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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반세기를 이끈 위대한 이정표, [Bitches Brew]  
제목 지난 반세기를 이끈 위대한 이정표, [Bitches Brew]   2020-06-02


김제홍

사진 제공 소니뮤직


사회와 문화 전반에 걸쳐 퓨전이라는 말을 흔히들 사용한다. 사전적 의미인 융합이란 뜻 그대로, 평소 이질적인 두 가지 이상의 요소가 만나 하나의 새로운 스타일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변화의 흐름이 등장할 때면 기존의 헤게모니와 권력 이동에 대한 의지가 부딪히고 이동하는 정반합 과정을 거치게 된다. 아시다시피 모든 음악 장르 중 변화의 부침이 가장 심한 쪽이 재즈였다. 꿈틀거리고 변화하며 진화를 요구하는 역동성을 태생적으로 잉태한 때문으로 생각한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비밥과 하드밥의 움직임에도 한 발이 걸쳤고, 쿨 재즈와 모달 재즈의 태동에 결정적인 작품을 발표했으며, 평생을 새로운 음악에 대한 도전을 이어갔던 인물이다. 심지어 사후 발매된 유작 앨범으로 래퍼 이지 모 비와 함께한 [Doo-Bop]는 힙합/애시드 재즈의 선봉이기까지 했으니 마지막까지 기존에 대한 대칭적 스타일을 고민했던 바였다.


그가 무엇인가를 추구할 때 하늘에서 뚝 떨어진 아이디어를 들고나온 것 같지는 않다. 쿨 재즈는 단어에 대한 그 의미를 의도하지도 고려하지도 않았고, 존 루이스, 제리 멀리건 등과 함께 한 편곡과 앙상블에 대한 접근의 결과였다. 모달 재즈는 조지 러셀이 이미 구축했던 이론의 세계에 미니멀하면서 수평적 확장성을 염두에 둔 즉흥연주 진행 방향에 대한 의문이었다. 그리고 그가 시도한 변화와 혁명에는 사이드맨이나 조력자들의 역할이 상당했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포화상태에 이른 현재의 한계점을 포착하고, 흐름을 주도하는 터닝포인트를 포착하고 문제 제기가 가능한 천재성과 화제성 모두 갖춘 인물이었다 하겠다.




퓨전 재즈가 태동한 시대


1970년 [Bitches Brew]가 발매되고 올해 50주년을 맞이한다. 퓨전 재즈란 일종의 방법과 스타일의 융합이며, 퓨전 재즈의 효시라는 [Bitches Brew]가 녹음될 당시는 재즈 록(jazz rock)이라고 일컬었다. 전자악기의 보급으로 록에서 사용하던 강렬한 비트가 도입되었고, 팝, 클래식, 아프리카 리듬, 라틴, 소울에서의 영향 등 음악적 동기를 위해 필요하다고 되면 장르나 스타일을 불문하고 그 정수와 형식을 차용했으며, 훗날 퓨전 재즈는 하나의 사조로 정착되었다.


[Birth Of The Cool], [Kind Of Blue]는 충격은 있었지만, 호불호에 있어 대부분 ‘호’에 가까웠다면 [Bitches Brew]는 팬이나 비평가들 사이에서 평은 극과 극으로 나뉘었다. 재즈의 역사를 다룬 다수의 재즈평론가 혹은 완고한 음악사학자들은 마일스 데이비스와 손절까지 언급하며 이 앨범 이후의 마일스에 대한 평가 자체를 거부하기도 했다.


대체로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거부감이나 호기심은 어떤 분야에서든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갔을 때 여기저기에 튀어나오는 특수함 또는 특이함은 생경함이 될 수도 있고 놀라움이 되기도 하며, 왜? 굳이? 라는 물음과 함께 자신의 판단에 의한 정당화 과정을 거치려 한다. 하나의 현상은 분명 전조가 있고 동기가 존재하며 일련의 사건들이 연계된다. 그래서, 아직도 시작하지 않은 앨범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과정과 주변을 더 고찰해 보고자 한다.



[Bitches Brew]의 녹음은 1969년에 진행됐다. 그러면 그 이전인 1967년이라는 연도를 주의 깊게 살펴보자. 샌프란시스코에서 비롯된 히피 무브먼트가 확산 일로에 있었고, 프랑스에서는 대학생,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자율, 자치, 연대’로 상징되는 68혁명의 전야를 맞이하고 있다. 또한, 볼리비아 숲속에서 또 한 번의 혁명을 꿈꾸던 라틴 아메리카 민중의 영웅 체 게바라가 체포되어 즉결 처형을 당한 해였다. 그리고 음악 신에서는, 지미 헨드릭스가 등장했으며, 비틀스는 문제작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발매했다. 데이빗 보위는 약물, 사회적 문제를 스트링, 브라스, 시타르 등 팝에서는 보편적이지 않는 편성과 스타일로 무장한 셀프타이틀 앨범 1, 2에 담아 녹음했고 1을 발매했다.


