앨범에 실린 테마의 흐름은 예외 없이 상당한 감동을 안겨준다. 음 하나하나가 명료한 위치에 자리하면서도 적잖은 부가 이미지를 파생시키며 상상력을 자극한다. 재즈에서 작곡이 성취할 수 있는 최고의 선에 이른 셈이다.

   

함께한 동료들의 작지만 옹골찬 아이디어들 또한 앨범을 빛내는 핵심 요소다. 녹음하던 날 상당히 좋은 기운이 이들에게 드리웠던 걸까. ‘곡을 이렇게 풀어갈 수도 있겠구나’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러한 성과 또한 론 마일스의 작곡이 불러온 결과다. 좋은 작곡이 좋은 연주를 낳는 이상적인 선순환.

   

리뷰를 마무리하다가 뒤늦게 보도자료를 들춰봤다. 한 문장이 시선을 끈다. 론 마일스는 이 앨범의 곡들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던 2018년 여름, 그를 간호하며” 썼단다. 무지개는 누구에게나 맑은 내일을 기대하게 한다. 방주에 선 노아가 대홍수의 끝을 알게 된 것도 무지개를 통해서였다. [Rainbow Sign]은 2020년의 재즈가 선사한 더없이 아름다운 위로다. 십수 년 전에 썼던, 어느 리뷰를 마무리한 문장이 다시 떠오른다. “험한 세상 속에서 짐 진 모든 이들, 이 안에서 휴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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