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Article

재즈피플에서 소개하는 주요 기사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리뷰] 팻 메시니 [From This Place]  
제목 [리뷰] 팻 메시니 [From This Place]   2020-04-27


김현준


시대의 서사로 승화한 어느 위대한 개인의 시선


세상 그 누구도 자신이 태어나던 순간을 기억하진 못한다. 하지만 혼수상태처럼 스스로의 존재를 망각한 상황만 아니라면,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도 우리는 최소한의 인지력을 유지할 수 있다. 딱히 그 찰나의 가치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누구든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지 않겠는가. 수년 전 한 음악 다큐멘터리의 제작에 참여하며 록 밴드 허클베리핀의 리더 이기용의 인터뷰를 마주한 적이 있었다. “세상에 단 하나의 음악만 남겨야 한다면?”이란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제 마지막 앨범이면 좋겠어요.”


기타리스트 팻 메시니가 오랜만에 새 앨범을 들고 왔다. 처음 공개하는 창작곡들로 구성됐다는 점과 스튜디오 녹음이란 조건을 적용하면 2014년 이후 6년 만이다. 그가 이렇게 오랫동안 새 곡을 발표하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팻 메시니는 현존하는 거장급 음악인 중에서도 가장 탄탄한 지지세를 누리는 극소수의 아이콘 중 하나다. 재즈를 마주해온 이들 중 상당수는 적든 많든 그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있을 것이며, 그가 새 앨범을 내놓거나 공연을 치르면 마치 의무처럼 그 행로를 놓치지 않으려 애썼을 법하다.


편성을 보자. 팻 메시니는 2010년대 후반 들어 새로이 쿼텟을 꾸려 공연을 벌여왔다. 영국 출신의 피아니스트 그윌림 심콕(Gwilym Simcock), 말레이시아 혈통의 호주 출신 베이시스트 린다 메이 한 오(Linda May Han Oh), 그리고 예전부터 재즈 팬들의 사랑을 받아온 드러머 안토니오 산체스(Antonio Sanchez)가 그들이다. 네 사람은 많은 무대를 통해 끈끈한 신뢰를 구축했고 최적의 호흡을 유지해왔다. 안토니오 산체스는 최근 〈다운 비트(Down Beat)〉에 실린 기사를 통해 이렇게 얘기했다. “우리는 모두 쿼텟으로 (새 앨범을) 녹음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팻 메시니가 더 큰 무언가를 듣고 있다고 말하더군요.”


그가 말한 ‘더 큰 무엇’은 오케스트레이션이었다. 사실 근년 들어 재즈계엔 현악 오케스트라를 기용하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 뿌리는 1950년대에 큰 대중적 인기를 누린 ‘With Strings’ 프로젝트에서 찾을 수 있겠으나, 팻 메시니는 1960~70년대 CTI 레이블의 많은 작품을 주목했다고 밝혔다. [From This Place]의 곳곳에 자리한 (더빙된) 오케스트라 연주는 곡의 흐름을 주도하거나 획기적인 반전을 꾀하지 않는다. 하지만 믹싱 트랙에 얹힌 채로 듣는 이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안식의 숨결과 긴장의 탄식을 선사한다. 최근의 경향과는 궤가 다른 핵심적 접근이지만, 일부러 의식해 듣지 않아도 괜찮다는 점을 놓치지 않기 바란다. 명확한 정체성으로 존재하되, 인지하지 않아도 되는 대상이다.



사실, 작곡과 구성, 그리고 연주의 측면에서 [From This Place]가 매우 새롭거나 혁신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냉정히 표현하면 종종 ‘자기 복제’가 엿보일 만큼 팻 메시니는 수십 년간 세상에 내놓은 자신의 작품과 스타일에 대해 일종의 오마주를 행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 대목이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메커니즘을 체험하게 한다. [From This Place]는, 팻 메시니의 팬들이 추억처럼 간직하고 있을 많은 단상을 각각 충실히 재현해 우리에게 되돌려준다. [Offramp]를 잊지 못한 이에겐 [Offramp]를, [Secret Story]를 기대한 이에겐 [Secret Story]를 떠올리게 한다.


올여름이면 팻 메시니도 66세가 된다. 얼마 전 라일 메이즈(Lyle Mays)가 같은 나이에 세상을 떴고, 명확한 의도를 확인하진 못했으나 보너스 트랙을 제외한 [From This Place]의 끝 곡도 ‘Sixty-Six’다. 나는 [From This Place]가 팻 메시니의 마지막 앨범이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한다. 상서롭지 못한 얘기로 들리겠으나, 우리는 이미 그에게서 차고 넘칠 만큼 많은 음악을 제공받았다. 그것으로도 충분한데, 팻 메시니는 팬들과 그 자신에게 뭉클한 선물 같은 앨범을 한 장 더 남겨두었다.


앨범 재킷에 등장한 토네이도는 오늘날 미국이 처한 정치적 혼란과 사회적 분열에 대한 우려와 자성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팻 메시니가 앨범의 타이틀곡을 처음 스케치한 것도 지난 2016년 미국 대선의 결과가 공개된 직후였단다. 고국의 현실을 염두에 두고 세상과 소통하려 애쓰는 모습이 앨범 곳곳에 가득하다. 위대한 개인의 시선은 이렇게 시대의 서사가 됐다.


★★★★

첨부파일 팻메시니.jpg
비밀번호 삭제하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목록

삭제 수정 답변

댓글 수정

비밀번호

수정 취소

/ byte

댓글 입력

이름 비밀번호 관리자답변보기

확인

/ byte


*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대소문자구분)

회원에게만 댓글 작성 권한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