그리고 재즈 쪽으로 더 시야를 좁혀 보면 1967년 존 콜트레인의 사망이라는 큰 사건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의 죽음과 함께 악기 하나를 들고 활화산 같은 멜로디를 뿜어내며, 깊은 감성을 표현하는 거장들이 전체를 이끌어가던 시대의 종언을 고했으며, 동시다발적으로 새로운 물결이 서서히 일어났다. 그중에는 영국 프로그래시브 록의 융성과 한 몸에 동서양의 모든 음악을 체득한 괴물 기타리스트 존 맥러플린이 등장했으며, 미국 중부에서는 허비 맨, 래리 코리엘이 재즈에 컨트리, 블루스, 록적인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면서 흥청거리는 느낌의 소위 말하는 버블 사운드를 선보였다. 한편, 이지리스닝 재즈의 효시라 일컫는 CTI(Creed Taylor Inc.)이 발족되면서, 이 레이블 간판인 웨스 몽고메리가 대중적인 스타로 떠오르게 되었다. 마일스 데이비스와 그 주변 인물뿐 아니라,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변화를 잉태하기 위한 몸부림이 있었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어디를 향했나


1967년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은 [Nefertiti]를 녹음했고 타이틀곡은 웨인 쇼터의 작곡이었다. 상징적으로는 제2기 퀸텟의 마지막 풀 어쿠스틱 앨범이지만 실제 음악적으로는 큰 변화가 있었다. 테마가 반복적으로 제시되는 동안 솔리스트가 등장해서 즉흥연주를 한 번도 하지 않고 리듬이 계속 즉흥적으로 변화를 유도하는 패턴이 등장한다. 이는 이후 웨더 리포트의 데뷔작 콘셉트에 대해서 조 자비눌이 언급한 ‘We always solo never solo’의 조짐이 여기서 보이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조지 벤슨이 게스트로 참여한 [Miles In The Sky]에서 일렉트릭 연주가 ‘퓨전 재즈의 메타포’라는 기준 아닌 기준들이 많지만, 내 생각에 음악적으로는 [Nefertiti]가 의미심장한 시사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Bitches Brew] 발매에 앞서 조 자비눌의 개인 작품이라 해도 무방할 [In A Silent Way]를 발표하게 된다. 이 앨범은 실험성의 의미를 곱씹게 하는 작품으로서 곳곳에 새로운 기법들이 나열되어 있다. 솔리스트 간의 즉흥연주는 배제되어 있고, 테마를 조각처럼 붙이고, 그사이에 예측 불가한 섹션을 편집하여 삽입하거나 덧칠을 했다. ‘In A Silent Way’에서 연주된 파트가 ‘It's About Time’에 등장하기도 하며, 각 솔리스트들이 임의로 리듬 파트를 믹싱하는 등 곡과 테마 즉흥연주 경계의 개념을 허무는 극한의 편집 작업이 빛을 발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원하는 분위기를 완벽히 재현해내고, 각 음의 이미지가 뚜렷하다. 그래서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일정을 잡고 녹음의 방향성을 정하고 디테일을 조율하며 지극히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던 프로듀서의 위치를 마치 제3의 멤버 혹은 영화제작에서 감독의 역할에 가까운 중요한 위치로 격상했고, 테오 마세로는 연주 외적으로 관여하는 최대치를 실현한 프로듀서로 꼽히게 되었다. 이 편집 방식은 1998년 아방가르드 재즈 베이시스트이자 허비 행콕의 [Future Shock] 제작에 참여했던 빌 라스웰이 [Panthalassa: The Music Of Miles Davis 1969–1974]에서 다시 한번 리믹싱함으로써 편집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우게 한 바도 있다.




재즈의 새로운 이정표


[Bitches Brew]는 록과 재즈의 만남이라는 단편적인 융합에 한정되지는 않는다. 즉, 일렉트릭 악기를 사용하여 사운드의 가능성을 열었고, 록적인 비트를 강조하는 데 머무른 게 아니라 재즈의 전반적인 방향에 대한 새로운 각성을 우선했다. 비틀스, 지미 헨드릭스 등이 당시에 등장했다. 프로듀서나 레이블 대표의 입장에선 록의 가능성을 재즈 시장으로 끌어오려는 상업적인 시도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뮤지션들의 접근은 다른 각도에서 이뤄졌을 것이다.


