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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프린스 그리고 기타  
제목 [트렌드] 프린스 그리고 기타   2016-07-08


프린스 그리고 기타


2016년 4월 21일 프린스는 떠났고, 나는 프린스를 둘러싼 여러 추모사에 눈길이 갔다. 음악계의 각종 유명인사를 비롯해 무려 오바마 미 대통령까지 그를 안타까워할 때, 그린데이의 빌리 조 암스트롱이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 글에 특히 마음이 흔들렸다. 그는 프린스의 소식을 듣자 수많은 생각이 스쳐 갔고, 곧 친구와 함께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던 열세 살 꼬마 시절로 돌아갔다. 온갖 기타 명곡을 폭식한 뒤 리프 하나 따낼 때마다 득의양양하게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믿던 시절이었다.


프린스가 누군지는 알고 있었지만, 하드록에 빠져 있던 소년 빌리에게 프린스는 그저 그런 흔한 팝 가수라고 여겨졌다. 그 무렵 ‘Purple Rain’이 싱글로 나왔다. 노래가 시작되면서 은은한 기타 연주가 흘러나왔을 때, 그러니까 후반부 솔로가 나오기도 전에, 그와 함께 기타를 배우던 동네 친구들은 숨이 턱 막혔다. 이것저것 다 찔러보고 다 된다고 믿었던 꼬마 빌리와 친구들의 입에서 욕이 나오던 순간이기도 했다. 몇 차례 커버에 도전했고 비참한 실패를 겪었다. 몇 년 뒤 빌리와 친구들은 훵크가 아닌 펑크를 택했다. 프린스의 음악보다 쉬웠기 때문이라고 빌리는 썼다.



프린스의 기타 철학


프린스는 장비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그의 장비는 너무 비싸다. 그의 기타를 꾸준히 제작해왔던 영국 출신의 기타 장인 사이먼 파머가 알려주기를, 마지막으로 프린스에게 건넨 보랏빛 기타는 15,000 파운드였다. 프린스는 그걸 받자마자 똑같은 형태의 베이스를 주문했다. 그런 고급 장비를 손에 쥐었다고 해서 누구나 프린스처럼 연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비싼 기타에 눈독들이기 전에 일단 제임스 브라운이나 아이크 터너를 듣는 것이 합리적이라 했다. 훌륭한 리듬이 거기 다 담겨 있기 때문이다. 리듬은 그가 생각하는 연주의 기본 원칙이다.


무릇 기타리스트라면 자신의 리듬을 따라 연주해야 하는데, 그게 없다면 곡을 쪼개고 쪼개서 리듬을 분석할 줄 알아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그렇게 해봐야 리듬을 찾게 된다고 했다. 음정은 그다음이다. 맞든 안 맞든 음을 맞춰서 연주하는 건 리듬에 대한 이해를 쌓은 다음에 밟아야 할 수순이라는 것이다. 그는 훵크를 할 때면 베이스부터 짰다.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의 프레디 스톤 또한 그렇게 작업해왔는데, 베이스를 먼저 만들어두고 그보다 음을 높여 기타를 연주하는 것이 훵크의 핵심이라 했다.


한편 그는 기타 솔로를 제대로 설계하려거든 보컬리스트를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멜로디와 보컬에 몰입해야 노래의 흐름을 반영하는 설득력 있는 연주가 나온다는 뜻이다. 성공한 여성 보컬리스트가 훨씬 참고하기 좋은 대상인데, 성의 있게 귀를 기울이면 아무리 당당하게 노래한다 한들 그녀들의 한계와 울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음악 시장은 오랜 세월 남성 일변도였기 때문이다. 그는 비욘세와 엘라 피츠제럴드의 노래에서 동시에 억눌린 감정을 읽었다고 말한다. 요약하자면 기타를 제대로 연주하려면 훵크로부터 리듬의 기본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기타 솔로는 노래로부터 블루스를 발견한 뒤에 이루어져야 한다.



