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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이선재, 김은영, 석다연 [Pulse Theory]  
제목 [리뷰] 이선재, 김은영, 석다연 [Pulse Theory]   2020-04-27

김현준


놓치지 말아야 할 한국 재즈의 단면 중 하나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한국의 재즈는 건강한 서브컬처(subculture)를 낳은 적이 거의 없었다. 특정 지향의 기치를 휘날리며 독립적인 흐름을 형성할 여유가 없었던 탓이다. 음악인들이 ‘재즈인지 아닌지’에 집착했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런 현상이 빚어진 원인 중 하나는 우리 음악인의 상당수가 재즈 고유의 어법을 체득하는 데 급급했기 때문이다. 이제 핵심은, ‘재즈를 연주하는가’가 아닌, ‘어떤 재즈를 연주하는가’여야 한다.


2000년대와 다른 양상을 보인 것이 그 이후의 10년이다. 만약 2010년대 후반의 양상이 지속된다면, 훗날 우리는 이 시기의 한국 재즈가 새로운 도약을 꿈꾼 것으로 기록할 것이다. 열악한 현실은 다시금 ‘재즈 안에 머물 것인지’를 되묻고 있지만, 한쪽에선 이런 의문을 오히려 촌스럽게 여기는 연주자들이 반작용처럼 늘어나고 있다. 지금 나는, 떳떳한 태도로, 아니 뻔뻔한 태도로 새로운 서브컬처를 형성해가고 있는 일련의 연주자들을 떠올리며 이 글을 쓴다. 그중 프리 재즈의 한 형태인 자유즉흥연주를 즐기는 이들이 있다. 한 번의 공연에서 얻은 음원을 별 가감 없이 앨범으로 발표하기도 한다. 사실 이건 일종의 퇴행으로 보일 수 있다. 1980년대를 전후해 미국, 유럽, 일본 등 전 세계에서 이런 형태의 작품은 수도 없이 많이 발표됐다.



색소포니스트 이선재, 피아니스트 김은영, 드러머 석다연은 지난겨울 서울 성수동에 있는 게토 얼라이브(Ghetto Alive)에서 50분 동안 무관객의 자유즉흥연주를 벌였다. 미리 얘기된 테마나 구성은 전혀 없었다. 연주가 벌어지면서 만족할 만한 음악의 대화가 진행됐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편집 작업 없이 믹싱과 마스터링만 거쳐 뚝딱 한 달 만에 앨범으로 발표했다. 앨범의 강점은 크게 세 가지. 첫째, 외견상 다소 거친 모습이 예상되겠으나 의외로 매우 정갈한 구성미를 선사한다. 앨범은 50분짜리 한 곡뿐인데, 전체가 잘 짜인 모음곡(suite)으로 들린다. 둘째, 세 사람의 호흡이 참 좋다. 하나의 생명체가 뿜어내는 맥(pulse)을 느끼게 한다. 셋째, 연주 기법들이 풍성해서 프리 재즈의 약사(略史)를 되짚는 것 같다. 즐거운 대목이다.


어느새 한국 재즈는 새로운 세대의 프리 재즈 연주자들을 갖게 됐다. 이선재와 김은영 이외에도 기타리스트 최성호와 드러머 송준영 등이 그 움직임을 대변한다. 뉴욕에서 활동 중인 석다연은 겨울마다 입국해 동료들과의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오늘날 한국의 재즈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대중적으로 회자되는 극소수 아이콘들에 의해 일궈지지 않는다. 가장 낮은 언더그라운드에서 쉼 없이 연주에 임하는 이들이 진정한 역사다.


청자들에게 전한다. 이 앨범이 자유즉흥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압도당하지 말라. 준비 없이 연주됐다고 놀라는 시대는 수십 년 전에 막을 내렸다. 앨범의 주인공들에게 전한다. 최소 10년은 지금의 기조를 유지하기 바란다. 아무리 세상의 속도가 빨라도, 우리는 예술의 시간을 거스르지 못한다. 재기발랄함으로 치장된 현재보다 꾸준함으로 버텨낼 미래가 더 아름답다.


★★★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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