우선, 마일스 데이비스는 지미 헨드릭스에게서 큰 영감을 받았던 점은 확실해 보인다. 그는 1961년 이후 오랫동안 길 에반스와 공식적인 라이브 연주를 하지 않았었는데, 지미 헨드릭스의 등장에 충격을 받은 이 둘은 1968년 지미 헨드릭스에 관한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일시적으로 모였다. 그러나 지미 헨드릭스 사망(1970)으로 그 아이디어들을 실천하지 못했다. 이 시기인 1968년 4월 캘리포니아대학 내 그린극장에서 공연을 했고 녹음까지 계획했으나 당시 녹음테이프 전해지지 않고 있다. 이건 이 둘의 마지막 공연이었다. 당일 캐롤 킹의 히트곡 ‘Natural Woman’까지 연주했던 만큼, [Bitches Brew]로 가기 전 가스펠, 훵크, 록에 대한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적 마인드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됐을 텐데, 이걸 유실했다는 점은 참으로 아쉽다.


[Bitches Brew]는 아프리카 주술의식에서 모드, 프리 재즈까지는 아니더라도 집단즉흥연주라는 [Nefertiti]의 콘셉트를 더욱 확장하고 스타일의 모든 경계를 모두 열어두었다. 그리고 모달 재즈와 폴리리듬, 멜로디에 대한 리듬 혹은 이 반대의 편집 작업 등을, 하나의 오케스트라적인 사운드를 앨범 전체에 하나의 흐름으로 귀속시켜 집대성했던 것이다. 이는 록도 재즈도 아닌 결국 마일스 데이비스와 존 맥러플린, 조 자비눌, 웨인 쇼터, 허비 행콕 등에 의해 꽃을 피운 하나의 고유 스타일이 되었다. [Bitches Brew]에서는 복수 악기 조합에 의한 복합 리듬과 조성과 하모니가 복잡하게 얽히고 변화하면서도, 거북함으로 점철된 혼돈의 연속이 아닌 각기 다른 뉘앙스와 유기성을 지닌 채 진행된다. ‘Miles Runs The Voodoo Down’의 경우 아프리카 리듬의 원시성을 표방하면서 단순하지만 짝수와 홀수가 교차하는 폴리리듬을 재즈적인 당김음와 대치시킴으로써 주술적인 분위기와 하모니를 동시에 암시한다.



형식과 자율성의 대립도 마찬가지 일렉트릭 피아노와 기타 아래에 단순하면서 동시다발적인 리듬을 깔고, 멜로디라인은 반음계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며, 각기 다른 테이크에서 발췌한 리듬을 특정 진행에 삽입하는 믹싱 작업 등 여러 가지 시도가 이루어졌다.


이 앨범은 AABA 32마디, 12마디 블루스라는 전통적으로 행해왔던 재즈의 도식적인 진행과 완전히 결별했으며, 각자가 엄밀한 스케일을 지니지만, 전체적으로 대치상태에 놓여있고, 헤드 연주 도중에서 벌어지는 동시다발적인 퍼포먼스나 즉흥연주에서 컴핑의 개념을 모호하게 만드는 등 집단즉흥연주 조짐도 보여주기도 했다. 그리고 프로듀서의 역량과 녹음 기술이 다시 한번 제3의 뮤지션의 역할을 하게끔 했다. 결국, [Bitches Brew]는 기존 재즈의 작/편곡에 대한 개념과 사운드, 뉘앙스, 리듬과 멜로디의 인식을 뒤엎은 또 하나의 이정표인 것이다.



이 앨범을 기점으로 스타일은 다시 분화되는데, 이는 멤버들의 이탈과 재조합의 형태로 나타났다. 조 자비눌과 웨인 쇼터 그리고 체코 출신 베이시스트 밀로슬라브 비투스가 결성한 웨더 리포트와 존 맥러플린의 마하비시누 오케스트라, 칙 코리아의 리턴 투 포에버, 허비 행콕의 헤드헌터스 등 1세대 대표적인 퓨전 그룹이 모두 [Bitches Brew]에서 갈라져 나왔다. 이후 자코 파스토리우스, 팻 메시니, 브레커 브라더스, 데이비드 샌본,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 마커스 밀러 등이 등장 인기를 끌면서 재즈는 1930년대 스윙 시대에 이어 다시 한번 대중들을 품에 안게 된 초석이 되었다.




첨부파일 마일스 데이비스 [Bitches Brew].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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