고집스러운 기타리스트


기타를 잡거든 음정이 아닌 리듬부터 찾으라는 조언으로 미루어 그는 차원이 다른 역발상의 연주자였지만, 생전에 남긴 그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꽤 보수적이고 완고한 기타리스트였던 것이 분명하다. 기타를 잡기 시작한 아이들이나 가르치는 사람이나 예전과 달리 기본의 필요성을 모른다고 지적했고, 모범 사례로 잭슨 파이브를 들었다. 그에 따르면 잭슨 파이브의 노래는 가벼운 유행가가 아니다. 스모키 로빈슨과 훵크 브라더스의 연주를 참고했기에 깊이를 얻을 수 있었던 훌륭한 팝이다.


프린스는 기타가 엔터테인먼트의 도구가 되는 일에도 반대했다. 인기 비디오 게임 ‘기타 히어로’가 에어로스미스, 메탈리카, 반 헤일런과 계약을 체결해 새로운 버전을 계속해서 출시하면서 프린스에게도 똑같이 제안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큰돈을 벌 기회라는 걸 알지만 기타는 게임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며, 보다 가치 있는 교육은 진짜 기타를 잡고 익힐 때 이루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음악지 롤링스톤은 작년 말 100대 기타리스트를 선정하면서 그를 33위 아티스트로 거론했다. 한편으로는 수없이 많은 음악 언론이 저평가된 기타리스트를 줄 세울 때마다 그는 늘 상위권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2002년 조지 해리슨이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면서, 축하 무대에 선 그가 ‘While My Guitar Gently Weeps’의 기타 솔로를 맡기 전부터 있어왔던 일이다. 늘 하이힐을 신고 무대에 올랐으니 남들보다 더 힘들게 연주했지만, 부당한 평가는 사실 그가 자초한 일이다. 표현 범위가 넓어 기타로 수많은 장르를 다뤄왔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그는 기타 말고도 살펴보고 사랑할 구석이 많은 풍요의 음악을 남겨왔기 때문이다.



그의 기타를 닦는 일


많이 좋아하고 존경하던 한 동료가 얼마 전 떠났다. 망연자실해 글은커녕 말도 안 나왔다. 감히 말 한마디 보태기가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거꾸로 진정되지 않던 마음을 달래준 건 그를 좋아하고 존경하던 다른 이들이 그의 SNS 계정에 남긴 기록이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건 슬픔과 아픔의 눈물이기도 했지만, 떠난 동료가 얼마나 훌륭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는지를 확인하는 확신과 기쁨의 눈물이었다. 얼마 전의 그런 경험 때문이었을까. 나는 프린스의 부고를 접한 뒤 그에게 쏟아진 수많은 추모사에 먼저 눈길이 갔고 그러다 빌리의 인스타그램에 도착했으며 그때서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어렴풋하게나마 찾았다.


빌리처럼 깝치다가 어느덧 성장한 아름다운 시절이 나한테는 없다. 게다가 ‘Purple Rain’이 나온 1984년 나는 한글도 몰랐다. 늦게 태어나 늦게 그를 알고 그의 전성기를 늦게 뒤적여왔던 내가 진심을 담아 무언가 말을 보태야 한다면, 미사여구를 고민하기 전에 십대 소년 빌리를 깨우치게 만들 만큼 강력했지만 실은 대대적으로 저평가된 그의 기타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했다. 할 일은 더 있다. 프린스는 무려 서른아홉 장의 앨범을 남겼다. 천천히 음미하면서 듣고 싶다. 연주에 관한 그의 뚜렷한 철학을 상기하면서 차차 내 일과의 여백을 그가 남긴 기록으로 채운다 해도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민희 | 대중음악평론가

온오프라인 매체에 음악 관련 글을 쓰고 있다.

듣는 건 여전히 즐거운데 쓰는 건 여전히 고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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